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홀의 '문화 식별법'으로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정리하면 '눈치'가 탄생한 배경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신맛이랑 단맛을 구분해놓고 단맛은 어떻게 단지 디테일하게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매콤달콤인지 새콤달콤인지 짭조름한 달달함인지 알아보기 위한 구별법인 셈이다.
'고맥락'이란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에 비해 한국과 일본은 고맥락 문화다.
우연히 마주친 지인과 안부를 주고받다 헤어질 즈음이 되면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오간다.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언제가 좋아? 난 다음 주 월, 수 괜찮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래, 그러자, 정도만 주고받고 각자 갈길을 간다.
밥 먹을 요량으로 꺼낸 이야기였다면 "다음 주 언제 시간 돼?" "이따가 카톡 할게." "말 나온 김에 내일 어때?" 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이라도 꺼내 들었을 것이다. 물론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래!" 외치며 날짜를 잡을 수도 있다. 어쨌든 상대방이 말했으니 감당은 상대의 몫이 된다. 정리하자면 정답이 없단 이야기다.
문장의 의미만 놓고 보면 밥을 먹자고 한 게 맞는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게 (혹은 아예 아무 생각도 안 들게) 만드는 표현이다. 그만큼 '애매모호하고 간접적'이라는 뜻이다. 예의상 하는 말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빈말이 어떻게 예의가 될 수 있겠는가. 눈치는 오롯이 듣는 이의 몫이 된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자리로 동료가 찾아온다. "식사는 했어요?" 묻는다. 대부분 이 질문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식사를 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닌 다른 용건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했죠, 드셨죠? 별 의미 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니요? 일이 너무 많아서 못 먹었어요."라며 끼니를 거른 이유를 말하기 시작한다던가 "저는 짜장면 먹었는데, 뭐 드셨는데요? 맛있었어요?" 라며 식사를 대화의 화두로 잡아버리면 상대방은 난감해질 수 있다. 문장이 본연의 의미대로 해석되었을 뿐인데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만큼 '언어를 향한 의존도가 낮다'는 걸 보여준다.
모든 표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명확한 표현을 요구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은 높은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라는 말도 있다. 가령 신입사원에게 절대 하면 안 될 세 가지 행동을 말해준 뒤 "만약에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하면 연봉 삭감될 수도 있어요."라고 한다 치자. 신입사원이 되묻는다. "진짜요?" 물론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만큼 하면 안 된다는 의미를 지닌 거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라는 말은 문장 그대로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대놓고 언어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다. 고맥락문화를 부정할 길이 없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월급을 안 주겠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걸 믿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생각보다 눈치가 없네?"
야근하는 후배에게 "피곤하지?" 물었을 때 진심으로 피곤하지 않아서 "아닙니다." 대답할 수 있지만, 피곤하다 하더라도 선배 앞에서 "피곤합니다!"를 마음 편히 외칠 수 없는 것처럼. 문장을 본래 의미대로 해석했다간 자칫 눈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서양의 문화 차이로 맥락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살펴봤다.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을수록 암시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한다. 직접적인 화법이라 언어 그 자체 의미를 중요시하는 건 서양권의 저맥락문화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제 같은 고맥락문화인 한국과 일본의 말문화를 차근차근 들여다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