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알고 싶었는데 ]
그런데 다시 일어선다면,
'다시 시작해야'겠지.
병에 완전히 끌려올라갔던 저 꼭대기까지
다시는 끌려가지 않았으면 해.
1889년 1월 9일, 아를
<고흐의 편지> 중에서
- 코톨드갤러리
일요일이었다. 유럽의 일요일아침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하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코벤트가든 인근에는 아침부터 몰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누가봐도 이 곳은 관광지라는 듯, 주말 코벤트가든 인근에서 부지런히 버스킹으로 한 몫 챙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새삼 깨닫는다. 이들의 버스킹을 보는 것도 재미는 있겠으나 오늘은 어제부터 생각해뒀던 그 곳, 코톨드갤러리에 가야했다. 사실 오늘은 쇼디치 브릭레인마켓이 크게있는 날이지만 '힙'과는 거리가 먼 관계로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나에겐 코톨드 갤러리가 운명처럼 어젯밤에 딱 읽힌 것이었다. 이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는 법... 운명까지 거론하며 유난스럽게 구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알고싶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규모 갤러리로 손꼽히는 이 곳을 공유하려니 괜히 어떤말이라도 좀 더 보태고 싶은 것이다. 르네상스부터 20세기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작품들이 제대로 들어차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중 코톨드의 사랑을 받았던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컬렉션은 더욱 근사하다.
가문대대로 섬유사업을 했다는 사업가 코톨드는 굉장한 부호였는데 그가 회화에 매료되면서 한 점, 두 점 모은 작품이 모여 이렇게 갤러리가 되었다고 한다. 역시 '자본이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과한걸까. 아무래도 좋다. 런던에 오면 무료 박물관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둘러보는 것만 해도 여정이 빠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7파운드짜리 갤러리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감동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대영박물관의 <로제타스톤>이나 네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고흐)>, 테이트모던의 <울고있는 여인(피카소)> 앞에서는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다. 인기작품들 앞에서는 늘 사람들이 붐비기 때문에 내가 지체하고 있으면 동맥경화처럼 관람객의 흐름을 꽉 막아 원성을 산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요, 두번째 이유는 사진촬영 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집중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코톨드 갤러리에선 우수한 작품을 온전히 나 홀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한적함이 이 갤러리의 매력이다.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홀로 7파운드에 맘껏 관람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떤 갤러리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정신적포만감을 준다.
심지어 이 갤러리는 홍보욕심도 없는 건지, 이 정도의 작품을 소장하고도 다른 갤러리처럼 현수막이나 홍보포스터를 내지도 않는다. '올 놈만 오라'는 이 박물관의 스타일도 아주 마음에 든다. 코톨드 갤러리를 가겠다고 했더니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사람들이 거긴 어디냐는 반응이다. 이런 곳을 이야기 할 때 느끼는 묘한 쾌감은 덤이다. 튜브를 타고 Temple 역으로 간다. 어김없이 런던의 강바람은 내 따귀를 때렸지만 목도리를 얼굴 위아래로 감아 오묘한 비주얼로 나를 보호한다. 서머셋하우스가 보인다. 서머셋하우스는 왕립미술원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들이 함께 사용하는 건물이다. 이 안에 코톨드 갤러리가 있다. 들어가서 티켓을 끊고 아담한 카페에 앉아 아침 겸 점심으로 초코스콘과 프레쉬민트 티를 마셨다.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자, 이제 입력(음식물)이 되었으니 출력(관람)을 해볼까. 전시실로 들어가려고 계단을 오르다보니 계단 가운데가 오가는 발길에 닳아 패였다. 보수를 할 법한데도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첫 전시실에 들어가면 코톨드 가문에서 사용한 식기들과 초상화들이 전시되어있다. 은색 식기들이 광택을 뽐내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 아름다움과 고단함 그 중간 언저리
그 뒤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작품은 드가의 <무대 위의 발레리나> 였다. 총총히 발을 세워 이동하는 발레리나와 그 뒤를 이어 따라가는 또 다른 발레리나를 그리고 있다. 발레리나는 늘 무대에서 아름답다. 꼿꼿한 허리와 하늘거리는 손짓은 그들을 마치 깃털처럼 보이게 한다. 작품 속 그녀들의 움직임도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기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했겠는가, 드가에게 발레리나는 아름다움 이전에 주어진 시간동안 일을 해야하는 근로자였다.
