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가장 큰 적이 누군지 알아?"
"글쎄요, 누구지?"
"너 친구들. 네 친구들을 가장 조심해야 돼"
"왜요?"
"남편 뭐해 결혼 어디서 해 식장 얼마야. 그냥 다. 넌 이거야? 난 이건데. 이런 식으로 말을 듣다 보면 계속 비교하게 되거든."
나와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다. 난 그런 것들에 흔들릴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남편의 직업이 뭔지, 신혼집이 어딘지, 그것은 월세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나한테 자신이 있다면 뭣이 중헌디? 그냥 흘려들었다.
견고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주 간단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최근인 것 같다. 어버이날 뭐해? 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어디서 밥 먹을 거야? 어떻게 보낼 거야? 뭐 준비할 거야? 정도의 질문이지만 마치 안부를 주고받는 것처럼 자연스레 오갔다.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뭘 준비해본 기억이 없다. 편지를 쓰고 싶으면 편지를 썼고, 선물을 드리고 싶으면 뭐가 필요할지 엄마의 하루를 지켜봤다. 종일 달라붙어있어야겠다, 싶을 땐 아침부터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20대 때 어버이날의 대부분은 타지생활 중이었기에 무언가를 같이 했던 기억은 없었다. 기념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챙기지 않는 집안 특유의 분위기 탓일 수도 있겠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작은 선물을 드리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걸로 지나가곤 했던 어버이날이었다. 어느덧 주변을 보니 대부분은 결혼을 했거나 어린 자녀가 있거나 미혼이라 해도 사회생활 10년쯤은 거뜬히 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에겐 나처럼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부터 얼굴을 부대끼고 사는 일상 속 부모님이 아니다. 특별한, 챙겨드려야 할 만한, 무언가를 해야 불효자란 이름을 면할 자식의 위치에 서있는 이들이다. 결혼을 하면 그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좋은 식당에 가거나 용돈을 드린다는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솔깃하다.
난 이번에 용돈 좀 드렸지.
얼마 정도 드려 보통?
그 식당 예약해서 다녀오려고.
어디? 거기가 괜찮다던데 가봤어?
저번 생신 때 여행 보내드려서 이번엔 가까운 데로 모시려고.
나도 이번에 어디 호텔 예약했어.
마치 애 영어유치원 보내? 보내는 게 좋아? 어디? 얼만데? 그 드레스 어디 거야? 너 얼마로 했는데? 집 어디로 옮겨? 전세야?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디"에서 "얼마"짜리로 "무엇을" 하는지가 대화의 주류가 되는 걸까. 왜 아무도 "어떻게"나 "왜"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정도에 생각이 머무를 때쯤이면 나에게도 질문이 돌아온다.
그래서 넌 어버이날 뭐할 거야?
난 뭐가 없었다. 우연히 친구와 맛있는 곳에 가면 그다음엔 부모님과 간다던가. 퇴근길에 생각나면 꽃을 사 간다던가. 필요해 보이는 게 있으면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사드린다던가. 일상에서 해오던 것들에 어버이날이라는 이름을 얹어 뭘 더 해야 될까. 내가 너무나 완벽한 딸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뭔가를 기획하고 준비해본 경험이 내겐 없었다. 점점 조바심이 났다. 엄마가 혹은 아버지가 속해있는 동창들 카톡방에서 '난 이번에 딸내미가 이거 해줬어~^^ 행복하다~^^'라는 자랑을 해오신다던가 프사에 돈다발, 꽃다발과 함께 '아들~~^^ 최고야~ 사랑해~^^' 뭐 이런 남김말이라도 적혀있으면 우리 부모님도 심정이 혹시 무너지려나. 내 새끼는 분가도 안 하고 사는데, 라며 신세한탄이라도 하시려나.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해도 해도 넘침이란 건 없는 게 효도겠지. 그러니 내게 '이번 어버이날 뭐해?'라는 말을 건네 오는 사람들은 치열하게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고민했던 사람들이겠다. 대단하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엄마와 아버지께 용돈을 수백만 원 드린다던가 장미꽃 백송이를 바친다던가 하다못해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거나 결혼할 사람이라며 데려갈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 마신 요플레 빈 통을 깨끗하게 씻어 분리수거해놓는 거. (맨날 화장실에 둬서 엄마가 두 번 손 가게 한다.) 제때 끼니 챙겨 먹어서 엄마 걱정 안 하게 하는 거. 밥 많이 먹는 거. 아버지와 좀 더 살갑게 달라붙어있는 거. 좀 더 좋은 방송 만들며 신명 나고 행복하게 지내는 거. 그런 것들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모님이 진정 원하는 건 아직 내가 해드릴 수 없는 것들이다. (가령 결혼이라던가 뭐 윌리엄 같은 손자를 보는... 평생 가도 못 이룰 것 같은 그런 소원들) 적고 보니 난 쫌 불효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 마음 다 똑같은 걸 텐데, 네가 행복한 게 내 행복이야 하시면서도 해드리면 또 싫어할 분은 없겠지. 난 뭘 해드릴 수 있으려나. 일상에 더 충실하는 게 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