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장 피드포르 - 론세스바예스 (25km)
숙소를 나선 것은 7시 40분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일어난 것은 5시 반 즈음. 씻고 준비하고 테이핑을 자를 가위를 빌리러 리셉션에 여러 번 내려왔으나 어젯밤 체크인할 때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던 그 프랑스인은 정작 아침엔 보이질 않았다.(이후 몇 번의 알베르게 생활을 겪고 나서야, 보통의 알베르게 리셉션은 오후~저녁 체크인 동안 열려있으며 다음날 점심 즈음 전까진 출근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첫날엔 당연히 몰랐다) 악명 높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려면 다리에 테이핑을 붙여야겠기에, 나는 다른 곳에서 기필코 가위를 빌리리라 다짐하며 크로와상과 커피, 잼과 버터로 된 소박(?)한 아침을 먹었다.
간밤에 엄청난 코골이를 자랑하던 룸메이트들은 새벽같이 출발했는지 4인실엔 나만 홀로 남아있었다.(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나간 이유는 10시간 후에 알게 된다....) 등산할 때 필요한 것과 귀중품만 배낭에 집어넣고 어젯밤에 지시받은 대로 다음 마을로 동키(트랜스포트) 보낼 여행용 캐리어에 돈이 든 봉투를 매달아 리셉션 한쪽 구석에 두었다.
-내가 이 캐리어를 다음 마을, 론세스바예스로 보낼 건데 말이야
-응, 이 봉투에 돈 넣고 가방에 묶어서 저기에 두면 돼
-ㅇㅇ 그건 알겠는데, 만약에 내가 론세스바예스까지 못 가면 어떻게 돼?
-.... 뭔 소리야?
-그러니까, 가방은 이미 다음 마을로 보내졌는데, 내가 저 피레네 산맥, 25km를 못 걸으면 어떻게 되냐고
-넌 선택권이 없어. 그 사이엔 묵을 수 있는 마을이 없어.
-선택이 없.. 다고?
-일단 출발하면 넌 론세스바예스까지 가야 돼. 무슨 수를 쓰든지.
난 자신이 없었다. 가장 많이 걸었던 것도 한라산 왕복 20km 정도가 전부였고 그나마도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밥도 아니고 빵 쪼가리 먹고 그 보다 더 긴 거리를, (게다가 ‘산맥’을) 걷는다는 게 엄두가 안 났다.
롤러코스터에 오르기 전 뭔가 대비할 수 있는 안전바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쾌활한 프랑스인 리셉션은 그런 거 없고 그냥 출발하면 된다고 말했다. Just Go.
내 까미노의 시작도 그랬다. 거창한 의미부여나 삶의 전환점, 인생의 기로 같은 것들로 의욕의 아궁이에 부채질하는 대신, 등산가방, 길든 등산화, 여행용품, 비행기, 기차 예매 같은 현실의 장작을 마구 욱여넣고봤다. 설레기보단 차분하고 덤덤하게. 오래전부터 걷던 사람처럼 무심하게.
너무나 많은 땔감에 당황해 큰 불이 되지 못하고 조금씩 장작들을 그을려가며 불길을 키워가는 아궁이처럼, 난 그렇게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순례자 사무소 맞은편에 등산용품점이 있어서 (까미노와는 반대방향이지만) 일단 그곳까지 걸어갔다.
어제저녁 기차 막차를 타고 이 작은 도시에 도착해서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캐리어를 돌바닥에 요란하게 끌어대며 사무소가 있는 언덕을 올라갈 때, 그 등산용품점은 가게문을 닫고 있었다. 우비를 아직 장만하지 못해서 하나 사야 했는데, 지금 저기 들어갔다간 순례자 사무소 문이 닫힐 판이라 내일 아침을 노려야지 하고 눈여겨두었던 가게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우비들을 이리저리 보다가, 결국 작정하고 고른 빨간색 우비를 뒤집어쓴 나를 보며 가게 사장님은 동화 속 빨간 모자 같다며 웃었고 난 길에서 늑대 만나고 싶진 않다고 받아치고 가위를 빌려 가게 한쪽 의자에 앉아 무릎에 테이핑을 했다.
