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이전 홀 매니저가 3개월 만에 식당을 그만 두고 바로 옆 강된장 가게를 오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석달은 상권과 메뉴와 유동 인구를 분석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위장 취업이었던 셈입니다. 문제는 그 식당이 오픈한지 일주일만에 순두부 가게의 매출이 원상 회복되었다는 점이에요. 식당 오픈빨?이 한 달 간다는 이야기는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죠. 1,2주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강된장 가게처럼 망하기 십상인 것이 자영업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강된장 가게는 나름 치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왜 망해가는 것일까요?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식당 오픈한지 한 달 동안 주방장이 벌써 4번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위장 취업했던 홀 매니저 출신의 사장님 남편이 주방을 맡고 있을까요. 그렇게 너댓 번이나 셰프가 바뀌었는데 맛이며 서비스가 유지될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식당은 결국 사람 장사입니다. 사람, 사람, 사람이 전부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렇듯 잘 되는 식당에서 대여섯 달 일한 후 똑같은 식당을 차렸다가 망한 사레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곤 합니다. 식당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입니다.
제가 운영 중인 식당은 점심 매출이 100, 저녁 매출이 50 정도입니다. 점심 장사 때는 저와 셰프를 포함해 6명이 일하지만 저녁 장사는 셰프와 저 두 사람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피스 상권인 판교에서 월 매출 3,000을 갓 넘기는 가게에서 사장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식당이나 자영업자들이 비슷한 처지에 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식당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판교는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이나 오는 손님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결국 제한된 손님을 두고 새로 생겨나는 식당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입니다. 객단가를 높이는 방법 뿐입니다.
그러나 주방이 쉽사리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빡빡이 셰프는 '1인 실속 메뉴' 같은 히트 메뉴를 더 이상 추가하길 원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빡빡이 셰프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중입니다. 잘 되는 식당을 똑같이 복사해도 망하는 이유는 이런 사람 관리가 핵심임을 모르거나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일개 홀 매니저인 와이프가 이런 사실에 기반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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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식당에서 홀과 주방 사이의 다툼으로 칼부림까지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 둘의 사이가 좋은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식당 일을 익히기 위해 잠깐 일했던 부대찌개 집도 그랬습니다. 환갑이 지난 남편과 50대 후반의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잠시 알바를 하기 위해 면접 보던 날 부인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건 다 좋은데 저희 남편이 불같이 화낼 때가 있어요. 그것만 좀 이해해주세요.' 아무튼 그렇게 하루 4시간 점심만 돕는 알바가 시작됐습니다.
일단 저는 주방에서 일하는 남편 사장이 언제 화를 내는지 패턴을 살폈습니다. 딱 두 가지 경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음식을 냈는데도 홀에서 받아가지 않을 때였습니다. 분주한 홀에서 손님들이 먹고 간 테이블을 치우다 보면 종종 음식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주방의 음식부터 받았습니다. 또 한 가지 경우는 주문이 엉킬 때였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방의 욕구불만이 해소되자 부대찌개집 사장이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어졌죠.
그런데 제가 일하는 순두부 가게 빡빡이 셰프는 화를 내는 이유도 달랐고 빈도도 잦았습니다. 빡빡이 셰프는 특히 자신이 미는 메뉴를 홀에서 챙겨주지 않는 경우에 민감했습니다. 그런 메뉴 중 하나가 뼈대해장국전골이었습니다. 일이 바쁘다보니 홀의 누구도 그 메뉴를 홍보해주지 않았죠. 저는 급한대로 알파문구에 가서 매직 펜으로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이 메뉴를 적극 홍보했습니다. 그러자 전혀 팔리지 않던 4만원 짜리 이 메뉴가 하루에 하나씩은 꼭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빡빡이 셰프가 흥분하는 경우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저는 손님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순부에 김을 추가로 서비스했습니다. 문제는 가끔씩 이 김을 두 세번씩 리필해가는 경우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때마다 빡빡이 셰프는 거품을 물고 화를 냈습니다. 민망한 손님이 다시 식당을 찾을리 만무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무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최근 몇 배나 오른 김의 원초 가격 때문임을 알게 되었죠. 그 날로 저는 테이블마다 원초 가격 상승으로 김의 리필이 어렵다는 안내 문구를 붙였습니다. 그 날 이후로 리플을 요구하는 손님은 딱 두 명 있었습니다. 그나마 안내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한 사람, 어떻게 안되겠냐며 정말로 미안해하는 두 번의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쉽고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뜨거운 불과 김이 오가는 주방과 분주한 홀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상이라도 부리는 손님을 만나면 식당 분위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됩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함께 일을 해도 남편이 화내는 이유를 모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 식당 운영은 사람, 즉 주방과 홀과 손님들의 감정을 헤아리고 숨은 욕구를 채워주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사람의 욕구를 채운다'는 브랜딩의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저는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해 죽지 못해 일한다고 하면 그 일은 언제고 힘든 일이 됩니다. 끝내고 나서 기울일 한 잔 술에 목을 메게 됩니다. 하지만 주방과 홀과 손님들의 숨은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종의 미션처럼 일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같은 일을 해도 그 보람과 만족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몇 개월의 알바 생활과 딱 한 달의 홀 생활을 통해서 저는 식당 운영을 넘어선 비즈니스와 브랜딩을 스스로 학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