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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뗑킴, 날 것의 미학이 만든 거대한 흐름

현대 패션 시장에서 '성공'의 정의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과거에는 거대한 유통망과 대대적인 TV 광고가 성공의 보증수표였다면, 지금은 한 명의 개인이 만들어내는 '무드'와 그 무드에 공감하는 '팬덤'이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마뗑킴(Matin Kim)이다. 2015년 블로그 마켓이라는 작은 점으로 시작해, 10년이 채 되지 않아 연 매출 1,000억 원대를 바라보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한 마뗑킴의 여정은 스몰 브랜드가 어떻게 대중적인 아이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텍스트다.


1. 블로그 마켓에서 피어난 연대: 소통이 자본을 이기다


마뗑킴의 출발지는 화려한 런웨이가 아닌, 김다인 전 대표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블로그였다. 당시 독일 유학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판매하기 시작한 그녀의 방식은 기존 패션계의 문법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창한 룩북 대신 거울 앞에서 찍은 '셀카'가 제품 설명서가 되었고, 정제된 홍보 문구 대신 댓글을 통한 실시간 대화가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은 단순한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가 아니라 강력한 '유대감'이었다. 고객들은 옷의 제작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고민하고, 창업자의 일상에 감정이입 하며 브랜드의 성장을 응원했다. 스몰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진정성'과 '투명성'이 블로그라는 채널을 통해 극대화된 것이다. 마뗑킴은 자본이 아닌 '관계'를 먼저 축적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초기 팬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 해체주의와 러프함: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디자인


마뗑킴의 옷들을 보면 흔히 말하는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감이 덜 된 듯 실밥이 풀려 있거나, 비대칭적인 절개 라인이 눈에 띄며, 투박한 금속 장식이 과감하게 사용된다. 이러한 '해체주의적' 감도는 완벽하게 정돈된 기존의 패션에 피로감을 느끼던 MZ세대의 취향을 정조준했다.


이들의 디자인은 세련되었지만 어딘가 거칠고(Rough), 시크하지만 친근하다. 이는 "매일 아침(Matin) 입고 싶은 옷"이라는 브랜드의 슬로건처럼,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한 끗 차이의 특별함을 원하는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낸 결과다. 특히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금속 플레이트를 활용한 지갑과 가방은 마뗑킴만의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자리 잡으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날 것 그대로의 미학을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변주해낸 감각은 마뗑킴을 단순한 보세 의류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로 격상시킨 핵심 동력이었다.


3. 창업자의 페르소나: 브랜드와 인간의 경계를 허물다


마뗑킴의 성공 전략에서 김다인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단순한 대표를 넘어 브랜드의 살아있는 페르소나였다. 고객들은 그녀가 입은 옷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투, 그녀가 마시는 커피, 그녀가 여행하는 방식 전체를 동경했다. 브랜드 뒤에 숨는 대기업식 브랜딩과 달리, 창업자가 전면에 나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브랜드와 일치시키는 전략은 강력한 '동경의 대상'을 만들어냈다.


또한, 그녀는 고객의 피드백을 제품 기획에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이런 색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댓글 한 줄이 실제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본 고객들은 자신이 브랜드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느꼈다. 이러한 쌍방향 소통은 대규모 조직이 흉내 낼 수 없는 스몰 브랜드만의 민첩성이며, 고객을 충성스러운 팬으로 묶어두는 결속제가 되었다.


4. 스케일업의 마법: 자본의 날개를 달고 글로벌로


마뗑킴이 스몰 브랜드의 한계를 넘어 거대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었던 분기점은 대형 패션 투자사인 '하고하우스'와의 만남이었다. 스몰 브랜드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인 재고 관리, 물류, 오프라인 확장 등의 한계를 전문적인 자본과 시스템을 통해 해결한 것이다.


이후 마뗑킴은 공격적으로 백화점 매장을 확장하며 온라인 팬덤을 오프라인 대중으로 전이시켰다. 성수동 플래그십 스토어는 이제 국내를 넘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K-패션의 성지로 인식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남성 라인인 '마뗑킴 맨'을 런칭하고 뷰티 분야로 확장하며 카테고리를 다변화하는 한편, 해외 팝업 스토어를 통해 글로벌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는 등 이들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몰 브랜드로 시작해 기업형 브랜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특유의 '러프한 감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놀라운 저력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될 때


마뗑킴의 여정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비즈니스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한 개인의 취향에서 출발한 작은 블로그 마켓이 어떻게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닌 브랜드가 될 수 있었는지는 명확하다. 그것은 고객과의 진솔한 소통, 기존의 틀을 깨는 독창적인 디자인,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확장 전략의 결합이다.


작지만 날카로운 고집을 가졌던 마뗑킴은 이제 한국 패션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이들의 성공은 자신만의 취향을 비즈니스로 만들고자 하는 수많은 스몰 브랜드에게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와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매일 아침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옷장에서, 마뗑킴은 단순한 옷 한 벌을 넘어 '나답게 살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을 가장 시크하게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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