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화장실이었다

by 알로

대학에 입학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안면을 트기 바빴다. 온천지에 벚꽃이 흩뿌려진 교정은 눈부신 봄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유리 건물로 만들어진 학생 라운지엔 따사로운 햇살을 고스란히 담아낸 테이블이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공간 속 우두커니 서있던 나.


얼마쯤 지났을까. 종소리가 울렸다. 점심시간인 듯했다. 저마다 짝을 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몇몇은 무리 지어 어디론가 향한다. 밥은 어디로 가야 먹을 수 있는지 내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학교 뒷문을 걸어 나와 오는 길에 보았던 작은 도시락집에 들어갔다. 얇은 용기에 담긴 주먹밥 두어 개 골라 들어 녹차까지 하나 사 들고 라운지로 돌아왔는데, 앉을 곳이 없다.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꽤 친해진 듯 연락처를 교환하는 모습도 보였다. 투명인간처럼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내겐 없었다.


그래서 고른 게 화장실이었다. 작정하고 들어간 건 아니었다. 혼자 서있기 뻘쭘해 들어갔는데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은은한 향기가 났다. 나쁘지 않을 것 겉았다. 열린 칸 아무 데나 들어가 변기 뚜껑 닫고 앉아 비닐봉지를 풀었다. 주먹밥 한 입, 녹차 한 모금. 눈물을 머금는다거나 목이 메는 장면은 없었다. 그냥 입안에 오물오물, 오랫동안 씹고 삼키고를 반복했던 기억만이 남았다.


나름 트렌드를 따라갔던 모양이다. 이듬해 일본에선 벤조메시(便所飯)라는 말이 화두였으니까. 이른바 '화장실 밥'. 대학생들이 화장실에 숨어 혼자 끼니를 때운다는 이 기괴한 신조어의 등장이 내겐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내심 나 혼자만 그런 고민을 안고 살았던 건 아니구나, 되레 안심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오늘. 구내식당에서 넷플릭스를 켜 두고 혼밥 하는 시간이 좋다. 길 가다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도 거뜬하다. 무엇을 먹을 건지, 계산은 누가 할지, 어떤 대화를 이어나갈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식사라는 자리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홀로 편안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식사하는 시간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20년 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화장실은 예나 지금이나 비상구가 되어준다. 초년생 때 졸고 있으면 볼펜으로 쿡쿡 어깨를 찌르는 상사가 있었다. 매일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밤 열한 시가 다 되도록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했던 시절. 여자 화장실 변기 뚜껑은 잠깐 졸기에 적격인 공간이었다. 데이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식당에 도착하면 메뉴를 고르고 가장 먼저 화장실로 달려간다. 자주 가는 패턴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잠깐 혼자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옷매무새는 괜찮은지, 화장이 지워지진 않았는지, 거울까지 한 번 스윽 훑고 나오며 나는 안정감을 되찾는다.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한 평 남짓한 공간. 해우소란, 비단 생리욕구를 해결해준다는 의미만 포함하는 건 아닌 듯싶다.


끼니는 때우겠다며 기어이 화장실에 제발로 걸어들어간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는 칭찬한다. 혼자 먹는 게 부끄러워 굶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의 난,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누구의 눈치를 봤던 걸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