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담긴 우리의 문화

by 알로

엄마한테 팔에 난 작은 흉터를 보여줬던 날. 엄마가 그랬다.


"듣보잡이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깜짝 놀라 되물으니 엄마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한다. "응, 딱 듣보잡이야."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엄마, 듣보잡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 차근차근 설명하니 이번엔 엄마가 놀란다.


몇 년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다. 듣보잡. '돈으로 혼쭐을 내주겠다'는 뜻인 '돈쭐'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 역시 2019년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업에 '착한 소비'로 보답하겠다는 의미다. 그 기업이 어딘지 어떻게 아는가. SNS다. SNS는 주로 누가 하는가. MZ세대다. 그들이 누군가. 소비를 통해 가치관이나 신념을 드러내는 소비 트렌드를 가진 이들이다. 이처럼 단어 하나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문화,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끊임없이 반영되고 있으니 아마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도 신조어가 태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눈칫밥이란 말을 들으면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눈치 보지 말라, 는 말은 눈치라는 게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라는 점을 알려준다. 눈치 좀 주지 말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 눈초리와 눈짓으로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일본엔 할복(切腹) 문화가 있다. 검으로 배를 갈라 죽는 자살의 한 종류. 무사 계층에서 행해지던 자결 방법이다. 책임을 지거나 명예를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머리도 목도 심장도 아닌 배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배를 가른다(腹を割る)'는 말은 숨기지 않고 본심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솔직해지자, 라는 말보다 훨씬 묵직하게 들린다. "우리 배를 가르고 제대로 얘기해보자." 외국인이 멋모르고 들으면 참 괴기한 표현이다. '배를 졸라매다(腹をくくる)'라는 표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각오를 다진다는 뜻이다. 일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배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엄마와 연결된 탯줄이 자리했던 곳이라서일까. 진심, 명예, 자존심과 같은 묵직한 의미들을 부여한다.


"그 친구는 말을 참 예쁘게 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군지도 모르는 '그 친구'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다. 언어는 그런 매력을 담고 있다. 단어 하나에 그 사람의 성향, 한 문화의 가치관까지, 모든 걸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거꾸로 모든 걸 담아낸 언어라는 그릇에서 하나하나 꺼내가는 작업. 건져진 문화를 들여다보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간이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탐구하는 학문. 인지언어학이다. 8년 전에 썼던 논문의 굵은 뼈대이기도 하다. 고로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쓰는 '말'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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