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아니."
"해라."
카톡에서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지인에게 "말 좀 많이 해주라. 글자 수 제한이라도 있는 거야?" 부드러운 미소로 회유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왜 무뚝뚝하냐, 왜 말이 짧냐.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영 어울리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지인이 핀잔을 듣습니다. 머리 좀 어떻게 해봐라, 단정하지 못하다, 안 어울린다. 모두가 말을 툭툭 내뱉을 때 그녀는 다른 말을 골라냈죠.
"우리 세련된 컨셉으로 밀고 나가보자."
옆에서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사로잡는 저 화법. '우리'라니요. 어디서 배워오기라도 하는 걸까요. 매번 우아한 위트를 스리슬쩍 내려놓는 그녀의 언어에 매번 감탄합니다.
예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이 동요됩니다. 아마도 평소 제 말투가 거칠어서인가 봅니다. 저는 종종 친근감의 표시랍시고 "야, 밥 먹었냐. 뭐하냐." 말미에 '냐'를 붙이는 화법을 즐겨 썼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그럽니다. "더 무뚝뚝하게 대해봐." 귀엽고 솔직한 지적이죠. 그날 이후로 사람을 '야'로 불러 '냐'로 끝맺음하는 말버릇을 저역시 싹 고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 가서 물컵을 탕! 소리 내며 거칠게 내려놓는 후배에게 "그걸로 되겠어? 더 세게 내려놔야지." 라며 빙긋이 웃는 선배가 있습니다. 무례함을 잰틀하게 포장하여 돌려주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요. 의도 역시 후배에겐 전달됩니다.
번호를 잘못 눌러 바로 끊었는데 부재중이 남은 모양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에게 잘못 걸었다며 끊으려던 찰나 "그래도 나랑 10초는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 합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상대는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짧은 음절로 이루어진 작은 언어들이 가진 힘은 이렇게나 큽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때가 있지요.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도 느껴집니다. 주도적이지 않거나 소극적이라는 뜻으로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사용했었는데요. 어느 순간 쓰는 게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멋진 모습은 아니었다'고 바꿔 쓰는 중입니다. 더 나은 표현도 있겠지요. 특히 남성성이나 여성성과 관련된 표현은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가 많아 스스로 흠칫 놀라기도 합니다.
일본에선 '여자력(女子力)'이란 단어를 둘러싸고 수년째, 크고 작은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장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2009년에 등장한 단어이지요. 신조어라 디지털 대사전에 수록되어있는데요.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결국 '남성의 구미에 맞는 여성상'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여자력을 높이기 위한 핑크색 승용차, 화장법, 마스크팩, 옷차림, 술자리 예의, 대화법 꿀팁. 광고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에서 끝없이 여성성을 강조해왔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일상 언어에도 녹아들었겠죠. 2016년, 살인적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해 자살했던 20대 여성이 있습니다. 생전에 상사로부터 "여자력이 없다"는 말로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게 드러났지요.
누군가에겐 폭력적이고 반감을 사는 단어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아사히 신문이 설문조사에 나섰습니다. 2016년 12월 26일부터 2017년 1월 24일까지 16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요.
세 개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해보면요.
- 두 명 중 한 명 꼴로 '여자력'이란 단어는 부정적 이미지를 준다고 응답했습니다.
- '여자력'이란? 요리나 청소에 능한 사람(34.9%), 세심한 배려를 보이는 사람(28.1%), 항상 용모가 단정한 사람(14.5). 리더십이 있거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한 건 0.4%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 반면 둘 중 한 명은 '여자력'이라는 단어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응답자 77%가 여성이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피로감, 분노, 반감이 적지 않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지요.
하지만 투표 결과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댓글창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목소리였습니다.
(20대 남성)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행위를 칭찬하는 용도라면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단어일 텐데요. '여자력을 갖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되어버리면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존재'가 되라고 강요당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듭니다. 남성, 여성 관계없이 타인이 멋대로 기대감을 갖는다는 건 불쾌한 일입니다.
(40대 여성)
"'여자력'은 주위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재빨리 알아차리고 배려하는 눈치(気配り, 気働き)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단어지요. 제가 사회 초년생이었던 20년 전에는 직장 여성들에게 딱 두 가지가 요구됐었습니다. 업무능력 반, 여자로서의 눈치 반, 인 거죠. 아무리 일처리 능력이 뛰어나도 여자로서 눈치껏 행동하지 못한다? 그럼 직장을 그만두거나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밀려나는 여성들이 많았어요."
