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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스텝 저자 박요철입니다
Dec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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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식당은 가난합니다. 그 와중에 빡빡이 셰프가 미는 메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뼈대 해장국의 확장판 '뼈대 전골'이었어요. 문제는 셰프가 간절히 팔고 싶어하는 이 메뉴가 한 달에 한 개 팔렸다는 점입니다. 3,4인에 47,000원인데 술안주인 관계로 추가 판매율이 높았습니다. 게다가 마진율이 50%에 가까우니 비슷한 메인 메뉴를 스무 개 이상 파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효자 상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메뉴를 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빠듯한 가게 형편상 홍보비를 쓸 수 없었습니다.
일단 가까운 알파 문구에 가서 형광 종이와 매직펜을 샀습니다. 그리고 점심 회식 이벤트 메뉴와 함께 주류 제공 이벤트를 했습니다. 예약시 모듬전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손글씨로 쓴 메뉴가 하루에 하나씩은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달에 하나 팔리던 메뉴가 최소 서른 개는 팔리기 시작한 셈입니다. 게다가 이 메뉴는 앞서 얘기한바대로 술을 부르는 메뉴였습니다. 서비스로 제공하는 한 병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반 메뉴보다 마진율이 높은데다 추가 주문을 부를 수 있으니 비슷한 가격대의 메인 메뉴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상품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돈이 없는 식당이라 겪는 어려움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팔고 싶고 밀고 싶은데도 본사에서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마트폰으로 제품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단품 메뉴는 절대로 항공 사진을 찍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메뉴 특유의 볼륨감이 살지 않기 때문이죠. 대신 종류가 많은 세트 메뉴는 항공샷으로 찍습니다. 저는 이 모든 걸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배웠습니다.
'양이 많아서 남기려고 했다가 다 먹게 되는 맛', 뼈대 전골의 카피입니다. 컨셉이 모호해서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뒤지다 발견한 카피였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순두부 백반의 카피는 '깔끔 단백 순두부 백반'입니다. 분명 사진은 있으니 이 한 마디 카피의 힘은 컸습니다. 통계를 따로 내진 않았지만 매출이 확실히 늘었습니다. 이렇게 와이프는 돈 없는 가난한 식당의 홍보를 혼자 힘으로 하나 둘씩 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가게가 작아서, 아이디어가 없어서... 이렇게 수많은 이유로 매출 부진의 이유를 찾고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하지만저는 프랜차이즈 본사도 주지 않는 사진을 직접 찍고 카피를 스스로 찾아 씁니다. 심지어 가게 주인도 아니고 그저 월급 받는 홀 매니저일 뿐입니다. 그래도 해냅니다. 조금만 더 고민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면서 답을 찾아냅니다. 이런 와이프도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하는 시간만큼만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마케팅, 브랜딩 이론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진상 손님들과 매일 싸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론이 얼마나 와닿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외식업의 최전선에서 몇십만 원의 매출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애쓰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은 아이들의 학원비, 더 정확히는 아이들의 미래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은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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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매출 50만 넘어도 좋겠다던 빡빡이 셰프가 막상 손님이 몰리니 진상을 부립니다. 매출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주방장의 곤조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배달 취소도 하고 나니 하루가 피곤합니다. 손님을 케어해야 하는데 설거지 알바 구해달라고 곤조 부리는 빡빡이 셰프 달래느라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견디다 못한 제가 결정을 했습니다. 저녁 설거지 이모를 부르든 빡빡이 셰프 월급을 올려주기로 말입니다. 그런데 설거지 이모를 부르면 월 80, 셰프 월급은4,50정도만 올려줘도 됩니다.
그 와중에 빡빡이 셰프가 가장 밀고 싶어하는 뼈대해물전골 메뉴가 또 팔렸습니다. 한참 주문이 밀려 셰프가 빡친 와중에 중국인이 들어와 뼈대해물전골을 주문한 겁니다. 어쩌다 한 번씩 중국인들이 와서 뼈대해물전골을 문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는 영어와 중국어로 된 메뉴판을 만들었습니다. 알파문구에 가서 형광용지를 사고, 파파고를 돌려 간자체로 '뼈대해물전골'을 적어서 내걸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 식당 아저씨가 오피스 상권에 왜 메뉴를 한자로 적었냐며 비웃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날로 뼈대전골이 팔리는 겁니다. 근처 호텔을 찾은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먹고는 엄지척을 날립니다. 중국인 손님은 손도 커서 1인 1메뉴는 기본, 매출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파파고와 손발로 의사소통을 하던 와중에 뼈 버리는 그릇이 뭔지 물어봅니다. 제가 서툰 영어로 'bone trasher'라고 설명하니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가까스로 설명을 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손님들이 재밌고 고맙습니다.
저는 손님이 적은 저녁 시간대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매장의 주 고객층이 3, 40대 남자손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장의 타겟층을 3,40대 남자층으로 해야 된다는 걸 안 순간, 아직 쌀쌀하던 3월이 어느 날 가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유행하는 걸그룹들의 노래를 볼륨을 최대로 해서 틀기 시작했습니다. 근처 어떤 가게도 이렇게 가게 문을 연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님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피스 상권이고 3,40대 남자 손님들을 타겟으로 한 전략이 먹혀든 겁니다. 아울러 매운 메뉴를 시킨 손님들에게는 요구르트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음료를 주고 싶지만 단가가 너무 높습니다. 하지만 요구르트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부담이 덜해서 좋습니다. 와이츠가 타겟으로 삼은 손님은 요구르트에 대한 추억도 있을 겁니다. 이런 소소한 서비스에 소리없이 단골이 하나 둘 늘어가는게 느껴집니다.
사실 저는 그 전 주에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건 식당일이 아니라 사람 다루는 일입니다. 신도시의 멀쩡한 식당인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간 문제가 많은게 아닙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식당들이 오늘도 저처럼 속앓이를 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순두부 가게의 바쁜 하루가 숨가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