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코스트코가 식자재나 생필품을 사는 마트...인데요. 일본에서는 데이트 코스인가요?"
미국의 한 언론사가 테라스하우스* 제작진을 만나자마자 건넸다는 질문이다. 너무 궁금했다며.
내막은 이러하다. 마음에 둔 여성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간 남성. 운전해보고 싶다는 걸 핑계 삼아 은근슬쩍 여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장면이다. 남성의 마음을 진작에 알아챈 여성은 호응할 생각이 없는 눈치.
남 : 그 차 타보고 싶은데, 같이 타자.
여 : 차? 다들 코스트코 가고 싶다던데.
남 : 코스트코?
여 : 응.
남 : 이 맥락에서 코스트코는 좀...(웃음) 난 지금 데이트 신청하려고 한 건데.
여 : 아... (웃음) 데이트?
남 : 갑자기 코스트코 이야기가 나와서.
여 : 아 그래? 코스트코 이야긴 줄 알았지.
남 : 내가 코스 짜 놓을게. 차로 어디든 멀리 가자.
여 : 멀리?
남 : 응,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
여 : 코스트코는?
남 : 어디든지 좋아
여 : 코스트코 가고 싶어. 다른 애도 가고 싶다 그랬어.
이 짧은 대화에 코스트코라는 단어가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한다. 여성은 정말 코스트코에 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다. 어떻게든 남성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겉도는 대화. 여성은 한결같이 코스트코를 방패 삼는다. 최대한 간접적으로 거절한다. 남성은 그런 여성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기어이 '데이트'라는 단어를 꺼내 든다. 부담스러워진 여성, '단둘이' 가는 것만큼은 피해보자는 심산이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다 같이' 코스트코에 가는 걸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코스트코란, 가고 싶은 데이트 코스가 아닌 막다른 골목에서 찾은 유일한 비상구 같은 셈이다. 속마음을 각색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남 : 그 차 타보고 싶은데, 같이 타자.
여 : 차? (갑자기?) 다들 코스트코 가고 싶다던데. (일단 다 같이 장 보러 가는 컨셉으로 몰아가본다)
남 : 코스트코?
여 : 응. (제발)
남 : 이 맥락에서 코스트코는 좀...(웃음) 난 지금 데이트 신청하려고 한 건데.
여 : 아...(큰일 났네, 뭐라고 하지) (웃 생각하는 시간을 벌어보자 음) (일단 되묻는다) 데이트?
남 : 갑자기 코스트코 이야기가 나와서.
여 : 아 그래? 코스트코 이야긴 줄 알았지. (앵무새 화법으로 시간을 끌어본다)
남 : 내가 코스 짜 놓을게. 차로 어디든 멀리 가자.
여 : (또다시 앵무새 화법에 도전) 멀리?
남 : 응,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
여 : (코스트코를 밀어야겠다) 코스트코는?
남 : 어디든지 좋아.
여 : (난 아니야) 코스트코 가고 싶어. (둘이 가긴 부담스러우니) 다른 애도 가고 싶다 그랬어.
미국 시청자들은 어쩌다 그녀가 코스트코에 가고 싶어 한 것이라 이해한 걸까. 여성은 굳이 갈 거란다면 '코스트코'에 가자고 했다. '데이트'라는 말을 듣자마자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코스트코 이야기인 줄 알았다'며 말을 돌린다. '멀리'가자는 말에 '멀리?'라며 되묻더니 다시 '코스트코' 방패를 꺼냈다. 어디든지 좋다는 말에도 '코스트코'가 좋다며 '다른 애'를 끌어들인다.
대화 내내 여성은 확실한 의사표현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시종일관 웃음으로 무마했고 말을 돌렸다. 직접적으로 'NO'를 외치지 않았을 뿐 간접적인 표현은 끊임없이 등장했다. 눈치나 표정, 정적, 되묻기, 못 알아들은 척, 달갑지 않은 뉘앙스. 그녀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무마하는 듯한 웃음, 멋쩍은 미소, 어색한 정적, 우회적 표현. 어쩌면 우리에겐 익숙한 문화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승객을 힐끔거리거나 곁눈질로 눈치를 주는 사람은 있어도 대놓고 "통화 자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사실 오늘 퇴근길 버스에서 겪은 상황이었다). 사무실에서 볼펜을 똑딱거리는 사람에게 헛기침은 할지언정 "볼펜 좀 제발 그만."이라고 말로 표현하는 경우도 드문 편이다. 미국 시청자들이 해당 에피소드를 보고 '일본에선 코스트코가 데이트 코스로 인기 있나 봐.'라고 생각했다는 건 그들 문화에선 직접적인 언어 표현을 그만큼 중요시한다는 방증이다.
테라스하우스 시리즈 내내 코스트코 사건이 회자됐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미국인의 시각 또한 신선하고 낯설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깔끔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이 있다. 에드워드 홀(E. T. Hall)의 '문화 식별법(Hall’s theory of cultural context)'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화를 나눌 때 '얼마나 문맥에 의존하냐'를 보는 거다. 여기서 문맥이란 분위기, 눈치, 뉘앙스, 말투, 눈치와 같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거기에 둘 사이의 관계와 전후 맥락까지 포함된다. 모두 언어가 아닌 눈치로 파악해야 하는 요소들이다.
한국과 일본은 에둘러 말하고, 줄여 말하는 데 익숙한 문화국가다. 그만큼 공유하는 문맥이 거대하다(high context)는 뜻이다. 에드워드 홀이 말하는 문맥의 정의는 '벌어진 일을 휘감고 있는 정보, 벌어진 일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것'. 여성이 남성에게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못한 이유엔 다양한 배경이 있다. 매일 얼굴을 보며 살아야 하는 사이라는 점. 남성이 직접 고백을 해온 게 아니기에 직접 거절할 명분 또한 없다는 점. 섣불리 나섰다가 관계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점. 이야기하지 않아도 지레짐작으로 눈치채 주길 바란다는 점. 그 마음들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정적과 멋쩍은 웃음, 못 알아듣는 척으로 드러날 뿐.
에드워드 홀의 '문화 식별법'으로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정리하면 '눈치'가 탄생한 배경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신맛이랑 단맛을 구분해놓고 단맛은 어떻게 단지 디테일하게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매콤달콤인지 새콤달콤인지 짭조름한 달달함인지 알아보기 위한 구별법인 셈이다.
*테라스하우스
테라스하우스는 넷플릭스와 후지 텔레비전이 공동 제작하는 일본의 리얼리티 쇼. 독채와 차량을 제공하고 일반인 남녀 여섯 명이 생활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처음 만난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 관계를 맺어가며 나오는 언어, 녹화된 화면을 모니터 하는 패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까지. 말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도구로써 종종 사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