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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영어를 배우기로 했다

1.


기타도 배우고 싶고, 골프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영어부터 배우기로 했다. 내 꿈은 한 가지다. 영어로 된 책을 써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간을 두진 않았다. 죽기 전에만 쓰면 된다. 토익이나 토플도 목적이 아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달리기가 그랬다. 죽기 전에 내가 5km를 쉬지 않고 달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막상 뛰고 보니 뛸만 하다. 요즘은 매일 같은 거리를 달린다. 힘들지만 죽을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불현듯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영어 학원에서 면접을 보았다. 30분 정도의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10점 만점에 2점을 받았다. 1단계가 baby, 2단계는 beginner 였다. 그럴만도 하지. 대학을 나와서는 별도로 영어를 공부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스몰 스텝으로 영어 단어를 수년 간 공부하긴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점수를 받고 나니 실망이 크다. 그런데 외국에서 살다오신 분들의 수준이 5라고 한다. 8점은 영어로 다른 외국인을 가르치는 실력, 4점이면 영어로 수다를 떨 수 있다고 한다. 희망이 생긴다.


3.


매주 한 번씩 외국인 튜터를 만나 입을 털기로 했다. 일단 입을 떼는 실력은 된다고 한다. 영업용 멘트이면 어떤가. 실력이 모자라 등록이 안되는 사태를 면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언어는 과연 삶과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까? 외국인과 주저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것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사람 사는 거야 비슷할 거다. 하지만 같은 나라에 살아도 생각도 말도 안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하나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졌다는 것, 하고 싶어졌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4.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죽음을 연습한다. 이대로 눈을 감아 뜨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불길한 생각이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잠이 들면 얼마나 아침이 소중한지 모른다. 삶이 유한하다고 절감해야 일상이 절실해진다.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들이 가려진다. 나는 죽을 때까지 달릴 것이고,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이다. 더 깊고 넓은 공부를 하려면 영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배우는 것이다. 속도가 더뎌도 좋다. 영어를 마스터할 생각도 없다.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할 정도만 되도 행복하겠다.


5.


영어를 배우겠다고 하니 친구들이 의외로 용기를 준다. 뭐라도 할 마음이 생긴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친구다. 한 친구는 4개국어를 하면서도 방구석에서 뒹굴대는 동서 이야기를 한다. 안타깝다. 그게 살아있어도 죽은 삶이다. 재능과 역량을 가지고도 의욕이 없으면 물에 젖은 다이너마이트다. 터지지 않는다. 2점 짜리 실력이지만 어떤가. 30년 동안 영어를 쉬었어도 입을 떼고 말을 한다고 칭찬을 들었다. 1년 뒤가 기대된다. 영어는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달리기의 반의 반큼만 되어도 행복하겠다. 마음 통하는 외국인 친구 하나만 생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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