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사례
Everything about the library had a story ㅡ the architect, the muralist, the person who developed each collection, the head of each department, the scores of people who worked at the library or patronized it over decades, many now long gone but still somehow present there, lingering in the wings, a durable part of its history. - Susan Orlean, 『The Library Book』, p. 14 -
미국에 머문 지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각지의 공공도서관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대도시인 뉴욕, 시카고부터 덴버, 오스틴까지 도시의 분위기만큼이나 색다른 도서관 풍경들에 도서관은 늘 여행지에서 꼭 들러야 할 관광지 중 하나였다. 그 동안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일부러 시간을 내 도서관을 둘러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정도로 도서관은 한 나라와, 그 도서관을 품고 있는 도시를 대표하는 곳이었다. 특히 시민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공공도서관은 변화하는 지역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유기체적인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미국 공공도서관들을 탐방한 경험을 공유한다. 각 공공도서관들의 서비스 중에서 가장 특징있고 인상 깊었던 서비스 하나씩을 골라 소개한다.
아카이브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자료 보존과 정보 제공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도서관의 설립 목적 그 자체나 다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서관은 소장 자료가 점차 늘어나면서 공간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1911년 문을 열어 10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뉴욕공공도서관(NYPL, New York Public Library) 또한 기존의 시설로는 늘어나는 장서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뉴욕공공도서관이 위치한 맨하탄의 높은 부동산 가격을 고려하면 시설을 증축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뉴욕공공도서관은 인근의 컬럼비아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하버드대학교와 함께 공동 관외 수장고를 설립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6월 말 ALA 컨퍼런스 참석 차 동부 지역을 견학했을 때 프린스턴대 사서로 근무하시는 배승일 선생님의 제안과 소개로 ReCAP을 견학할 수 있었다.
이 공동 관외 수장고의 명칭은 ReCAP(The Research Collections and Preservation Consortium)으로,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대학교 부지, 포리스털 캠퍼스(Forrestal Campus)에 위치해있다. 1999년 ReCAP 설립을 논의할 때부터 참여했던 초기 설립 멤버들은 뉴욕공공도서관,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 세 곳이고, 하버드대는 2016년 준회원을 거쳐 2018년에 정식 멤버가 되었다. ReCAP은 15,222 평방 미터의 부지 위에 사무실, 작업실, 영상 자료 보관실, 7개의 일반 수장고 모듈이 설치되어 있으며 회원 도서관에서 입고한 장서 1,500만 권 이상을 보관하고 있다. 한편, ReCAP의 이사회는 각 도서관의 관장과 대학의 부총장급 인사로 구성되어 시설 운영 및 예산에 관련한 규정을 결정한다.
2000년에 처음 문을 연 ReCAP은 초반에는 소장 자료 등 기록물을 물리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점차 기관 간 상호대차와 공유 컬렉션(Shared Collection)을 개발하며 기능을 확대해나갔다. 수장고에 보관된 책들을 자관 자료(Private), 열린 자료(Open), 그리고 공유 자료(Share)로 나누어 열린 자료와 공유 자료를 회원 도서관 이용자들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SCSB(Shared Collection Service Bus) 시스템이 그것이다.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회원 기관에 소속된 이용자는 자기 도서관의 온라인 카탈로그를 통해 ReCAP에 소장된 다른 도서관의 자료들을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신청한 자료들은 이용자가 원하는 도서관으로 24시간 안에 배달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수장고에 책을 배가하는 방식, 운영 경비를 나누는 방식 등 ReCAP 견학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과 사립대학교들이 ReCAP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겪었을 많은 갈등들이 예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원 도서관들의 충분한 논의와 타협으로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자료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면서 이용자 서비스 수준도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ReCAP의 다음 계획은 공동 장서 개발이라고 한다. 공유 컬렉션 시스템을 이미 마련해 둔 상태에서 장서까지 함께 개발한다면 회원 도서관 간 같은 자료를 중복으로 구매하는 일을 방지하여 한정된 예산으로 비교적 방대한 주제의 장서를 구축하는 등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배승일, 도서관 수장 공간 문제 해결의 사례: 공동 관외 수장고, ReCAP,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 문화』 2019년 3·4월호, pp. 24-29.
ABOUT RECAP https://recap.princeton.edu/
공공도서관이 가장 확보하기 어려운 이용자 세대 중 하나는 틴에이저(Teenager)라고 한다. 이에 미국 공공도서관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 세대를 도서관 이용자로 확보하고, 도서관의 역할 중 교육적 기능을 다하기 위해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과 서비스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시카고의 중앙 공공도서관인 해럴드-워싱턴도서관도 2009년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혁신적인 학습 공간인 YouMedia를 운영해왔다. 해럴드-워싱턴도서관은 미국 내 공공도서관 중에서도 방대한 규모와 장서 수로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YouMedia 정책이 공공도서관의 가치를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YouMedia는 청소년들이 디지털 학습 도구를 통하여 그래픽 디자인, 사진, 영상, 음악, 2D/3D 디자인,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등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YouMedia실에는 청소년용 자료뿐만 아니라 랩탑, 데스크탑 컴퓨터, 3D 프린터기, 미디어 제작 기구, 소프트웨어, VR 장비 등이 갖춰져 있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지도할 수 있는 멘토들도 있다. 시카고공공도서관은 2009년 해럴드-워싱턴 도서관에서 처음 시작하여, 현재까지 총 19개 지점에서 YouMedia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350~500명의 청소년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YouMedia가 주목받는 이유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에 대한 요구에 맞물려 교육 기능을 맡은 공공도서관이 이에 대한 책임성을 느끼고 기획 및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앞서 말했듯 도서관 이용에 소극적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간과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디어의 형태를 갖춘 정보들이 나날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매일같이 접하는 청소년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읽고 듣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이 더욱 분명했던 것 같다. 이러한 노력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도서관이라는 안전한 공적 공간에서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고, 또래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고, 멘토와 도서관 사서 등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YouMedia https://www.chipublib.org/programs-and-partnerships/youmedia/
The Consortium on Chicago School Research, Teens, Digital Media, and the Chicago Public Library https://consortium.uchicago.edu/publications/teens-digital-media-and-chicago-public-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