그렇게 출발하고 보니 시간이 좀 많이 늦은 느낌이었다. 까미노는 경주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지만 왠지 해 떨어지고 나서 나만 늦게 도착할 거 같은 두려움에 서둘러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출발 10분 만에 손목이 휑해서 봤더니 손목시계로 쓰던 미 밴드 알맹이가 빠져있었다....!!! 며칠 전부터 헐렁헐렁하더라니 결국 잃어버렸구나 싶어 왔던 길을 찬찬히 되돌아갔다. 마주치는 모든 순례자가 날보고 왜 내려가냐고 물어서 손목밴드의 빈 공간을 보여주며 아이로스트마이와치를 10번쯤 얘기해야 했다. 잠깐 사진 찍었던 곳 근처를 꼼꼼히 봤는데도 없어서 어쩔 수 없다, 하며 터덜터덜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이건 어쩌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는 하느님의 뜻인 걸까 생각하며 기도를 드리고 조금 걷는데 허리에 매어둔 바람막이가 허벅지 쪽에서 유난히 걸리적거리며 펄럭여서 봤더니 미 밴드 알맹이가 바람막이 틈새로 들어가 있었다!! 아니 빠졌으면 빠졌지 이렇게 애매한데 들어가 있을 건 또 무어란 말인가. 나의 신은 내가 시간에 구애받길 바라지 않지만 소중한 물건은 잃어버리게 내버려 두지도 않으신단 말인가.
미밴드를 꺼내 손목에 다시 찰까 하다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던 10분 전의 다짐이 생각나 결국 그냥 그대로 걸었다.
까미노의 시작점이라 그런지 마치 마라톤 출발선처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시야에 보이는 사람만도 전방에 최소 50명 후방에도 최소 50명이 있었다. 순례길 이래서 외진 시골길을 걷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은니 걱정 말라며 사진을 보냈더니 동생은 국토대장정이냐며 웃어댔다.
얕은 오르막 내리막, 아스팔트와 소똥, 염소똥, 양 똥으로 포장된 도로를 계속 걷다 보니 Unto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숙박이 가능할 정도로 큰 마을은 아니었고, 길 가에 작은 무인 휴식척가 있어서 화장실도 가고, 자판기에서 초코바도 하나 사서 쟁여두었다.
공기는 쾌청했지만 날씨는 흐렸고 비가 올 듯 말듯한 모습에 우비를 꺼내야 하나 갈등되었지만 일단은 걸어보기로 한다. 오르막 경사가 상당해서 국토대장정의 대열이(?) 드디어 좀 흩어지기 시작한다. 체력 좋고 젊은 사람들은 씽씽 올라가고 일행 중 어딘가 부실(?)한 사람들은 조금씩 처지기 시작한다.
안개인지 보슬비인지 구름인지 알 수 없는 허연 공기덩어리들이 도로 아래쪽의 절벽을 가득 채운 길을 걷다 보니 오리손(Orrisson) 이 나왔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가에 덜렁 있는 건물인데 1층은 바와 식당이고 나머지는 알베르게다. 어젯밤에 묵은 숙소의 리셉션은 이 길 중간에 묵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했지만, 사실 딱 하나, 이 오리손의 알베르게가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고 객실이 많은 편은 아니라 묶는 건 힘든 일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다른 곳에서부터 걸어온 사람들은 미리 이 곳을 예약해두고 하룻밤 쉬었다가 피레네를 넘기도 한단다. 물론 난 그럴 계획은 없으니 예약은 하지 않았고 그저 어중간한 곳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딱딱한 바게트 반을 갈라 햄 한 줄 넣은 샌드위치와 커피가 무려 6유로! 한화로 8천 원에 육박한다. 한입 베어 물어보니... 햄이 너무 맛있어서 더 슬프다. 이게 그 이베리코 햄이라는 건가? 맛이라도 없으면 욕이라도 실컷 할 텐데.
춥고 험한 길을 계속 걷다 그나마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긴장이 좀 풀린 건지 점심식사가 끝나고 소화시킨다며 일기도 쓰고 경치는 안 좋지만 셀카도 찍고 하며 좀 놀다가 다시 출발했다. 어느새 안개(?) 지대도 지나서 날씨는 다시 쾌청해졌고 멀리까지도 시야가 탁 트여 아름답다는 피레네 산맥 ‘나폴레옹 길’의 진가를 알 것 같았다. 출발할 땐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낮잠 자다 일어난 토끼의 기분이 이랬을까 싶게 순례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물론 이건 경쟁이 아니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바람이 몹시 세게 불었고 너무 맑은 하늘이라서인지 햇볕은 몹시 따가웠으며 걷는 걸음걸음마다 놓인 똥들을 사뿐히 즈려밟고 싶지 않아 요리조리 피하며 걸어야 했다. 열심히 걷다 좀 덥다 싶어 바람막이를 벗으며 잠깐 멈춰 서면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잠시 넋을 놓고 보게 되고, 그러고 있으면 또 너무 추워져서 바람막이를 다시 입는데 그 틈으로 구수한 고향의 향기가 파고든다.
