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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Dec 19. 2022

16. 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날

[곰씨의 의자], 노인경, 문학동네

글을 잘 쓰기 위한 100일간의 챌린지
'그림책에서 첫 문장을 빌려오다'
오늘은 [곰씨의 의자]에서 첫 문장을 빌려왔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날입니다.
시집을 읽기에 좋은 날이지요.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다 보면
곰씨는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카모마일을 마십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은은한 들향이 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찾아서 마십니다. 따뜻한 카모마일 한 잔,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고요한 시간을 독차지합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내 것, 나로 가득 찬 시간과 공간을 느낍니다.


초등학교 때였어요. 선생님이 대뜸 시를 지으라는데… 당최 시가 뭔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어요. 단순히 말을 줄이고 띄어쓰기를 많이 하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중, 고등학교 때는 시험을 보기 위해 시를 읽었어요. 저는 남들이랑 다르게 생각하길 즐겨하는데, 제가 생각한 답을 적으면 틀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시험에 많이 나오는 시들을 읽고 정해진 해석대로 외웠어요.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읽었는데 읽다 보니 슬퍼졌어요. 마음을 느끼는 그대로 배설하지 않고 더러운 기분이라도 곱게 엮어 단정하게 내놓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제는 찾아서 읽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시 중 가장 좋았던 시는 엘렌 바스의 <중요한 것은>이란 시입니다. 뭐든 명확한 게 좋고 계획적인 성향인 저에게 불확실하기 그지없는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나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지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알기 위해 수없이 기도했는데, 작가는 삶을 그냥 받아들이라 말합니다.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고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바스러지고 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말이죠.


드디어 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내 시선대로 해석한다 한들 틀렸다고 말하는 이도 없고요. 그런데 때로는 시를 모르던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시가 필요하지 않았던 그때가.


끝으로 앨렌 바스의 <중요한 것은>이란 시를 덧붙입니다. 당신이 이 시를 읽고 '이게 무슨 뜻이야. 왜 이렇게 우울해.' 하면서 지나치길 바라요. 아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위로받길 바라야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시가 필요하지 않던 천진난만한 시절이 좋은지, 삶의 우여곡절을 겪고 세상과 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때가 좋은 건지… 다만 당신이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기를, 그것만은 간절히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지고

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당신과 함께 앉아서

그 열대의 더위로 숨 막히게 하고

공기를 물처럼 무겁게 해

폐보다는 아가미로 숨 쉬는 것이

더 나을 때에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마치 당신 몸의 일부인 양

당신을 무겁게 할 때에도,

아니, 그 이상으로 슬픔의 비대한 몸집이

당신을 내리누를 때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

삶을 부여잡고

매력적인 미소도, 매혹적인 눈빛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 얼굴에게 말한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엘렌 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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