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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릭데이(Greek Day)의 스몰 브랜드 성공 전략

시장의 판도는 종종 아주 작은 균열에서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식품 산업, 그중에서도 유제품 시장은 대기업의 견고한 성벽과도 같았다. 하지만 2016년, 이화여대 앞 3평 남짓한 작은 골목 매장에서 시작된 '그릭데이(Greek Day)'는 그 성벽에 거대한 균열을 냈다. 화려한 광고나 대대적인 물량 공세 없이 오직 '요거트의 본질' 하나로 전국적인 팬덤을 형성한 그릭데이의 여정은, 오늘날 스몰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생존 전략과 성장의 정석을 보여준다.


결핍에서 찾은 기회: 꾸덕함이라는 미개척지


그릭데이의 탄생 배경은 지극히 스몰 브랜드답다. 창업자 김현수 대표는 금융권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자신이 매료된 정통 그릭 요거트의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의 요거트 시장은 마시는 형태나 묽은 떠먹는 요거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릭 요거트'라는 이름을 단 제품들이 시중에 있었으나, 대부분은 정통 수제 방식과는 거리가 먼 대량 생산 제품이었다.


김 대표는 여기서 기회를 포착했다. 유청(Whey)을 제거해 치즈처럼 단단하고 쫀득한 식감을 내는 '정통 그릭 요거트'의 부재를 파고든 것이다. 대중 전체를 만족시키려 하기보다, 건강하고 든든한 한 끼를 원하는 여대생들의 뾰족한 니즈에 집중했다. 이는 스몰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할 때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니치(Niche) 시장의 포착'이자 '문제 해결사'로서의 면모였다.


제품의 본질: 유청을 빼고 진심을 농축하다


그릭데이가 대기업의 공세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타협하지 않는 제품력이다. 그릭 요거트의 핵심은 '농축'에 있다. 그릭데이는 대량 생산의 효율성을 위해 첨가물을 넣거나 기계적인 공정을 서두르는 대신, 면보를 이용해 유청을 직접 짜내는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되지만, 결과물은 완전히 달랐다. 일반 요거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우유를 농축하여 단백질 함량은 높이고, 당분과 탄수화물 함량은 낮춘 '압도적인 꾸덕함'을 구현해낸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 정직한 식감에 열광했다. 숟가락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질감은 그릭데이의 정체성이 되었고, "한 번 먹어보면 다른 요거트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강력한 브랜드 경험을 선사했다. 본질에 집착하는 고집이 스몰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진입 장벽이 된 셈이다.


브랜딩의 묘수: '건강함'에 '즐거움'을 입히다


식품 브랜드가 흔히 빠지는 함정은 '건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맛'과 '재미'를 놓치는 것이다. 그릭데이는 이를 영리하게 피했다. 그들은 신뢰를 주는 파란색 컬러와 귀여운 캐릭터 '고그릭'을 활용해 브랜드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자칫 딱딱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건강식 브랜드의 이미지를 MZ세대가 소유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특히 매장에서 제공하는 '커스텀 토핑' 시스템은 브랜딩의 핵심적인 경험 요소로 작용했다. 수십 가지의 과일, 그래놀라, 견과류, 꿀 등을 고객이 직접 조합하게 함으로써 '나만을 위한 건강한 한 끼'를 완성하는 재미를 주었다. 이는 인스타그램을 통한 자발적인 인증 문화로 이어졌고, 그릭데이는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수많은 '자발적 홍보대사'를 얻게 되었다.


유통의 혁신: 골목 맛집의 한계를 넘어서는 법


성공한 많은 골목 브랜드들이 매장 수 확대에만 열을 올리다 무너지는 것과 달리, 그릭데이는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스케일업(Scale-up)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대 앞의 작은 가게를 넘어 전국 어디서나 자신의 요거트를 만날 수 있도록 신선 배송 시스템에 올라탔다.


특히 '마켓컬리'와 '쿠팡이츠' 같은 플랫폼에서의 성공은 신의 한 수였다. 매장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전국의 소비자들이 온라인 후기를 통해 그릭데이의 '꾸덕함'을 간접 경험하고 주문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브랜드의 인지도를 전국구로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유무인 하이브리드 매장인 '그릭데이 고(Go)'와 대형마트 진출을 통해 접근성을 극대화하며 대중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결론: 작지만 단단한 본질의 승리


그릭데이의 성공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브랜드의 힘은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본질의 깊이'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요거트에서 불필요한 유청을 빼내듯, 비즈니스에서 불필요한 수식어를 걷어내고 '건강한 한 끼'라는 본질에만 집중했다. 창업자의 진심이 담긴 제품은 고객의 신뢰를 얻었고, 그 신뢰는 다시 강력한 팬덤으로 이어졌다.


작은 골목의 3평 매장에서 시작해 한국의 요거트 문화를 바꾼 그릭데이의 행보는, 자신만의 고집과 철학을 가진 스몰 브랜드들이 어떻게 거대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다. 결국 가장 나다운 것을 가장 깊게 파고들 때, 브랜드는 비로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된다. 그릭데이가 증명한 것은 바로 그 '작은 것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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