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들 그렇게 친절해?"

일본 가게가 손님을 대하는 법

by 알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동생이 있다. 말은 또 어찌나 잘 이어가는지. 한 마디 한 마디에 섬세함이 묻어난다. 퓨전 요릿집에서 일한다는 그에게 "너는 접객을 참 잘하겠다." 고 하니 동생은 잠시 고민하는 듯 갸우뚱거렸다. "접객... 네, 제가 접대를 잘하죠."


접객이란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식 표현이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도 접대와는 또 다른 뉘앙스인데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비스가 좋다고 말하자니 조금 별개의 느낌이 든다. 굳이 고르자면 센스에 가까운데, 그 역시 접객의 의미를 담아내진 못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손님을 잘 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뭐라고 말하냐 물으니 "그냥 손님한테 잘하는 거지. 뭘 뭐라고 하냐."며 되묻는다. 음, 손님한테 잘하는 것. 맞는 말이긴 하다.


그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일본은 '손님한테 잘하는' 문화를 중요시하는 나라다. 접객(接客)은 손님을 접하는 방법을 뜻한다. 비단 음식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돈, 물건, 서비스, 손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핵심이 되는 단어다. 모든 가게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대체로 일본이 손님을 대하는 방법은 친절하고 정중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점심시간에 정장 차림의 샐러리맨이 들어오면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앞치마를 가져가야겠다던가 연기가 덜 닿는 자리로 안내해야겠다는 식이다. 대체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한정되어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요리는 빨리 내 가야 한다. '정장 차림'에서 파생되는 힌트 하나로 다양한 행동 매뉴얼이 생긴다.


샐러리맨이 자리에 앉는다. 목이 말랐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슬쩍 다가가 물을 채운다. 하얀 셔츠 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어올리면 앞치마를 살포시 건넨다. 면 요리를 시켰는데 쇠 젓가락질이 서툴다. 아등바등하는 그의 앞에 나무젓가락을 슬쩍 밀어 넣는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면 재떨이를 내밀고, 물수건이 좀 더러워 보이면 뜨끈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수건을 새로 내간다. 이중에 샐러리맨이 직접 요구한 건 없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인다.


"괜찮으시면 사용하세요(宜しかったらどうぞ)."


접객이 이루어지는 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상투어(決まり文句). 언제든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관용표현인데, 특히 접객 언어가 많다. 재떨이도 앞치마도 나무젓가락도, 요구하지 않은 친절이니 주는 직원은 성의를 보이는 것이고 받는 손님은 감사함을 느낀다.


상암동에 자주 가는 술집이 있다. 맛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직원의 센스가 남다르다. 계산대 옆에 화장실이 있는데 문 앞에 도착하기 직전, 그 찰나의 타이밍에 무심하게 손을 뻗어온다. 화장실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충전 케이블을 들고 앉은자리 주변을 훑으면 손을 내밀며 다가온다. 저쪽에 꽂아두겠다며. 별 거 아닌데, 그 별 거 아님이 기분 좋은 술자리를 완성시킨다. 술 마실 때 뜨거운 물을 마시는 습관이나 찬으로 나오는 오이장아찌를 꼭 리필한다는 점. 이런 나의 소소한 특징을 잘 기억해준다. 한 번 입력된 정보는 그 후로 말하기 전에 이루어진다.


한국에선 앞치마를 내주지 않거나 빈 잔에 물을 따르지 않는다 해서 그 가게의 서비스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화장실 문을 맨날 열어주다 오늘 안 열어줬다고 해서 "왜 안 열어주나요?" 물어볼 수 없다. 해주면 고맙고, 정 필요하면 요청하면 된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접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게라면 저런 소소한 행위들은 필수다. 안 하면 종종 지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곧잘 지적받았던 사람, 나야 나. 못 봤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눈치였다. 되레 신기하게 쳐다봤다. "네 역할이 그건데 어떻게 못 볼 수가 있지...?"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가는 순간까지 하나의 큰 흐름이라고 생각해봐. 자리에 앉고, 음식을 주문하고, 요리가 등장하고, 계산할 때까지. 네 역할은 그 흐름을 깨지 않는 거야. 딱 한 템포만 빠르게 다가가면 돼."


딱 한 템포만 빠르게 다가가라는 건 '말하기 전에' 치고 들어가란 뜻이었다. '타이밍'이었다. 주문한 요리를 제공하고, 계산해달라 해서 계산해주는 것은 접객의 가장 기본인 것이다. 흐름을 깨지 않는다는 건 언어 외적인 부분까지 살피는 일이었다. 화장실을 찾는 눈치, 하얀 셔츠를 조심스럽게 걷어올리는 손짓.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시그널로 다가오는 셈이다. '몸으로 말해요'처럼 마임을 보고 무슨 단어인지 알아맞히는 퀴즈 놀이처럼.




일본의 접객문화가 '손님을 왕'으로 만들 수 있는 데엔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큰 몫한다. 흐름은 곧 상황이요, 맥락이다. 이를 두고 '장(場)'이라 표현한다. 장(場)은 마당이라는 개념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거래가 오가는 장, 무언가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장면. '접객의 장(場)'이라는 큰 테두리가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된다. 각각의 역할에 대한 책임도 그만큼 커지는데, 그래서일까 일본 식당이나 술집에서 직원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동료와 시종일 수다 떠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처럼 식당 한 구석에서 사장 내외가 사이좋게 마주 앉아 국밥을 한 그릇씩 떠먹다 손님이 들어오면 서둘러 일어나 '어서 오세요.' 하는 풍경을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이유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계선이 뚜렷할수록 할 수 있는 행동 범위는 좁다. 대신 매뉴얼을 만드는 건 간단하다. '일하다 밥 먹는데 손님이 왔을 경우'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 건 애초에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눈치껏 대응하는 문화엔 융통성과 무질서함이 공존한다. 구태여 말하자면 일본은 질서가 있는 대신 우리나라식 융통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일하던 고깃집에선 우리가 직접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식이었다. 일명 '커뮤니케이션 노트'였다. 그날의 공지사항, 그날의 추천 메뉴, 단골손님의 특이사항까지 소소한 정보들이 적혀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읽고 각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숙지했다는 뜻이다. 특히 유용했던 건 단골손님들 정보였다. '아무개는 쇠젓가락 대신 나무젓가락을 주세요, 아무개는 창가 자리를 선호합니다, 아무개는 식후 따뜻한 보리차 필수.' 읽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가 아무개가 오면 아무개에 맞춘 접객을 한다. 아무개는 기뻐한다. "어떻게 알았어요?" 차마 "커뮤니케이션 노트에 적혀있었어요." 할 순 없다. 그저 웃는다. 그렇게 아무개도 우리 가게의 단골이 되곤 했다.






사족 하나,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대표로 나섰던 프랑스계 혼혈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탈이 또박또박 한 음절씩 끊어 말했던 단어가 있다.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다섯 글자. '오모테나시'였다. 일본은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며 그 환영의 정신을 '오모테나시'라고 표현한 것인데, 이는 온 마음을 다해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위에서 언급한 접객문화와 결이 달라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가게들이 손님에게 친절한 데엔 '오모테나시'가 큰 비중을 차지할 테지만, 이 글에선 표면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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