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엽의 스몰 스텝 이야기 (4)
아이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는 중3 때부터 갑자기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중2 첫 시험을 보고 매운 경험을 했으나, 워낙 성실하고 단단하다고 생각한 아이였기에 조금씩 이겨낼 줄 알았다. 직장에 다니느라 다른 엄마들처럼 하나하나 잘 챙겨주고 공부도 같이 봐줄 시간이 별로 없었다.
중 2 첫 시험이 끝난 그 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자긴 열심히 하노라 했는데 결과에 실망해서 울던 그 처참한 표정이 너무 마음 아팠다. 이제 신경쓰고 체크해서 공부를 잘 하게 만들면 되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 다음부터 과외도 해보고, 외운 단어 체크도 매일 하고 학원도 보내보고 하며 소위 말하는 엄마들이 말하는 '처방전'을 열심히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의욕이 없고 모든일에 버거워하는 울적한 모습을 보여줬다.
나도 걱정이 되는 수준을 넘어 불안과 마음 아픔, 좌절하는 마음으로 같이 힘들었다. 내 아이가 아프면 나도 마음이 아픈건 당연하겠지만, 그때의 아픔은 이상하게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학업때문에도 힘들어하고, 친구관계에도 힘들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 키우는 과정이려니, 하고 생각해왔는데도, 아이의 감정이 무너질 때 나도 세상 끝까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이의 감정과 내 감정이 분리가 되질 않고 점점 밑바닥까지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 가라앉은 기분으로 다가가면 아이는 거부하고 나와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때 마침 휴직기간이어서 나는 나와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치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단단해지고 싶었다. 병원가서 진단을 받으면 아, 이래서 내 몸이 아프구나 이해하는 것처럼, 아이와 내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작용하고 나는 아이를 지키는 어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걸 이해하고, 내가 감정적으로 성숙해져 아이를 진심으로 끌어안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지침과 처방전을 접하게 된다. 나도 아이에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라왔으면서 사실 그 지침과 처방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육아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리고 그게 맞을 거라며 아이에게 체크해가며 적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와 나의 연결고리는 분리되기 쉽다. 나는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전문가의 의견으로 다가가는 대신 아이와 함께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그날 처참하게 울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순히 성적이 나빠서 실망하는 울음이 아니라, 아무데도 기댈 데가 없는 가슴아픈 울음이었다. 나는 분명 그날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무너져 내렸다. 아이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었다. 나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잘 기능하도록 길러내는 것만이 내가 아이를 낳은 목적일까. 이번에는 빨리 처방전을 안겨 아이가 한번도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되는 되길 바라기 보다 그 아이를 사랑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그 아이를 이해하고 싶었다.
두 번의 시행착오 끝에 상담선생님을 찾아 가족 상담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아이 한 번, 나 한 번 각각 한시간 동안 하는 그 여정을 6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내가 상담선생님과 함께하는 시간에 나는 아이에 대한 솔루션을 찾고 그에 대한 이상적인 충고를 듣는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의 상담시간은 오롯이 나의 어려움과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별탈 없이 성인이 되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기 위해 애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고, 그래서 늘 학교나 회사에서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타인과 나 자신과의 간극을 조절하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나는 이미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해서 50이 되어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 가족이 바라던 무리없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우격다짐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필요한 일들을 수행해왔고, 내 자신에게 공간을 주는 방법을 몰랐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기대를 받고 때론 격려받고 때론 좌절하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내 안에 스스로의 공간이 필요함을 자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스몰스텝으로 하나하나 그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이번에도 나만의 스몰스텝을 실천하기로 했다. 일주일동안 떠오르는 감정과 에피소드들을 블로그에 정리하고 되새긴다. 그러면 상담을 하고 만날 때 훨씬 정리되어 있고 솔직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상담하는 소중한 한 시간이 충실해지고 적극적인 자기 발견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이미 50이 다 된 나의 안에는 아직 30대의 나도, 40대의 나도, 20대와 10대의 방황하던 나도 고스란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아이보다도 훨씬 어린 4살, 10살의 나도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 아이가 슬퍼하거나 아파할 때마다 '내면 아이'라고 부르는이 아이가 같이 아파하고 흔들린다는 사실을.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내가 기계적으로 처방전과 지침만 외우면서 아이를 끌고 왔구나'(엄격한 지침이든 느슨한 지침이든)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유명작가가 몇 년간 정신분석을 받고 쓴 글 중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한때 상담을 받거나 정신분석을 받아야 한다'고 썼던 글이 떠오른다. 또 칙센트미하이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법을 먼저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사태를 악화시킨다"라고도 했다.
아이는 아직 학교생활과 시험에 회의적이다. 때론 아직 도피 중에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데 내 가슴의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성급하게 아이 방문을 두드리지 않게 됐다. 대신 블로그를 열어 글을 쓴다. 그러면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나고 나는 그 애를 가만히 달래준다.
아직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아파하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된다. 아이가 사춘기에 다다를 때는 두뇌와 감정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여서 그 아이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그걸 해결하려고 세상으로부터 얻어들은 지침을 들고 다가가면 그 공간은 깨진다. 그 대신 내 안의 어린아이를 돌볼 시간이다.
나 자신이 50이 가까운 나이에 다시 출발점에 섰다.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늦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때마침 접한 뉴스. 우리나라의 중위연령이 인구 고령화로 인해 46.5세로 올라갔다고 하니,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한참 중간 연령대의 나이인 것이다. 요즘 아이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자 아이는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아이가 좋아하는 공간이 생긴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하고 공간을 주기로 한 우리 가족은 내친 김에 6월에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왔다.
내가 어렸을 적, 일본의 성공신화는 우리들에게 항상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장기침체를 거치고 일본은 물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지 않았다. 선진국 시기를 거친 일본의 기술과 서비스의 수준은 높은데 가격은 비싸지 않은 장점을 갖게 된 것이다. 더욱이 코시국 이후 우리나라 물가가 급등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비교적 편안하게 쇼핑하고 편안하게 식도락을 즐겼다.
나는 중국어를 전공하게 되면서 집에서 떠나있던 그 때를 떠올렸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정말 아이가 일본을 공부하거나 유학을 하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이번 여행이, 아이가 좋아하게 된 문화와 나라가 아이에게 자신의 공간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