(50대 남성)
"'여자력'이라는 단어는 전통적 역할 분업에 대한 가치관, 혹은 스테레오 타입화 된 '여성스러움'을 전제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힘, 능력'에 성별은 무관하잖아요. '여자력'이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성차별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30대 여성)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성차별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녀평등이라는 건 성차별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 있다는 걸 주장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성별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남녀평등 아닐까요? 실제로 디테일한 부분을 금방 알아차리고 소소한 부분까지 눈치껏 행동하는 건 여성들에겐 익숙한 능력입니다. 일할 때도 그런 면들이 남성들과 차별점을 만드는데요. 그렇다면 (여자력이라는 단어도) 좀 더 요령껏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30대 남성)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개인의 인격보다 성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풍조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무시당한 채 '여자'라는 색안경으로만 보여진다면 누구든 좋은 감정일 순 없겠죠. 그건 우리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분들 가운데 '여자력'이라는 말을 즐기는 분과 그렇게 못한 분이 계실 텐데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왔는지 아닌지의 차이는 아닐까요. 존중받아왔다면 '여자력이 높다'는 건 말 그대로 기분 좋은 말일 수 있고요. 반대로 '여자력이 낮다'라고 해도 딱히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이 사회는 좀 더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줄 공기(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고요."
'여자력'이 주는 압박감이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요소이자 확고한 지향점이 되어왔다는 겁니다. 한 나라, 사회, 조직 안에서도 성별만으로 행동요령이 갈리는 거죠. 그렇다면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 또한 내가 어떤 성별이냐에 따라 나뉜다는 뜻입니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점장은 저보다 4살 많은 일본인 남성이었습니다. 6년 동안 4년을 같이 일했으니 제가 터득한 일본식 눈치, 4할 정도는 그와의 시간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합니다. 그는 스물여덟 살이었지만, 이미 두 자녀를 기르는 가장이었고요. 음식점 점장 경력이 10년을 웃돌았으니 접객은 베테랑에 속하는 편이었지요. 다만, 한국에 관한 정보는 없었던 탓에 (살면서 대화를 나눈 외국인이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매우 원초적인 호기심도 아무런 필터링 없는 질문이 되어 제 앞에 던져졌습니다.
"(스물네 살이었던 저에게) 나는 이미 애가 둘인데, 너는 언제 결혼할 거야? 한국은 결혼 늦게 해도 괜찮아?" 라던 가요. "요즘 살찐 것 같다"는 말에 살짝 째려보면 "어, 무섭다. 역시 한국 여자는 기가 세다니깐."라는 식이었지요.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까지만 해도 이런 말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일비재하게 일상의 언어로 쓰이던 때였는데요. 그럼에도 듣기 싫은 19금 농담이나 과한 사생활 참견에 꼬박꼬박 마음 가는 대로 반응하는 편이었습니다. 상식과 논리를 떠나 그런 저의 '솔직한 반응'은 곧 '한국 여자는 기가 세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곤 했죠.
"내 아내는 내가 아무리 늦게 술 먹고 들어가도 안 자고 기다리다가 밥을 차려줘."
"대신 나는 가끔 구두나 옷을 사주지."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 아내는 남편한테 말대꾸 안 해. 하늘 같은 가장한테 말이야."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님을 향해 눈치 있게 접객하는 대신 여성성을 저변에 둔 접객이 강조됐습니다. "남자인 내가 가는 것보다는 여자인 네가 가서 구워주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여성성, 여자력, 여자력을 어필하는 직업정신은 조금씩 저의 머릿속에도 잠식되어갔지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 과정은 스펀지에 물을 한 방울씩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조금씩 스며들지만 지금 당장은 눈에 띄지 않을 뿐이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점장을 째려보던 저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공손하게 웃음으로 무마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말대꾸해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을 바에야 그냥 참고 가자, 하고 웃는 제가 있었지요. 어느덧 "이젠 안 째려보네." "이제 여성스럽네."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면, 환경에 스며들어야 하는 이방인의 입장이라면, '여자력'을 요구하는 눈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설문조사에 나타난 것처럼 더 이상 '여자력'이라는 말에 순응하지만은 않겠다, 반기를 들기 시작했지요.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눈을 찌릿'하고 째려보면 점장이 "아, 왜~ 미안해. 알겠어."라며 짓궂은 언행을 점차 줄여갔던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덩달아 제가 눈치를 살피는 일도 줄어든 것처럼 말입니다.
6년 일하고 그만두던 날, "이제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류류(柳流)로 살아가렴."이라는 말을 건네 왔습니다. 주방장도 점장도요. 류(柳)는 제 성 씨고, 류(流)는 스타일, 흐름이라는 뜻이니 '눈치 보지 말고, 앞으론 당당하게 너의 삶을 살아라'는 뜻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게 문을 나서는 날, 홀가분했던 마음을 기억합니다. 누구와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견고하기만 할 것 같았던 문화의 장벽도 조금씩 허물어진다는 걸 체감했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