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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네이밍의 실제

하우투 스몰 브랜딩 3. 네이밍 & 슬로건

어느 척추관절 전문병원으로부터 네이밍을 의뢰받았다. 조건은 단순 명확? 했다. 너무 어렵지 않은 이름,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이름은 아니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병원들 이름에는 나름의 유행이 있었다. '튼튼병원' 처럼 직관적이고 쉬운 한글 이름이 인기였다. 특히나 척추관절 병원이라면 상대적으로 연세 있으신 손님들이 많을 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짓고나면 클라이언트의 요구처럼 '격'이 느껴지는 네이밍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본질에 집중했다.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했다. 쉽거나 난해하거나, 이름이 주는 느낌에 매달리다보면 평범한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 다시 생각했다. 사람드이 척추관절병원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곧고 바른 허리 아닐까? 곧은 병원? 바른 병원? 그때 내가 좋아하는 책의 저자 이름이 '고든 맥도날드'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글을 발음대로 옮겨 적고 나면 '고든'이 된다. 고든병원은 어떨까? 결국 50여 개의 후보군에서 이 이름이 최종 낙찰을 받았다. 이 병원은 다행히도 그 지역에 안착하고 있는 중이다.



햄버거 브랜드로부터는 슬로건을 요청 받았다. 미국의 인앤아웃버거에서 영감을 얻은 이 브랜드는 메뉴가 간촐하기로 유명했다. 치즈와 패티의 숫자만 달라질 뿐 사실상 버거의 종류는 치즈버거 한 가지였다. 다시 '버거란 무엇인가?' 란 질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버거의 본산은 사실상 미국이다. 가장 미국적인 버거란 고기 패티와 치즈, 양상치, 토마토에 번을 덮은 간촐한 형태이다. 지인을 통해 진짜? 미국인을 데려와 시식을 했다. 자신이 고향에서 먹었던 버거와 가장 가깝다고 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카피를 뽑았다.


치즈 버거의 정석(定石),

버거를 버거답게,

오직 버거 하나만 생각합니다



'기본'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에 기인한 몇 가지 카피를 뽑아 클라이언트에게 제시했다. 이 카피는 이후로 사이트와 브로슈어, 브랜드북 등에 다양하게 쓰였다. 온갖 멋스런 카피를 다양하게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항상 기본으로 돌아갔다. 이 버거의 아이덴티티가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혹이라도 메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변화가 오지 않는 다음에야 이 카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만일 달라진다면 브랜드가 초심을 잃은 것이리라.


"좋은 브랜드는 소리치지 않습니다. 속삭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일했던 유니타스브랜드 매거진의 뒷 표지에는 항상 이런 카피가 쓰여 있었다.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 멋진 카피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 칠 때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옆 사람의 속삭임이다. 소란스런 야구장에서 귓속말을 주고 받는 연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좋은 브랜드란 그렇게 고객들에게 속삭일 수 있는 네이밍, 카피, 슬로건이라야 한다. 우리가 하루 동안 맞딱뜨리는 간판의 수와 광고들은 과연 몇 개나 될까? 그 소음 속에서 오직 우리 브랜드만의 목소리를 전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 소리치지 말고 속삭여야 한다. 그 전에 믿을 수 있는, 신뢰받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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