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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Dec 05. 2019

산티아고 가는 길 - 둘째 날

론세스바예스(Urrobi)-viskarret (5km)


  간밤의 숙소는 전쟁터였다. 빼곡히 들어선 2층 침대의 난간마다 빨래들이 널려 있었고 오래간만에 힘든 산행을 마친 사람들은 너도나도 웅장한 코골이를 연주해댔다. 일단 잠들면 지진이 나든 사이렌이 울리든 아랑곳 않고 숙면을 취하는 나도 아마 긴장과 피로감에 깊이 잠들진 못했던 것 같다.


  선잠에 뒤척이다 6시쯤 일어나 아침 준비(라고 함은 캐리어에 짐 넣고, 돈봉투를 매달아 예약해둔 다음 숙소로 보내기를 포함한다) 마치고 7시쯤 길을 나섰다.


가방끈을 조이며 바라본 일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어제 길에서 만나고, 또 숙소에서 만나고, 다음 숙소도 같이 묶기로 예약한 JH를 만나 길을 나서는데 우리보다 조금 앞서 차도를 따라가던 한국인+대만인 그룹이 우리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보인다. 왜 그러냐 물으니 길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구글 지도상에선 (N135국도) 길을 따라가면 맞을 것 같은데....? 아마 그들이 뭔가 착각했겠지 하며 우린 꿋꿋하게 그 길로 들어섰는데 조금 걷다 보니 생각했던 길이 아니고 다른 길이다.


  이래서 까미노에서 길 잃으면 다른 사람들 따라가라고 하는구나. 우린 다시 되돌아가서 한국인, 대만인과 함께 지도책과 구글맵을 비교하며 머리를 맞대고 대 토론을 펼쳤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 와중에 같은 숙소에서 나온 파란 옷을 입은 서양사람 한 사람이 우리가 갔다가 되돌아온 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인류애를 발휘하여, 그 길은 잘못되었다고 소리치니 그 사람은 이  길이 맞다며 걸어간다. 자세히 보니 우리가 갔던 길이 아닌 바로 옆으로 나 있는 샛길로 들어가고 있다! 이른 새벽이라 발견하지 못했던 길이었다.


  우르르 그곳으로 다가가니 작은 표지판 한쪽에 파란 바탕, 노란 조가비 그림의 까미노 싸인이 있었다. 드디어 맞는 길을 찾은 초보 순례자들은 그제야 묵은 수다를 떨며 걷기 시작한다.


반대쪽에서 봤을 땐 잘 안보이던 까미노 싸인이 가까이 다가가니 보인다.


  한국인 4명에 대만인 1명이었는데 우리 말고 다른 두 한국분은 친구 사이인 듯했다. 그중에 한 분이 발이 불편하신지 잠시 쉬었다 가신대서 나머지 세명은 계속 걷기 시작했다.


  셀린이라는 대만 분과 JH는 영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영어가 짧은 나는 그 대화의 70% 정도만 간신히 알아들었다.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 교육을 받고 자라서인지 리스닝은 그 정도라도 되는데 반해 스피킹은 거의 안돼서 두 사람이 나에게도 묻는 말에 한참 있다 대답을 하게 되는 것이 약간 슬펐다. 양을 보던 셀린은 한국에도 있는지 모르겠다며, 대만에는 해마다 12가지의 동물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우린 그게 '띠'를 말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구체적으로 나이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각자 본인들의 띠를 이야기하니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되는 게 재미있었다. 역시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이런 건가.


  (정규 루트는 아니었던) Urrobi를 지나 정식 까미노로 합류하니 우리가 묵지 못했던 눈물의 도시,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해 합류하는 순례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에스피날(Espinal)에 있는 아침 주는 타파스 바에서 햄치즈 샌드위치와 파인애플 사서 일행과 나눠먹고 다시 출발.


  아침 햇볕은 날카로웠지만 숲은 충분히 깊었고 우리는 짙은 나무 향기, 수백 년 된 순례자들의 냄새, 따끈따끈한 양 똥 냄새를 맡으며 오르막, 내리막 좁은 길, 넓은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걷기 딱 좋은 날씨.


도착?!



  Viskarret 라는 곳에 도착해서 잠시 쉬어가려고 마을 입구의 bar에 앉아서 내가 어제 예약해둔 숙소까진 얼마나 남았을까 하고 살펴보니 바로 이 마을이었다!

  지난밤에 예약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많이 묵는 다음 마을, Zubiri에는 숙소 개수도 많지 않고 있는 숙소도 몹시 붐빌 것 같아 그 앞 뒤에 있는 (남들 안 묵을 것 같은) 마을에 묵으려고 이 마을의 숙소를 선택했는데 거리 계산을 제대로 못했던 게다.

 이제 겨우 10시인데. 

 걸은 거리는 고작 5km인데. 

 하늘은 파랗고 걷기가 이렇게나 좋은데. 

 거기다 혼자 예약한 것도 아니고 침대 두 개라고 JH에게 같이 묵자 권유하고서 돈까지 받았는데.



  심지어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숙소에 체크인할 수도 없어 셀린과 JH와 함께 한참을 쉬다 일어났다.

  셀린은 다음 마을까지 간다고 하였고 나와 JH는 마을 구경 겸 쇼핑을 나서서 내일 아침과 오늘 저녁에 먹을 간식을 사서 호스텔로 체크인했다.


  그런데 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예약한 방에 침대가 두 개 있는 건 맞지만 그건 한 개의 침대에만 부과된 요금이고 다른 침대까지 쓸 거라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세상에나! 이미 JH가 나에게 방값이라고 준 돈이야 되돌려 준다 쳐도 그가 추가 요금을 내면서까지 여기서  묶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다시 길을 걸어야 할 텐데, 그럼 숙소에 체크인하기 전까지 우리가 쇼핑하고 마을 구경했던 게  JH에겐 시간낭비였던 걸 수도 있다. 나는 너무나 미안해서 거듭 사과했고 JH는 차라리 이렇게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겠다며 흔쾌히 추가 요금을 내고 나와 함께 묶기로 결정했다. 대신 우리 둘 다 오늘 조금 걸은 대신 내일 많이 걷자고 다짐하고 여장을 풀었다.


비싼 만큼 일반 알베르게와는 다른 퀄리티의 숙소. 



(유튜브에 영상도 있어요~)

https://youtu.be/AX2YhDSN_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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