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 오해로 태어난 아이

by 알로

발설된 말(이미 뱉은 말)과 함의된 의미(말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 대화에 공존하는 두 가지다. 함의된 의미는 어떻게 나타날까. 폴 그라이스가 주장했던 대화의 원칙을 반대로 들여다보겠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들이다.


1. 질의 격률(Maxim of quality)

진실이라고 믿고 확실한 증거를 말한다


리액션이 필요 이상으로 과한 사람에게 '영혼 한 스푼만 얹어보라'고 한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다는 뜻이다. 가식 쟁이, 위선자라는 단어는 말에 무게감이 없는 사람을 칭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OO에 진심'이라는 표현이 곧잘 눈에 띈다. 사진작가인 지인이 SNS 계정에 비둘기 사진을 올렸다. 도심 곳곳에 돌아다니는 비둘기를 찍었을 뿐인데, 기가 막힌 작품을 남겨버렸다.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작가는 '제가 비둘기에 진심이라서요.'라며 마지막에 답글을 달아놓았다. 비둘기를 찍는 데 열과 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진심이라는 단어를 굳이 강조한다는 건 어쩌면 이미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진심을 싣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2. 양의 격률(Maxim of quantity)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필요 이하, 이상의 정보는 안 된다


썸 타는 남녀가 카카오톡을 주고받는다. 한쪽은 '영화 볼래요?' '밥 먹었어요?' '퇴근했어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상대방의 일과가 궁금한 눈치다. 반면 질문을 받는 쪽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언젠가요.' '방금요.' '넵.' 단답형이다.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필요 이하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건 때론 눈치를 줄 때 사용하는 수단이 된다. 대화의 원칙을 어겨서라도 기어이 전달하겠다는 의지.


3. 관련성의 격률(Maxim of relevance)

지금 주고받는 것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말한다, 불필요한 정보는 전달할 필요가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 한 친구가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우린 안다. 이걸 왜 묻는지. 그저 인사일 뿐이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 지나고 거래처에 전화할 때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 건 정말 그 사람이 끼니를 때웠는지, 점심 메뉴가 뭐였는지 궁금해서가 아니다. (물론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우리 문화에선 안부를 전하는 방법이자 인사를 건네는 표현인 것이다. 이런 문화가 낯선 이들에겐 '도대체 왜 자꾸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화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방법의 격률(Maxim of manner)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피한다


한국일보에 <'여자들의 언어' 해석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었다.



서론에서 '연애 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한 번쯤은 여자 친구가 이렇게 하라 해서 애 먹은 적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내건다. 사람마다 연애 스타일도 성향도 다르겠지만, 호감 가는 상대의 한 마디가 말 그대로의 뜻인지 사실은 다른 뜻을 포함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경우는 종종 있다. 기사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각각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어 있다. 대부분 남성들은 말하는 대로 받아들여도 이상 없지만, 여성의 경우 속뜻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생각하는 것과 뱉는 말에 차이가 있다는 건 말을 못 하거나 안 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상대방이 적당하게 눈치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내포되어있는 경우다.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오해를 사기 쉬운 표현은 지양해야 맞다는 원칙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것이다.


한 번은 엄마한테 '프러포즈를 어떻게 받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랑 하루는 바닷가를 갔어. 거기서 아빠가 갑자기 그러는 거야. '우린 좋은 지아비랑 지어미가 될 거야.' 결혼하자는 소리잖아." 엄마는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몇십년 살고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딱히 프러포즈는 아니었다."고 대답하더란다. 의도가 다분하면서도 모호한 아버지의 화법과 대화의 원칙을 곧이곧대로 고수한 엄마의 착각 덕분에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


폴 그라이스가 말한 대화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들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부자연스럽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화법인 까닭이다. 그라이스 역시 대화의 원칙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주목했던 건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원칙을 위배하는가'였다. 문화의 차이가 바로 그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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