걷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나고 있었고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 참여했던 까미노 설명회(?)에서 들은 대로 적당한 곳에 잠시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고 햇볕과 바람에 발가락을 말렸다. 물집은 젖은 상태에서 마찰이 반복되면 생긴다고, 발을 자주 말려주는 게 물집 예방의 최선이라고 하셨다. 발에 물집이 잡히면 걷는 자세가 뒤틀릴 테고 그러면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가서 통증이 심해지고 다치거나 병이 생긴 채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달 동안 걸어야 한다.....!! 는 생각 때문에 그 모든 일의 원인이 될 물집만은 피하고 싶었던 거다. 10분 정도 발 말리는 동안 초코바도 하나 까먹고 사진도 찍다가 다시 출발. 적당한 경사의 완만한 고원 같은 곳을 한참 지나다, 목동들의 수호 성모상을 지나고 드디어 다시 급경사로 진입했다.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동안 간혹 보였던 자전거를 탄 순례자들이 진흙범벅에 경사까지 급한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 걸 보면서, 내리막길도 아니고, 자전거로 오르막길은 정말 힘들겠구나... 싶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큰 비석 앞에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한 장씩 찍는다. 위치상으로 보면 스페인-프랑스 국경지대인 거 같은데 비석엔 Navarr라고 적혀있었다. 스페인 지방 중 하나인 나바르주. 이제부턴 프랑스가 아니고 스페인인거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희귀한 경험덕에 다들 사진을 찍고 있었던 모양이다. 앞서가던 외국인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은 동양인 순례자를 눈여겨보니 아무래도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 그리고 굉장히 낯익은 브랜드의 등산복 차림이길래 자신 있게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앗? 한국분이세요?
-네. ㅎㅎ 좀 전에 사진 찍으신 거 마음에 안 드신 거 같아서 ㅎㅎ
-엇ㅋㅋㅋ넼ㅋㅋ맞아요 ㅋㅋ 찍어주세요!!
낯선이에게 사진을 부탁받은 한국인의 친절을 십분 발휘해, 카메라를 최대한 낮춰서 다리 길어 보이게 찍어드리고 나도 사진 한 장 얻었다. 같이 걸어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무릎이 좋지 않으신 듯 보호대를 하고 계셨고 천천히 페이스 조절하면서 걸으시는 듯하여 나도 걸을 수 있는 만큼 씩씩하게 앞서 나갔다. 바람은 몹시도 거셌고 어느새 산맥의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비나 눈이 오는 날씨에는 굉장히 미끄럽다는 안내문도 보았고, 몇 번 되지 않는 등산 경험으로도 늘 내리막길이 제일 위험했기에, 나는 허벅지에 힘을 잔뜩 주고서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무릎에 붙인 테이핑 효과인지 내리막이 걱정만큼 힘들진 않길래, 스쾃 걷기 비슷한 느낌으로 무릎을 살짝 굽히고 허벅지에 힘을 빡 준채 빠르게 내려갔다. 스틱이 있었으면 안전하게 짚고 내려갔을 테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없는 게 낫다는 조언을 들어서 스틱 없이 두 다리만으로 내려가는 게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한라산의 길고 지루하고 다리 풀리는 하산길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아서 쑥쑥 내려갔다.
내리막길에선 스틱을 길게 쥐어야 하는데 오르막 길용으로 세팅된 채로 구부정하게 짚으며 내려가는 외국인 순례자들을 그냥 지나치기 안쓰러워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그렇게 짚으면 무릎 상한다, 스틱 길이 조절해야 한다 하고 오지랖을 떨었다. 알려줘서 고맙다고 땡큐 하고 바이 바이 했으니 그럭저럭 보람찬 하루였던 것 같다.
