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2016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후회 따위는 없다"
한마디를 남기고 은퇴를 선언했던 사람.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다. 메이저리그 시절, 시애틀 마리나즈에서 뉴욕 양키즈로 이적할 때였다. 11년 반이란 시간을 보내고 떠나는 자리. 기자가 물었다. "마리나즈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한 가지 말씀해주신다면?"
이치로가 답했다. "오랫동안 있었던 구단이라서요. 한 가지를 가려낸다는 게 어렵습니다." 그리고 약 3초 정적을 둔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방금 이 침묵이 대답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この間を察してください)."
쓰인 뜻대로 해석하면 '이 침묵을 짐작해달라(この間を察してください)'는 이 표현, 우리에겐 다소 낯설다. 침묵의 의미를 헤아려달라니. 침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떻게 안다는 걸까. 당시 통역사도 난감했던 걸까 이치로의 멘트는 영어로 통역되지 않았다.
일본어엔 신기한 표현이 있다. '오삿시쿠다사이(お察してください)'라는 말인데 '알아달라, 헤아려달라, 살펴달라'는 의미다. 눈치껏 짐작해달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질문을 했는데 구체적인 답을 내놓는 대신 저 표현을 사용한다. 설명하기 어렵거나 말하기 애매하니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꼭 말을 해야 아세요?'라는 뉘앙스인데 표현 자체가 공손하다 보니 실례는커녕 예의 바른 표현에 속한다. 해석의 여지를 상대방에게 넘긴다는 뜻에서 일종의 예의가 될 순 있겠지만, 참으로 알쏭달쏭한 표현이다.
하루는 사무실에 앉아있던 동료의 손에 5만원권이 다발로 들려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저 용돈 주시려고요?" 했는데, 동료가 살짝 당황한 듯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오늘 빈소에 가야 하는데 제가 부의금을 맡게 되어서요." 순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기어이 하면 이 사달이 난다. 그제야 동료가 입은 옷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이란 걸 깨달았다. 어쩌면 이럴 때 동료의 입장에서 쓸 수 있는 말이겠다. "저 용돈 주시려고요?"라는 질문에 '빈소에 가야 한다'는 대답 대신 '오삿시쿠다사이(お察してください)'라는 말로 돌려준다면 질문을 던진 나도 받은 동료도 서로 덜 민망하고 덜 미안할 수 있다. '삿시(察し)'라는 단어는 관찰하다 할 때 '살필 찰'자다. '오삿시쿠다사이(お察してください)'라는 말을 건넸다는 건 살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힌트가 숨어있다는 뜻이다. 맥락이든, 분위기든, 전후 사정이든, 복장이든.
이치로가 의도적으로 침묵을 두고 굳이 그 침묵으로 살펴달라, 헤아려달라, 말했던 건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맥락이지만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볼 순 있다. 분명한 건 굳이 이치로가 대답하기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11년 반을 보낸 가족 같은 팀. 우여곡절이 많았을 타지 생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좋았던 추억일 수도 있지만 힘들었던 기억일 수도 있다.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감정. 침묵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가려낼 수 없을 만큼 어렵고 다양하다는 뜻도 포함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엔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 이야기다. 2013년 일본 프로구단 오릭스 버팔로스에 이적할 당시 국내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롯데는 그에게 친정과 다름없는 구단. 정든 팀을 떠나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눈앞에 둔 그에게 기자는 각오를 말해달라 부탁했다.
"일본서는 용병이자 신인입니다. 그쪽(오릭스)이 원하는 대로 눈치껏 따라가서 용병이 아닌 가족으로 다가가겠습니다."
각오라는 건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말한다. 그에 대해 '신인의 마음'으로 '눈치껏', '가족으로' 다가간다는 결의를 보였다. 여기서 '눈치껏'이라는 말이 참 알쏭달쏭하다. 우리야 익숙한 표현이니 군기 빠짝 든 모습으로 적응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눈치껏'이라는 말 자체에 워낙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눈치껏 대충 해." "눈치껏 빠져나와." "눈치껏 점수만 올려놔."처럼 타인의 기색을 살살 살펴가면서 요령을 부린다는 의미. "눈치껏 잘 적응해봐." "눈치껏 잘 달래줘."처럼 정해진 범위 내 기량을 발휘하라는 의미. 정확한 의미를 그려내긴 어렵다. 어쨌거나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이 기준점이 된다. 당시 이대호 선수에게는 오릭스 선수들과 가족처럼 어울리는 게 가장 큰 목표였던 모양이다. 각오대로 그는 2015년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2016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헤아려주기 바라는 '침묵'. '눈치껏' 따라가겠다는 다짐. 이 두 가지 사례에 공통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는 암묵적인 전제. 침묵도 눈치도, 해당 언어를 모어로 두는 사람들에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맥락'이기 때문이다(간혹 우리가 그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회사 회식 일정이 정해지면 누군가는 분주해진다. 적당한 장소를 찾고, 예약을 하고, 미리 도착해 요리를 주문하는 역할을 도맡는다. 어떤 요리가 괜찮을지, 언제쯤 주문하는 게 타이밍에 맞을지, 상사한테 넌지시 물어보면 "적당히 시켜놔. 눈치껏. 뭘 물어봐."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너네 먹고 싶은 걸로 골라봐, 했던 상사가 뒤늦게 도착하여 테이블 한 번 쭉 훑고는 "야, 무슨 음식들이 죄다 빨갛냐?" "왜 다 해산물이니?" "이게 젊은 애들 입맛이니?" "좀 식은 것 같다?"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쯤 되면 '눈치껏'이라는 건 집단 내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의미하는가 싶기도 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란 기대'를 가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과 일본은 그렇게 비슷한 듯 다른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둘 다 맥락을 중요시한다는데 '공기를 잘 읽는 게 미덕'인 일본과 '눈치껏 잘하는 게 미덕'인 우리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비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