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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네이밍의 탄생

하우투 스몰 브랜딩 - 3. 네이밍 & 슬로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이름 중 하가 바로 '밀도'다. 서울숲 인근 사무실로 출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건널목 건너 조그만 빵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세 명이 가면 두 명은 줄을 서야 할 만큼 작은 규모 때문에 벌어진 광경이었다. 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집은 여전히 줄을 세운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의심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그 이름이었다. '밀도'의 밀은 빵을 만드는 밀인 동시에 식사를 의미하는 Meal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름 명성을 얻고 있었던 시오코나의 셰프는 어느 날 백여 종이 넘는 다양한 빵을 만드는 일에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일 단 하나의 빵을 만든다면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식빵이었다. 식빵은 언제든 식사 대용으로 사람들이 찾을 거란 계산이 서자 그는 실행으로 옮겼다. 그 첫 번째 빵집이 바로 서울숲역 인근의 그 빵집이었던 것이다. Meal란 이름이 의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스토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밀도의 '도'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바로 온도와 습도의 조율을 의미한다. 이 빵집의 셰프는 그날 그날의 온도와 습도를 고려해 반복을 한다고 했다. 물과 설탕, 밀가루 외에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빵의 맛이 바로 이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딤채처럼 온도를 의미하는 표시를 Meal이란 브랜드명 뒤에 붙였다. 알파벳 첫 글자 M은 식빵의 모양을 따랐다. 그래서 이렇게 풍부한,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이름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기준이 나올 수 있겠으나 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제품과 서비스의 특징, 브랜드의 철학, 그리고 규칙 없음의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 밀도는 그 중에서 제품의 특징과 철학을 동시에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 있는 이름이다. 이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수도, 오랜 고민 끝에 하나 하나 조각을 맞춘 이름일 수도 있다. 좋은 이름이란 이 두 가지의 과정을 모두 거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법이니까.


강남역에 있는 삼성 본사 지하에 있는 '카츠8'이라는 가게도 지나가던 나의 이목을 끌었다. 앞 글자 카츠는 돈카츠에서 따온 듯 했는데 '8'은 아무리 생각해도 종잡을 수 없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검색을 해보니 돈카츠가 가장 맛있어지는 시간이 8분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이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한 법이다. 출퇴근 길에 우연히 만난 '육분삼십 편백집'이라는 가게는 짐작은 가면서도 호기심보다 난해함이 앞서는 그런 이름이었다.



좋은 이름이란 부르기 쉬워야 한다. 어떤 가게인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반드시는 아니어도 그 브랜드의 특징과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좋은 이름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수학 학원의 이름을 '아드폰테스'로 지었다. 본질로 돌아가자는 좋은 의미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만류를 했다. 그럼에도 학원은 승승장구를 계속해 서너 개의 지점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이름은 이 학원의 성장에 아주 작은 장애일 뿐이었다.


신혼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는 발뮤다는 별다른 뜻이 없다. 독일스러움 가득한 하겐다즈는 없는 단어다. 많은 이들이 BTS의 뜻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면서도 'Burn The Stage'라는 새로운 의미부여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의미와 가치는 부여하는 것이다. 억지스럽게 영어를 조합한 이름보다는 차라리 간판 없는 가게가 훨씬 매력적이다. 요즘 가장 핫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은 디자이너의 한글 이름을 그대로 옮긴 '강혁'으로 불린다. 이름은 중요하다. 그리고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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