발레리나를 노동자로 보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하루종일 온 몸이 바스라지도록 연습해도 결국 무대 중앙에서 조명을 받는 무용수가 따로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그들에게 허탈함을 안겨 줄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드가는 그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보듬었다. 그의 시선은 늘 무대의 구석에 머문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도 그렇다. 두 발레리나는 주인공이라기보다 조연에 가깝다. 두 여인의 총총거리는 움직임이 아름답지만 장면의 우측에서 좌측 하단으로 내려오는 역동적인 장면은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증거다. 덧붙여 드가는 발레리나의 얼굴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경우에 따라 일그러지고 코가 들창코처럼 올라가기도 한다. 아마 노동자로써의 발레리나를 더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저런 사연들을 덮어놓고 이 그림을 감상하면 드가가 포착한 장면은 상당히 우아하다. 고단한 현실을 아름답고 따듯하게 표현하는 것, 아마 이건 드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세계일 것이다. 그의 작품 앞으로 로뎅의 브론즈 작품이 보인다. 창문을 배경으로 촬영하니 무용수가 창밖을 응시하며 손짓하는게 아련하다. 마치 드가의 세계를 현실로 끌고 나온 것 처럼 말이다.
- 관람석의 두 남녀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운 몸짓 곁으로 그림 속 남녀가 관람객이 되어 이 전시실을 조망하고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인 <관람석>이 그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다. 누구는 온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춰야하고 그걸 이렇게 보고 즐기는 사람 또한 어딘가엔 있는 것이다. 드가가 노동자로써의 여인을 표현했다면 르누아르는 여성의 사랑스러움 자체를 표현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채색한 검정색은 작품 속에 잘 어우러져 모던하게 느껴진다.
그의 작품에서 표현된 여성의 발그레한 두 볼과 풍성한 머리결, 감각적인 드레스 디자인은 정교한 붓터치로 완성된 것이다. 그의 붓터치는 마치 공기마저 그리는 듯 해서 한 가지 감각 이상의 것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림은 작가의 삶을 닮는 걸까.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정신병(고흐), 가난(모딜리아니) 등으로 시달릴 때 그래도 르누아르만큼은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아내와도 백년해로 했다는건 다른 인상파 화가에 비해 '확실히'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코톨드가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과 함께 최고가로 구매했다는 르누아르의 <관람석>이니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진다. 전시실에서 발레리나들과 함께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각자 다른 방향에 머문다. 여자 모델은 몽마르트의 거리여자였던 니니로페즈(Nini Lopez)라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공연장 발코니 석에 앉아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뒤에 있는 남자는 망원경으로 뭘 보고 앉았는지, 여자는 왜 무대를 안보고 먼 곳을 응시하는지 각자의 사정은 알 수 없다. 다만 르누아르가 작품에서 의도했던 것이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우아한 이 장면을 어떻게 봐야할까.
- 파리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그녀
그 다음 작품은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이었다. 이 작품 앞에는 벤치가 있어 잠시 쉴 수도 있었다. 마치 내가 이 술집의 오랜 단골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내 앞에 있는 여인은 생기를 잃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바로 읽을 수 있는 무력감과 고단함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 하다. 심지어 그녀는 술도 따라줘야하고 진상취객도 상대해야하니 이 놈의 팔자는 언제 한 번 볕을 보려는지 지겨움도 이런 지겨움이 또 있을까 싶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 벤치 앞에 멀뚱히 이 장면을 구경하는 '나'도 있으니 그녀가 얼마나 짜증이 솟구칠까. 술을 사먹든지, 안주를 사먹든지 ...
왠지 그녀의 다음 업무는 거울에 비친 저 남자를 상대하는 일이 되지 싶다. 돈이 되니 일을 하고는 있다만 이미 미소는 잃었고 기계적인 리액션만 남았다. 아, 그녀의 삶에 안녕을 빈다. 직장 속에서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고있는 현재 나의 친구들에게도 삶이 늘 안녕하길 빈다.
그림 속 모델은 실제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의 여급이었던 쉬종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리얼함이 묻어난다. 마네는 여기에 그가 투입할 수 있는 모던한 요소를 다 집어넣었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이 작품은 굉장히 감각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쉬종의 드레스로 검정색을 과감하게 사용했음에도 화면상 어색한 부분없이 술집 그대로의 분위기가 표현된 것, 씨끌벅적한 이 장면이 어딘지 모르게 멜랑콜리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그의 의도였을 것이다. 즐거운 사람들 속에서 이 지치는 여급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이게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니면 무엇일까.
