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uvved Jul 12. 2021

조용한 저녁에서의 시끄러운 나날들

21살의 나에게 감사, 서울 최애 레스토랑

 2016년, 신촌 새내기였던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떠도는 신촌 맛집들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학교 근처의 유명한 맛집, 오래된 맛집, 새로 생긴 신상 핫플도 지겹기 그지없었다. 정말 정말 맛있는 게 먹고 싶었던 당시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무도 모르는 신촌의 숨은 맛집 찾기'였다.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 구글링 온갖 창구를 활용해서 찾은 몇 군데의 식당을 한 학기에 걸쳐서 열심히 다녔더란다.


그때 발견해서 졸업 때까지 애정 했던 곳들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곳은 시원한 산토리 생맥주에 맛있는 오코노미야끼를 먹을 수 있는 야바이, 명지대 근처의 우동집 가타쯔무리(대체로 다 맛있는데, 유자가 들어간 우동 메뉴가 아주 맛있다), 홍대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작은 타코야끼 집인 타코몽,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카레 돈까스 명소 연희동 히메지, 학교 앞에서 맛있는 밥이 먹고 싶을 때마다 갔던 초당쌈밥 등이 있다. 그치만 집은 성북구, 회사는 삼성동인 내가 신촌을 자꾸만 가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조용한 저녁'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네이버 예약 창을 들어갔다가 우연히 알게 됐는데, 2018년부터 지금까지 조용한 저녁 방문 횟수는 35회다. 내 기억에 사장님께서 네이버 예약을 오픈하신 게 2017년 이후였던 것 같으니, 그전에 갔던 것까지 합하면 족히 40번은 될 것이다. 2016년, 21살 생일날 처음 방문해서 미트볼, 카프레제 파스타, 초코무스 케이크를 먹었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적당한 가격대의 아주 맛있고 새로운 맛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아주 단순하고 별 것 아닌 매력인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런 식당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계절마다 새로운 메뉴를 내어주는데,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맛이다. 알리오 올리오에 부추를 넣는다던지, (지금은 없어진 메뉴지만) 21살의 나에게는 다소 신선한 메뉴였던 카프레제 파스타라던지. 최근에 가서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건 녹진한 버섯 크림을 가득 머금은 빠께리 파스타였다.


맛도 맛이지만, 매력적인 와인 리스트와 그에 못지않은 와인 영업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두 페이지가 넘어가는 와인 리스트 안의 와인 하나하나 이해하기 쉽게 맛을 설명해주신다. 그 쉽고 매력적인 설명에 홀라당 취해서 마신 와인이 몇 병인지 모른다(ㅋ.ㅋ). 21~22살 무렵에는 컨벤셔널 와인만 취급했던 것 같은데, 내추럴 와인까지 와인 리스트가 점점 다채로워지는 게 참.. 감사하다. 처음 시켜본 바틀 와인, 포트와인, 셰리와인, 내추럴 와인 내가 경험한 와인 세계의 처음은 모두 조용한 저녁에서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때의 내가 조용한 저녁을 발견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더 많은 맛을 보고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용한 저녁과 빅타이니에서 마시거나 사왔던 와인들.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마실 때도 가서 사오곤 했다.

이렇게 엄청난 의미부여까지 할 만큼 이 식당은 나한테 소중하다.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가까운) 친구들 중에 '조용한 저녁(@quietevening)' 한 글자 본 적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한 번씩 꼭 데려가고, 나와 같이 갔던 친구들은 또다시 본인의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재방문한다. 사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얼마나 많이 영업하고 다녔는지 모른다. '소개팅 애프터/부모님과의 식사/친구와의 조용한 만남/애인과 데이트,... 에 어디 가지?'라는 질문에 '조용한 저녁!'이라고 답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매해 anniversary 행사에 이상한 의무감으로 축하를 전해드리러 가고, 조용한 저녁에서 저녁을 먹은 후 2차는 꼭 사장님의 부인 분께서 운영하시는 '빅타이니'로 가게 될 만큼 진짜 'Big Fan'이다. 시시때때로 생각나고, 시간을 내서 가게 되고, 다음번 신메뉴를 기대하고, 갈 때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게 되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라는 말이다. 10주년, 20주년 기념행사에 출석체크를 하는 동안에 더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알아챌 수 있는 어른이 돼있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비스크 게살 파스타가 궁금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아주 맛있는 파스타와 그에 걸맞은 와인이 당긴다면, 신촌의 '조용한 저녁' 예약 버튼을 눌러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식가(食家)'의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