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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 수 있는 나에게

김세엽의 스몰 스텝 이야기 (7)

나는 여대를 나왔다. 오랫동안 공무원 조직에서 일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주부로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다름아닌 타인에게 ‘No’라고 말하는 일이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하나 더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불편해도 싫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몰 스텝을 실천하면서, 비로소 내 안에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훈련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선 식당의 한 쪽에 마침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일하는 점원에게 저곳에 앉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저 자리는 치워야 한다는 퉁명한 직원의 대답이 들려왔다. 평소의 나라면 아마 말없이 다른 자리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의 나는 달랐다. 기다리면 저 자리에 앉을 수 있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직원은 그제야 그 자리를 서둘리 치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을 이 경험이 제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갈 수 있었다.


남편이 어느 날 제게 재테크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재테크는 남편이 주도적으로 해왔지만 글 만큼은 제가 직접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렵게 어렵게 50페이지를 쓴 어느 날부터 원고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한동안 글쓰기를 멈추기로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나는 스몰 스텝에 관한 공저를 쓰기로 한 이유도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머뭇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쓰고 싶다면 당신이 직접 써보는 건 어때?“ 그제서야 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박하게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자율성은 스스로 소소한 경험을 결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내 안의 숨은 욕구를 자발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저는 왜 내가 ‘스몰 스텝’에 끌렸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스몰 스텝은 일상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찾아가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아주 작은 실천들이 쌓여 타인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준다. 이렇게 자율성과 자발성이 삶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면 내 안에 일종의 내적 질서가 길러진다. 누군가의 비난이나 혼란, 위기에서 자신의 결정을 믿고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벗어나고 심지어 그 문제를 잊을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스몰 스텝을 통해 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질서를 부여할 수 있었다. 비로소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일기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날 있을 일정을 시각화해서 머릿 속에 그려보는 훈련을 하곤 한다. 이렇게 20분 동안 일기와 명상을 통해 내 내면에 내적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나서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원래 있던 자리에 개어놓는다. 마치 내가 우주의 창조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흐뭇해진다. 그렇게 약 7개월 동안의 휴직 기간 동안 이후 있을 복직 후의 삶을 계획하고 훈련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매슬로우가 이야기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욕구와 달리 이 욕구는 그 성장에 끝이 없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고 싶다. 진정한 내적 힘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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