하지만 슬퍼하긴 이르다. 이 전시실에서는 그녀를 깊이 헤아리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맞은 편에 있는 드가의 조각상이 그것이다. 드가가 표현한 여성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의 쉬종은 같은 전시실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녀들끼리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지 짐작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 작품을 멀리서 보면 서로 연민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단한 발레리나와 지친 여급이 서로의 삶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다.
- 마네, <풀 밭 위의 저녁식사>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마네의 <풀밭 위의 저녁식사>가 여기 있다는 것은 반갑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어야 할 작품이 어찌 여기에 있는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마치 연습작인 것 같은 퀄리티도 어떤 이유에선지 궁금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저녁식사>를 피카소가 자신의 스타일로 패러디한 <풀밭 위의 저녁식사(파리, 피카소미술관 소장)>도 있으니 이것도 혹시 누군가의 '스타일'로 재해석 된 것인 걸까,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한다.
전원경 작가의 <런던 미술관 산책>을 참고하면, 그의 연습작인 줄 알았던 이 작품은 이미 <풀밭 위의 저녁식사>를 출품한 뒤 친구의 부탁으로 한 점 더 그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이즈도 대단히 작다. 오르세미술관의 <풀밭 위의 저녁식사>는 가로세로 폭이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대작인데 코톨드갤러리의 <풀밭 위의 저녁식사>는 소규모 갤러리에 걸린만큼 아기자기한 면이 있다.
- 고흐, <귀를 자른 자화상>
네셔널 갤러리에서 <해바라기>를 본 제가 며칠 되지 않아 또 이런 작품이라니 여기가 유럽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된다.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갤러리에서 온전히 혼자 감상할 수 있다는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파도처럼 자신을 침잠하는 열정과 광기로 결국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눴다. 본인의 삶을 예감한 듯 죽기 두 달 전부터는 매일 한 점씩 약 70점에 이르는 작품을 쏟아냈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그의 삶에 숨을 불어넣는 유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고갱과 함께 지내던 어느 날 그는 고갱과의 언쟁으로 그의 목에 면도칼을 대게 된다. 이 일로 놀란 고갱은 그 날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없는동안 고흐는 그의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귀를 면도날로 잘라 신문지에 싸서 친했던 창녀에게 던져주고 자신은 집에 돌아와 의식을 잃는다. 이후 새벽에 돌아온 고갱은 그의 동생인 테오에게 연락하고 그는 영영 아를을 떠나버린다.
고갱과 고흐의 이런 비극적인 운명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들의 성격차이는 서로를 배려하고 보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고흐는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 고갱과의 견해차가 있을 때마다 유연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었으니 두 화가가 갈라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귀를 자르고 상처가 아물 때 즈음 고흐는 자신을 다시 똑바로 보려했다. 그 첫번째 작품이 이 <귀를 자른 자화상>이다. 그가 귀에 붕대를 휘감고 어딘가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는 이 장면은 결연하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리던 자신 본연의 모습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 작품에 대한 광기와 열정, 이미 자신의 광기로 소진된 육체적 결핍 등이 이 작품에 모두 점철되어있다. 게다가 그의 열정만큼 물감을 듬뿍 묻혀 화폭에 찍어버린 붓터치기법(임파스토, impasto)도 왠지 보고있으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 내일이 마지막이다. 슬프다.
다른 갤러리들보다 규모는 작지만 내실있는 작품들이 그득한 코톨드갤러리에 관해 글을 쓰고 있으려니 다시 런던에 가고 싶어진다.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점이라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는 나의 지론에서 보면, 코톨드갤러리는 더할 나위없이 나의 취향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장소였다. 그 날 밤 책을 들춰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 곳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런던여행이 내일이면 끝이난다. 혼자서 원없이 작품들을 보고 간다. 누군가와 함께했다면 할 수 없었을 미술관 관람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사실 원없이 봤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런던엔 내가 갔던 갤러리 외에도 아직 숨겨진 갤러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치갤러리 같은 경우는 내가 갔을 때 리모델링 작업으로 임시폐관한 상태였다. 못 가본 갤러리들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런던의 마지막 날에는 야경을 즐겨볼 생각이었다. 남들은 제일 먼저 간다는 런던아이와 빅벤은 두번째 런던여행에서 큰 의미가 없었다. 남은 동안은 타워브릿지와 템즈강변의 야경을 실컷 즐기다 가고 싶었다. 그래서 타워브릿지에서 빅벤까지 밤에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거리가 꽤 되는데 뭐 그게 대수랴, '마지막 날'이라는 건 여행객의 없던 힘도 짜내는 원동력인 것을 ...
# 참고자료 : 전원경, <런던 미술관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