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7-3. 당신의 브랜드는 안녕하신가요?

하우투 스몰 브랜딩 - 7. 디지털 브랜딩

이제 나는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 총 7개의 장, 21개의 글을 정신 없이 써내려왔다. 어떤 이는 오타로 가득한 이 글들을 보고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회사에서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브랜드 전문지에서의 나의 존재감은 뜻 밖에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짧고 쉬운 글쓰기, 트렌디한 글쓰기, 독자들과 소통하는 글쓰기... 내가 잘하는 글쓰기 방식이었고 또한 회사가 마뜩찮아 하는 글쓰기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때의 경험으로 반 백의 나이에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나는 적어도 회사에서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루저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개인으로 일한지 4년 차, 나는 감히 말하건대 행복하게 일하고 있고, 그 보람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어제는 20년 경력을 가진 어느 외식업자를 만났다. 신규 브랜딩을 위해 필요한 브랜드 스토리를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약 한 달의 준비를 거친 끝에 나는 슬로건과 브랜드 스토리, 내부 브랜딩을 위한 선언문을 미팅 자리에서 읽어내려갔다. 잠깐의 침묵 뒤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브랜딩의 핵심은 차별화다. 이저 회사는 긴 호흡의 전문적인 글을 원했다. 정확한 표현과 명확한 근거를 요구했다. 매거진의 아티클이 아닌 컨설턴트의 리포트를 원했다. 하나의 아티클은 보통 A4 용지로 10 페이지가 넘었다. 나는 그런 글을 잘 쓸 수 없었다. 무엇보다 브랜드를 몰랐다. 나도 모르는 글을 쓰려니 괴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고 트렌디한 글을 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벌써 3권의 책을 썼고 4번 째 책을 준비 중이다.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회사의 책을 쓴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달라졌다. 변화의 파도에 때마침 올라탄 것이다. 그리그 그 과정에서 나는 브랜드가, 브랜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브랜드로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사람도, 제품도, 서비스도, 공간도, 도시도, 심지어 국가도 하나의 브랜드로 읽을 수 있다. 할 말이 많아졌고 쓸 거리가 늘어났다. 10년 이상의 경험으로 보니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페를 가면 메뉴 뿐 아니라 조명과 공간과 컨셉을 읽는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만의 독특한 장점을 찾아 대화를 물꼬를 트고자 애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과 책으로 그 내용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지식은 또 다른 수다와 글쓰기의 수단이 된다. 매일 같이 오히려 돈을 받으며 공부를 한다.


디지털 브랜딩을 이 긴 글의 마지막 주제로 삼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진정한 브랜딩은 온갖 유행을 따라 부유하기보다 제 자리를 지키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 문장을 써도 모든 근거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그런 글을 써야만 한다. 그런 글을 원하고 좋아하는 고객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짧고 간결하고 쉬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그렇게 살아야 한다. 옭고 그름이 아닌 '나다움'의 기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변화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는 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사람도, 제품도, 서비스도 그렇다. 온 세상이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이라도 '쉼'이라는 호텔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에이비앤비가 성공한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다. 그 쉼을 단순한 육체적 휴식이 아니라 현지인들과의 '연결'이라는 방식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쉼을 느끼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와의 수다를 통해 훨씬 더 큰 리프레쉬를 경험하곤 한다. 이처럼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디지털 브랜딩의 핵심이다. 온라인 결제 없이도 동네 기반의 중고 거래 사이트를 완성한 당근 마켓을 보라. 물물 거래로 디지털 시대의 대표 주자가 될 줄을 그들은 알았을까?



과거 매거진 에디터일 때 나는 항상 워드로 글을 썼다. 한 글자라도 틀릴까 싶어 신랄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무섭게 글을 배웠다. 하지만 지금 나는 한 뼘 손바닥 크기의 페이스북 글쓰기 창에 이 글을 쓰고 있다. 급하게 한 호흡으로 쓴 글이라 오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의 본질을 나답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은 소통이다. 정확한 지식을 전달할 때도 있지만 공감과 영감을 나누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친구의 수다에 맞춤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을 활자화할 때는 치열한 교정 교열과 피드백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페이스북에사 글을 읽는 사람과 책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사람은 그 맥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놓치지 말자.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의 트렌드에 뒤쳐지지도 말자. 하지만 그 변화에 휩쓸려 나를 놓치진 말자. '뭣이 중헌지'를 아는 지조 있는 삶을 살자. 그러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본질을 지키면서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이런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한 명품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반면에 에르메스처럼 오프라인의 가치를 고수하는 브랜드들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움'이다. 이걸 지키는 한 브랜드는 지속가능하거나 혹은 영원히 기억되고 사랑받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기억되는 하나의 브랜드로 남고 싶다.

이전 20화 7-2. 유니타스브랜드와 5만 번의 '좋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