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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Dec 30. 2020

가상 여행기 2

연재소설 - 두번째 이야기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벌써 밤 12시가 다되었는지도 몰랐다. 제피가 싫어하는지 알면서도 최여사는 언제나 노크 따위는 생략하고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 진짜, 놀랬잖아. 언제 왔어요?”

“뭐하느라 엄마 들어오는지도 몰라? 같이 먹을까?” 

최여사가 쇼핑백을 흔들어보였다.

“또 야식이야?”

“일절만 하자. 오늘 같은 날 먹어야지 언제 먹니.”

“좋은 일 있었나봐.”

“오늘 디자이너랑 계약 성공시켰거든. 일감 따는 게 전쟁이다 전쟁.”

“월급제 직원들, 더 잘라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그런데 사람 내보내는 게 쉽나.”


최여사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제피에게 얼른 나와서 상을 차려놓으라고 말했다. 배고파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며 최여사는 대충 옷만 갈아입고 식탁에 앉았다. 최여사는 본격적으로 닭발을 뜯기 시작했다. 벌건 양념이 비닐장갑을 낀 최여사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최여사는 양쪽 입가에 묻은 양념을 휴지로 닦으면서 재빨리 다음 닭발을 집어 들었다.

“엄마, 누가 안 쫓아와. 천천히 드셔.”

“고상하신 작가님이 그러라면 그래야지.”

제피는 등단도 못한 아들을 꼬박꼬박 작가라고 부르는 게 민망했다. 친척들에게만큼은 공장 일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엄마, 어쩌면 코로나가 나한테 기회를 주는 것 같아.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

“그래? 아들 오랜만에 웃는 얼굴 보니까 좋네. 얼른 먹자.”


최여사는 식탐이 있었다. 덕분에 계절마다 옷을 사러 이태원을 다니거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 입어야 했지만 다이어트보다 먹는 걸 선택했다. 공장사람들은 최여사를 ‘메텔’이라고 불렀다. 은하철도 999의 미녀 여행가이드 메텔처럼 최여사는 겨울이면 검은색 외투에 검은 털모자까지 쓰고 여행을 갈 것처럼 바퀴달린 트렁크를 끌고 다녔다. 당연히 최여사에겐 만화 주인공 메텔의 긴 속눈썹과 금발의 생머리, 늘씬한 8등신 몸매는 없었다. 오히려 검은 망토를 입은 철이의 어른 버전에 가까웠다. 하지만 철이 대신 메텔이라고 부른 이유는 검정 트렁크 덕분이었을 거라고 제피는 추측했다. 트렁크 안에는 다자이너의 샘플과 원단이 들어있었다. 최여사가 트렁크를 끌고 공장으로 들어선다는 건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환기구도 없는 공장안에서 하루 종일 재봉틀 앞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은하철도의 승차권을 가져다 줄 거라고 기대했던 걸까. 어린 제피는 그들의 꿈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지만 그들이 수군대던 최여사의 별명만큼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린 시절 최여사 손에 이끌려 공장에 놀러 가면 직원들은 제피를 귀여워하곤 했다. 그렇다고 제피 앞에서 말을 가려서 하지는 않았는데 최여사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어린 제피는 과자를 먹다가도 유심히 듣곤 했었다. 


제피는 기획서를 준비하면서 인천공항 행 공항철도를 타봤다. 마치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열차의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 잠시 설레었다. 예전 같으며 열차칸에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공항까지 가는 여행객들이 가득했으나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피도 여행 가방은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제피는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았다. 휴대폰에서 유튜브 뮤직 앱을 켰다. 좋아요 표시한 재생 목록을 터치하여 음악을 재생시켰다. 키스 재럿의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제피는 눈을 감고 빈 모니터화면을 떠올렸다. 첫 챕터의 제목은 ‘미래로 가는 기차’로  정해야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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