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던 이야기
얼마 전 출근길(혹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팟캐스트 <씨네마운틴>을 듣는데 어느 구절을 듣고는 한 대를 크게 맞는 듯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시간입니다. 아마추어들은 완벽한 작품을 쓰기 위해 계속 시간을 끌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이템은 질리기 시작하죠. 본인에게도 이제 식상한 겁니다. 그러니 자꾸 완성을 못해요. 프로들은 그러지 않죠." 정확히 같은 말은 아니었지만, 여튼 이런 맥락이었다. 영구불변의 진리라기보다는 내 상황을 떠오르게 했다. SD카드에 저장된, 수많은 구상 중이(곤 했던) 원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프로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글 한 편 완성한지 오래 되긴 했다.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은 인생의 몇 장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고등학교 시절 소설을 쓰던 내 모습이다. 당연히 공부가 하기 싫어 그랬겠지만, 공책에 손으로 2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썼다. 그러다 서피스-당시 구시대적이었던 우리 학교는 노트북을 갖지 못하게 했고, 태블릿이 어떤 건지 잘 몰랐기 때문에 태블릿은 가질 수 있게 해 줬다. -를 갖게 되었고, 그걸로 또 틈이 나면 글을 썼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연애 서사에 미쳐 있던 시절이었기에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부터 은근한 레즈비언물(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건 방금 떠올렸다.)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뤘다. 내 주변 약 90명의 동기들보다야 문학적 글쓰기에 소질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내가 쓰고 있는 게 뭔지에 대한 충분치 않은 성찰이 내 습작을 가능하게 해 줬던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한 건 2년 전이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시도를 했으나 여러 요인들이 날 방해했다. 내 발상이 너무 평범하고 뻔해서 반짝이지 않았다. 문장도 무던했다. 읽는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허구라고 여기며 옮겨 놓는 말들은 죄다 내 마음속의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창조하기보다 누군가를 헐뜯으려 소설을 쓰는 듯했고, 그런 때 내 글은 수려한 험담처럼 느껴졌다. 예컨대 내가 쓴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결코 고등학교 동창에게 보일 수 없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면 보여줄 수 없는 대상이 떠올랐다. 그러던 사이 시간이 가고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여력이 점점 사라져 갔다.
여전히 도서관 청구 기호 800번대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술 마시면서 최근에 읽은 소설 이야기할 친구가 있으니 다행이다. 그렇다면 굳이 소설 쓰던 내 과거에 매달려 지금의 나를 안타까워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느지막이 일어나 요가를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되는 데 대한 합리화가 아닐까? 나는 이렇게 '현실'이라고 부르는 회색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 좋아하는 일들과는 멀어지게 되는 건? 어떤 변화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일단 오늘은 앞으로 좋아하는 일과 '회색 세계'의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궁리를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