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1.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이야기

하우투 스몰 브랜딩 - 5. 브랜드 스토리텔링

세바시 촬영을 위해 나는 원고를 딱 세 번 고쳐 썼다. 18분 동안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팀원에게 팀장 자리를 내주어야 했는 그날의 기억, 그리고 고백 때문에 내가 출연한 세바시 영상은 50만을 훌쩍 넘기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종종 받는다. 사실상 브랜딩 작업 역시  이러한 이야깃거리를 찾는데서부터 시작되곤 한다. 인터뷰를 통해 이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어떤 생각과 경험이 창업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스토리 없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컨셉을 잡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야기가 극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의 생명은 진정성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무리 극적이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스토리는 와디즈 펀딩 사이트에서 만났다. 참기름을 팔던 1인 사업가가 겨우 500만 원을 목표로 펀딩을 시작했다. 벤조피렌이라는 발암 물질의 위험이 있는 기존의 참기름은 수입된 참깨 분말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가루로 들여왔는데 고온 압축 과정에서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 검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통참깨로 기름을 짠다고 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참깨를 짜는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깻묵을 포장에 담아 보내는 아이디어를 냈다. 미슐랭 별을 받은 비빔밥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정준호 참기름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고난과 극복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그에게 아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빠는 양심을 걸고 일을 해오지 않았냐'고 되물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펀딩 페이지에는 그 자신과 아이들의 사진이 함께 올라와 있다. 물론 내가 주목한 이 브랜드 스토리의 핵심은 양심이라는 가치를 눈으로 보여준 기막힌 발상에 있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그의 스토리가 없었다면 나의 감동도 반감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벤조피렌의 유해함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나는 이 브랜드 스토리를 강연 때마다 이야기하곤 한다.



컨설팅을 위해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이야깃거리가 될까요?'라는 반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들어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오히려 달변가일수록 경계심을 가진다. 너무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거짓에 가까울 수 있다는 몇 번의 경험 때문이다. 반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뜸을 들이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내뱉는 한 마디는 진짜일 경우가 많다. 준비되지 않은, 그러나 툭 툭 던지는 그 한 마디에서 진솔한 이야기가 가진 힘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기록에 약한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뭐 대수라고... 하면서 버려지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수백 년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는 일본의 수많은 작은 브랜드들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깟 젓가락, 그깟 부채 하나가 뭐라고 2백 년, 3백 년을 이어 만들어오고 있을까. 그런데 그 이야기는 결코 다른 브랜드가 따라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역사는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우리가 하는 작은 기록은 모두 역사가 된다. 갈겨 쓰고 흘려 쓴 수십 년 된 일기장이 어떤 브랜드에겐 수 억을 들여도 가질 수 없는 가장 큰 자산이 된다.



충남 천안에는 유독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마실'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체인점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 이 가게의 대표는 지금도 매일 같이 미주알 고주알 식당 운영에 관한 기록을 페이스북에 남긴다. 그는 수년 간의 매출을 꼼꼼히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메뉴를 만들거나 혹은 없애곤 했다. 가격에 관한 결정 역시 기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갤럭시 노트 모델만을 핸드폰으로 사용한다. 틈 날 때마다 펜을 들고 기록을 한다.


나 역시 매일 같이 기록을 한다. 세 줄의 일기를 쓰고 다시 세 개의 감사 일기를 쓴다. 벌써 7년을 한결 같이 써오고 있는 중이다. 이 기록이 나중에 어떻게 쓰여질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기회들을 만들어왔는지는 잘 알고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내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바로 이러한 기록, 그래서 만들어진 스토리의 힘에 기인한 것이다. 당신이 지금 바로 기록을 시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록은 결국 자산이 되고, 대체불가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로지 당신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이전 12화 4-3. 꾸준함은 힘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