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콩과 함께한 5주
다이어트 식단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으로부터 5주 전이던 6월 중순에.
건강검진 결과지가 우편으로 날아온 그날이었다.
급하게 불어버린 몸무게도 충격적이지만
그동안 없었던 각종 성인병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무섭게 느껴졌다.
식단은 과연 성공했을까?
오늘 아침 몸무게를 확인하고
팔을 번쩍 들었다.
와, 드디어 왔구나! 그토록 기다리던 숫자가.
몸무게의 앞자리가 바뀐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5!!
그동안 먹었던 것들을 정리해본다.
처음 시작할 때 절대 지키고자 했던 건 탄수화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과일 조차 먹어선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독하게 실천해보았다.
흰쌀밥과 빵, 국수류는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요리할 때 소금과 당류를 평소의 1/10 수준으로 낮췄다.
고기류는 평소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닭가슴살은 먹지 않았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섭취는 삶은 호랑이콩으로 대체했다.
여름에 나오는 호랑이콩을 한 자루 사서 쟁여놓았다.
그리고 때때로 생선을 먹었다.
삼치나 고등어를 소금 간 하지 않고 아보카도 오일에 구웠다.
두부는 거의 매일 먹은 것 같다.
양념장 없이 생두부를 먹거나 부침으로 먹기도 하고 큐브로 구워서 샐러드에 올려먹기도 했다.
다행히 여름이라 맛 좋은 야채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이와 토마토는 간식처럼 먹었고
가지는 오일에 구워서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들깨를 넣어서 간단하게 볶아서 먹었다.
여름 가지는 정말 사랑스럽다.
수분도 많고 구우면 단맛이 폭발한다. 거기에 고소한 들깨와 참기름이 더해지면...
먹으면 행복해지는 맛이다.
적다 보니 맛있게 먹은 음식들이 정말 많았다. 다이어트한다고 스트레스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별로 그렇지 않았다. 신기했다.
오히려 잘 먹지 않던 식재료들을 새롭게 발견한 느낌이었다.
특히 콩! 나는 원래 콩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콩밥을 잔뜩 해서 주시면 투덜거리며 모두 골라냈던 사람이다.
근데 이 호랑이콩은 거짓말 아니고 진짜 맛있다.
송편에 소로 들어갈 때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이것이 나의 다이어트 최애 음식이 될 줄이야.
암튼 열심히 콩을 재배해주신 농부님들께 감사한다.
가끔 파스타나 국수류가 먹고 싶을 때는 두부면으로 대체했다. 풀무원 제품을 먹어봤는데 입에 맞았다.
몇 가지 채소들을 마늘과 할게 볶다가 약간의 간장과 후추로 간을 한 뒤 두부면을 넣고 조금 더 볶아주면 끝.
오래 볶을 필요도 없다. 두부면은 원래 익은 거니까.
다이어트 식단의 좋은 점은 요리과정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 때로는 불을 쓰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나는 워낙 해산물, 특히 해조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미역 요리도 자주 해 먹었다.
미역을 불려서 오이와 함께 아주 아주 새콤하게 무쳐먹거나(설탕을 안쳐도 천연식초에 단맛이 있다)
호박이나 느타리버섯 등과 함께 오일에 볶아서 먹기도 했다.
요리할 때마다 절대 지키고자 한 것은 간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평소 간장이나 굴소스 등을 아낌없이 넣었고 감칠맛을 위해 매실액, 미림, 참치액, 멸치액젓 등도 많이 썼었다. 하지만 식단용 요리를 할 때는 이런 양념들을 냉장고에서 거의 꺼내지 않았다. 구운 소금 약간, 후추, 가끔은 참기름을 살짝 두르는 정도로 양념해서 먹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수박, 참외, 자두, 복숭아, 포도 (계속 쓰려니 침이 고여서 너무 힘들다 ㅜ) 등등 과일을 멀리 해야 한다는 게 유일하게 힘든 점이었다.
대신 아보카도나 국산 블루베리를 가끔 먹었다.
지금까지 적어본 식단은 다이어트 용이라기보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는 평상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몸무게를 확인하고 나니 뭔가 뿌듯하고 나 스스로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름이 다 가버리기 전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는 꼭 한번 먹어야겠다.
(상단이미지 출처: 마켓 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