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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니 Nov 30. 2023

서울의 봄 (2023)

선택하는 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9시간 동안 사라져 간 서울의 봄.



서울의 봄 (2023)

감독 : 김성수

주연 : 황정민(전두광 역), 정우성(이태신 역), 이성민(정상호 역), 박해준(노태건 역), 김성균(김준엽 역)



서울의 봄은 영화를 본 직후에는 당연하게도 배우들의 연기와 에너지에 압도되는 느낌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출에 탄복하게 되는 것 같다.


으레, 역사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볼 땐 역사를 고증하고 그 사건을 조명하는 것이 이 영화의 존재의 의미라고 단순히 생각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다음 차원의 문을 확실히 열어주는 것 같다.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도 사건 조명의 다음 차원이 있는 영화였지만 꽤나 관념적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서울의 봄이 주는 다음 차원의 묘미는 좀 더 현재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이 있다.



영화는 반란 주동자인 전두광과 그를 진압하려는 이태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극명한 선악의 대립을 선 굵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역사 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악의 대립으로 보이는 것이지 사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절대적인 선이나 악으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그 모든 일은 절대 선이나 악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이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복잡한 인간의 모습을 전두광과 이태신의 굵직한 대립 사이에 얽혀있는 많은 인물들을 통해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한 겹 한 겹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화가 나게 만드는 사람은 전두광과 반란군 외에 참모차장과 국방부 장관이 있는데, 영화가 이 둘을 묘하게 다르게 그린 점이 매우 인상 깊다. 국방부 장관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자기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라미형 인간을 보여주었다면, 참모차장은 처음에는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는 상태에서 신중한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일선에 섰다가 일이 잘못되면 져야 할 책임을 피하려는 인간으로 흐른다.  



영화에서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그 수많은 군인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김성수 감독의 전작인 아수라를 떠오르게 한다. 재미있는 점은 사건이 시작된 뒤, 반란군 내부 역시도 아수라였다는 점이다. 저마다 이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다른 인간군상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수라의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선택을 하는 자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참모차장뿐 아니라 영화에서 많은 인물들이 갈팡질팡 하다 선택의 순간을 놓친다. 선택의 순간을 놓치면 그다음부터는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어진다는 점을 영화는 꽤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태신이 지원을 요청한 각 부대 장들에서부터 마침내는 이태신의 부하인 수방사 병력들까지.


단 한 사람도 마지막까지 이태신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태신과 같은 선택을 했던 사람 중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이태신이었다고 해야겠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태신의 직속 부하가 눈에 띈다. 그가 생각한 원칙하에서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수동적인 자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를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그와 이태신의 차이는 주도적으로 뜻을 정하는 그 선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모두 상황에 대해 원칙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부하에게는 선택이 없었고 이태신에게는 선택이 있었다. 이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느냐면 자신들의 원칙의 본질이 무엇인가 라는 군인의 정체성에 있다.


이태신이 행주대교에 홀로 나가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 깊다.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모두가 전화로만 떠드는 동안 이태신은 그 자리에 갔다. 이태신이 생각한 군인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지, 평소에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상황은 그 당시에는 언제나 아수라다. 그리고 선택을 할 시간은 길지 않다. 선택하는 순간에 상황을 파악하느라 신중할 게 아니라, 평소에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이 뭐냐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란 점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세상은 아수라고, 나는 누구이며,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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