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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랑받는 이름의 조건

하우투 스몰 브랜딩 - 3. 네이밍 & 슬로건

'29CM'란 이름의 뜻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장 설레는 거리가 29센티미터라니. 이런 천재적인 네이밍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로 궁금했다. 이 이름이 의미있는 것은 그저 좋은 네이밍에만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건을 파는 방식과 웹사이트 및 모바일의 UI, 그리고 상품 소개 페이지에까지 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저 제품의 스펙과 장점만을 나열한 오픈 마켓에 지친 내게는 마치 잘 차려진 일식집의 메뉴를 보는 것 같은 정갈함에 마음 깊이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29CM에 대한 신뢰가 더욱 굳어진 것은 그 회사의 카피 라이터가 쓴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녀는 제품을 소개하는 하나의 카피를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그 소설의 정서와 분위기에 맞는 제품에 고르고 고른 문장을 연결해 카피를 쓴다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이 브랜드에 왜 그렇게 끌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특유의 감수성과 매력적인 카피의 이유를 알고 나니 이 브랜득 더욱 좋아졌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시장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란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인류 전체를 통틀어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뿐더러, 그 사실을 가장 전달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김애란도 그런 작가다. 그가 크리스마스를 치루기? 위해 애쓰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을 보면 요즘 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감없이 읽을 수 있다. 편의점에 대한 묘사를 보면 웬만한 시장 조사 전문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집요한 관찰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사가는지를 통해, 어떤 쓰레기를 내놓는가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까봐 고민하는 장면을 읽을 때면 소름이 끼쳤다.


좋은 네이밍은, 슬로건은, 카피는, 그리고 상세페이지는 바로 이런 집요한 문제의식과 관찰에서 온다고 믿는다. 멋진 이름, 튀는 이름을 짓는 일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특정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일관성있게 표현하는 일은 어려움을 넘어 난해한 일이다. 카피라이터의 수명이 그토록 짧은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이건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다.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영역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넘어선 세대를 꿰뚫는 관찰력을 필요로 한다. 마켓 컬리에 스무 명이 넘는 작가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 아닐까?



자이라는 아파트 이름은 'eXtra Intelligent'라는 영어 조합에서 따온 이름이다. 래미안과 함께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무모해보이는 복잡다단한 이름들로 인해 오히려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고를 능가하는 최고의 이름을 찾다보니 그저 어렵기만한 난해한 이름들이 나오는 것이다. '비스포크'라는 이름이 가전이 사랑받는 이유는 소위 '있어 보이는' 이름이어서가 아니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거부하는, 자신만의 색을 조합해 '나다움'을 표현하기 원하는 세대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슬로건은 '가전을 나답게'이다. 자신들의 브랜드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이 이름은 디자인에서, 그리고 이름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좋은 네이밍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자주 찾는 카페의 이름은 '앱스트랙'이다.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뜻이 너무 어려워 금새 잊어버렸다. 게다가 이 커피집은 무슨 자신감에선지 간판도 걸지 않는다. 그대신 오렌지와 베이지를 기본으로 한 컬러를 활용해 거의 모든 카페의 인테리어와 색감을 통일시켰다. 커피 머신과 오디오, 커피잔, 벽에 걸린 그림, 매거진 B와 이솝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고 있다. 심지어 등받이가 없는 조립식 의자임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과연 이들이 약속을 잡을 때 정확한 카페 이름을 말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아마도 친구를 부를 때 어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거기 왜, 있잖아, 하이마트 옆에 있는 그 오렌지색 카페, 거기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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