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일본이 몇 배로 우리나라 눈치를 많이 본다는 사실'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근거는 최근 1년간 한국에서 '일본 반응', 일본에서 '한국 반응'을 검색한 구글 그래프. 일본이 한국을 검색하는 양이 월등히 많았고, 그 현상을 '눈치 본다'고 표현한 점이 내심 흥미로웠다. 내친김에 최근 5년 치를 뽑아보았다.
일본이 압도적으로 '한국 반응'을 검색한 시기는 2019년 7월 7일 주간. 빨간색 그래프가 뾰족하게 치솟는 지점이다. 그해 여름, 한일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일본이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시켰고, 우리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했다. 일본제철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복하면서 한국은 일본 여행 보이콧에 돌입했다. 양국 분위기를 보도한 온라인 기사마다 서로를 헐뜯는 댓글로 채워졌다.
일본 시민들의 혼네(本音), 그러니까 진짜 속마음은 무엇인지 들어보라는 지시가 떨어져 오사카 출장길에 올랐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일본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호텔방에서 티브이를 켜면 어느 채널이건 수출규제와 한일관계를 보도했다. 일주일 동안 투표소 주변과 기차역 광장, 길거리, 식당과 술집까지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불매운동을 알고 있는지, 수출규제와 반한감정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관광교류단절을 어떻게 보는지, 눈만 마주치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수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꺼내든 단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요." 개인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정치는 정치인의 몫, 문화교류는 시민들의 몫인데, 정치문제로 반일감정이 생겨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모습이 낯설다는 뉘앙스였다. 한 시민은 힘주어 말했다.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 좋고 싫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정치와 삶이 분리되는 것일까. 분명한 건 우리가 그해 여름 그리고 지금까지도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정치가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정치와 일맥상통하는 역사엔 그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걸까. 그 논리대로면 사죄도 배상도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맞다. 한편 이해할 여지 또한 있었다. 비아냥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극우단체와 맞서 싸우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년 찾아 사과하는 일본 시민단체가 그 이유였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매우 다정하고 다소 쿨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불매운동? 일본 사람은 참이슬 안 마셔도 잘살아. 그런데 너네는 유니클로 경량 패딩 안 입고, 아사히 캔맥주 안 마시면 못 사는 거 아니야? 과연 누가 손해일까? 웃으며 말하던 한 남성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편의점에 돌아온 탕자마냥 자리를 되차지한 일본산 캔맥주를 보면 그때 기억이 괜스레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실소를 뿜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쿨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한국의 반응을 검색했다는 데이터다. 덩달아 분노하지 않겠다며 속내를 감추었지만, 사실은 궁금하고 사실은 분노했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았던 걸까. 누구의 시선을 신경썼기에 본심을 그러내지 않았던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