정작 스틱이 없는 나는 굴러 떨어지는 속도로 허벅지를 불태우며 내려가다 나무 한그루 붙잡고, 잠시 숨 쉬고 다시 쪼르르르 내려가기를 계속 반복해야 했다. 무릎이 성치 않은 많은 외국인 순례자들을 제치고(물론 당연히 까미노는 경쟁이 아니지만) 5시 좀 넘어서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구글맵에 나온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오래된 폐쇄 성당(?) 같은 곳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운영 중인 알베르게는 아닌 듯하여 어플과 다른 지도를 찾다 보니 아까 지나쳐온 마을 입구에 있던 커다란 공공기관 같은 건물이 공립 알베르게였다! 서둘러 길을 되짚어 공립 알베르게로 들어갔는데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거 까딱하단 방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하며 리셉션에 문의했더니 역시나 컴플리트(투숙 완료) 란다. 게다가 론세스바예스라는 마을에 있는 모든 숙소, 즉 도미토리식 알베르게뿐만 아니고 호스텔과 호텔 등 모든 숙박시설이 full 이란 엄청난 소식...!
발 말리며 쉬는 동안, 사진 찍으며 노는 동안 열심히 나를 지나쳐 걸어갔던 다른 순례자들이 이젠 알베르게 한쪽에서 여장을 풀고 앉아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이래서 다들 새벽같이 출발해서 부지런히 걷는구나, 나는 참 생각이 짧았구나, 여름휴가기간도 지난 9월인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같은 생각들이 마구 지나가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오늘 저녁에 잘 곳을 구해야 한다...!!
당황으로 어버버 하는 나와 같은 (절망적인) 표정의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알베르게에 도착한 다른 순례자들. 그들도 나처럼 갈 곳이 없다. 우린 이제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 빨간 조끼를 입은 알베르게 스탭 한 명이 나와 예비 노숙자(?)들을 부르더니 어디론가 안내한다. 그곳엔 승합차가 있었고 이 택시가 우리를 다른 마을로 데려다줄 거라고 설명한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나는 이 길을 ‘걷고’ 싶은 거지 차로 ‘이동’하고 싶은 게 아냐!라는 눈빛으로 영어도 스페인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말로 웅얼거리자 스탭이 한마디 한다.
-그럼 다음 마을까지 걸어갈 거야? 지금?
몇 시간 동안 산을 타고 넘어온 상태에서 그 질문을 들은 일곱 명의 예비 노숙자의 표정은 모두 똑같았다. HELL NO. 그리고 아직 외국의 택시란 걸 타본 적이 없던 나는 또 한 가지가 걱정이었다.
-근데 택시비는 얼마나 나오는 거야?
-돈은 신경 쓰지 마.
-궁금해, 택시비는 얼마야?
-넌 지쳤고, 숙소가 있는 마을까진 걸어갈 수 없어. 택시를 타야만 해. 그러니까 돈은 중요하지 않아.
..... 중요한지 아닌지는 액수를 들어보면 알 것 같은데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승합차엔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7명이 탈 수 있었고 나는 이동서비스로 보냈던 캐리어를 찾아와 배낭과 함께 짐칸에 싣고 택시에 탔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하산길에서 지팡이에 매달려 기어가다시피 천천히 걸어온 분이었는데(어디 다친 줄 알고 괜찮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멍한 얼굴로 Why am I here... 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택시비는 약 20유로 정도 나왔고, 7명이니까 3유로씩 주면 돼!라고 해서 그렇게 주고서도 혹시라도 바가지 쓴 건가 싶어 뱁새눈 모드였지만 나중에 같은 루트로 택시 타고 온 3명인 일행은 각자 10유로씩 냈다는 소리를 듣고 안심하기로 했다.
바로 옆 마을이라더니 정말 5분 정도 이동후에 내린 곳은 Urrobi라는 캠핑장 겸 호스텔. 정식 까미노 루트 위에 있는 알베르게는 아니었지만 순례자가 몰리는 시기에 이곳까지도 숙박하러 오는 건지 리셉션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내가 배정받은 도미토리는 12명이 잘 수 있는 큰 방이었고 슬쩍 둘러보니 우리 방 말고도 두어 개 방이 꽤 차 있었다. 모두들 느지막이 도착한 순례자들이었고 많지 않은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빨래하느라 밤늦도록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 사람들과 비슷한 길을 걷고 같은 마을에서 쉬어 갈 걱정에 침낭 안에서 휴대폰으로 부지런히 다음날, 그 다음 날의 숙소를 예약하며 잠이 들었다.
(유튜브 영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