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엽의 스몰 스텝 이야기 (6)
나는 중문과를 졸업했다. 그래서 약 5년 간 중국에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결혼을 하게 되어 나이 서른넷에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았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중국에 파견되어 통역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성남 시청에서 일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중국 심양시의 고위 공무원과 성남시 국장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이 두 분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실버타운 조성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은 물론 열정을 쏟아부어 이 사업을 시행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선약이 있어 이 두 분이 사무실에서 간단히 이야기만 나누게 되었다. 그날도 제가 두 분의 통역을 맡고 있었다.
아주 잠깐만 대화가 가능한 일정이었다. 어느 덧 점심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서로의 사업에 관한 지대한 관심과 안타까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차 두 사람의 눈빛이 빛나면서 종국에서는 통역이 필요없는 것과 같은 대화가 오가게 되었다. 서로의 감정이 통하면서 마치 빙의가 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결국 12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이윽고 담당 비서가 와서 서둘러 자리를 떠야 한다고 언질을 주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그 30여 분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어떤 감정을 전하고 싶어하는지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말을 하기도 전에 모두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30여 분의 짜릿한 경험을 통해 나는 통역이란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보람된 일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니다. 이렇게 대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플로우Flow’라는 말은 우리 말로 몰입을 뜻한다. 이런 표현을 처음 제안한 하버드대의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가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그의 책을 다시금 꺼내어 읽었다. 미하이 교수는 자신의 플로우란 개념을 장자가 이야기한 흐를 ‘류’란 글자에서 찾고 있었다. 이 글자는 장자가 뼈와 뼈 사이의 살을 발라내는 도살업자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해서 유명해진 글자이다.
장자는 이 모습을 보고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럴 때 흔히 ‘삼매경’에 빠졌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스키를 탈 때 그런 몰입을 경험한다. 다른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할 때 그런 기분을 느낀다. 완전한 무아지경에 빠져 모든 것이 저절로 되어지는,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도 잊을 때를 우리는 아주 가끔씩 경험하곤 한다. 완전한 무아지경에 빠져 자기 자신조차 잊고 미치도록 행복한 자신을 경험한다. 한번이라도 이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은 그 사실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경험을 일상으로 끌어올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쓰신 황농문 교수가 있다. 그는 만약 자신이 통나무라면 100% 태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책에서 이야기한다. 몰입을 통해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자질을 100 % 태워 재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런 삶이 자신에겐 최고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몰입이 최상의 자아실현의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나폴레옹과 테레사 수녀처럼 하나의 신념 체계를 세워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몰입으로 몰고 간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통일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고, 테레사는 평생을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리고 그런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재가 될 정도로 태울 수 있었다.
저는 이 책을 쓰는 동안 휴직을 경험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하루를 한동안 매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떤 스케줄도 키워넣지 않은 온전한 하루를 통해 어떤 스몰 스텝을 반복하는 것이 나를 드러내고 나를 강하게 하는지를 액셀에 정리하고 점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향한 피드백을 통해 누구도 나를 간섭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경험을 연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