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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티카, 진정성이 자본을 이길 때

화장품 매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 수많은 브랜드가 ‘친환경’과 ‘천연’을 마케팅 구호로 내세운다. 그러나 패키지를 뜯고 성분표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친환경은 때로 겉모습에만 머물러 있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 속에서 무려 20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 길만을 걸어오며 진정성을 증명한 스몰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아로마티카(AROMATICA)다. 이들은 단순히 화장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지구의 선순환 구조를 재설계하는 혁신가로서 스몰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가장 단단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근본에 대한 집착: 아로마테라피스트의 사명감


아로마티카의 시작은 유행을 쫓는 사업적 아이템이 아니었다. 호주에서 유학하며 식물 성분의 치유력을 경험한 김영균 대표는 아로마테라피스트로서의 사명감을 품고 2004년 브랜드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 뷰티 시장은 성분보다는 화려한 용기와 연예인 광고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는 “내가 믿고 쓸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을 세웠다.


이들의 집착은 단순히 유해 성분을 배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아로마티카는 국내 최초로 EWG 스킨딥(Skin Deep)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하여 화장품 성분의 투명성을 공론화했다. “합성향을 지구에서 몰아내겠다”는 그들의 초심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대기업들이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공 향료를 쓸 때, 아로마티카는 세계 각지의 농장을 직접 방문하여 수급한 최상급 천연 에센셜 오일을 고집한다. 이러한 근본에 대한 집착은 아로마티카를 단순한 화장품 브랜드 이상의 ‘신뢰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제조의 투명성: 오산 스마트 팩토리가 증명하는 고집


많은 스몰 브랜드가 자본과 인프라의 한계로 인해 외주 생산(OEM)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아로마티카는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 경기도 오산에 자체 스마트 팩토리를 세우고, 원료 추출부터 충진, 포장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자체 공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정비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품질의 통제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유기농 제조 시설 인증(COSMOS)을 받은 이 공장은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통해 전력의 26%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한다.


폐수 관리부터 탄소 배출 저감까지,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브랜드의 철학인 ‘지속 가능성’과 일치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얼마나 효율적인가"보다 "얼마나 정직한가"를 우선시하는 스몰 브랜드 특유의 고집이 비즈니스 시스템으로 구현된 사례다.


용기(容器) 있는 도전: 패키징의 혁신과 순환 구조


아로마티카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은 제품의 ‘내용물’만큼이나 ‘용기’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화장품 산업이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2021년, 아로마티카는 국내 브랜드 최초로 전 헤어 제품 용기를 100%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투명 페트(PCR)로 전면 교체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재활용 용기는 새 플라스틱보다 단가가 20~30% 비싸고 불량률도 높다. 수익성을 생각하면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인 더 서클(Join the Circle)’ 캠페인을 시작했다. 분리배출된 투명 페트병이 선별장에서 제대로 재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목격한 후, 직접 전기 트럭을 몰고 다니며 공병을 수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가 다 쓴 용기를 깨끗이 씻어 반납하면, 이를 다시 녹여 새로운 용기로 만드는 ‘무한 순환’의 구조를 민간 기업 차원에서 현실로 만들어냈다.


팬덤을 만드는 교육과 문화: 리필 스테이션


스몰 브랜드가 팬덤을 유지하는 비결은 고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데 있다. 아로마티카는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 ‘제로 스테이션’과 전국 제로 웨이스트 샵을 통해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한다. 빈 용기를 가져오면 내용물만 덜어 갈 수 있게 함으로써 플라스틱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문화를 전파한다.


매월 21일 열리는 ‘리필데이’는 이제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환경을 생각하는 고객들의 작은 축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로마티카는 고객에게 단순히 물건을 파는 판매자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동지가 된다. 고객들은 아로마티카 제품을 사용하며 내가 지구를 위해 무언가 실천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얻는다. 이러한 정서적 보상은 그 어떤 강력한 광고보다 견고한 팬덤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가장 정직한 것이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다


아로마티카의 20년 여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오직 매출의 극대화인가, 아니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아로마티카는 후자를 택했고, 역설적으로 그 진정성이 강력한 경쟁력이 되어 대기업들이 즐비한 뷰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들이 보여준 행보는 스몰 브랜드가 자본의 열세를 극복하는 법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타협하지 않는 철학’이다. 성분에서 시작해 공정, 패키지, 그리고 폐기 이후의 여정까지 책임지는 아로마티카의 고집은, 결국 진정성 있는 브랜드만이 살아남는다는 시장의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지구도 살리고 피부도 살린다”는 그들의 약속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욕실의 풍경을 바꾸고 더 나아가 세상의 온도를 낮추는 위대한 발걸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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