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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Feb 15. 2019

Zero to One
- 9부 리그 구단 운영기(1)

Football Manager 실사판의 시작

Bepro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는 제목이다. 사실 이 문구는 일전에 사장님이 Bepro의 독일 이주 초창기의 생활을 정리한 글의 제목이다. (https://brunch.co.kr/@project1/12) 사장님의 글처럼 베스트셀러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Bepro는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제목에 대한 외압은 없었음을 밝힌다  사실 다른 이유보단 현재 우리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였기 때문에 제목으로 골라봤다. 마치 Bepro가 축구 시장에서 1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0에서 1'이 되보기로 했다. 


우리는 2018/19 시즌 독일 9부 리그에 속해 있는 <Hamburger Berg> 라는 팀을 맡아 운영하기로 했다. 
Bepro X Hamburger Berg


우선 왜 우리가 'Zero'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다른 것들을 설명하기 전에 이 글의 최상단에 있는, 제목란의 배경으로 사용된 사진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나름 운치있게 나온 사진이라 누군가는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우리 팀의 연습 구장 사진이다. 나도 그랬고, 나 이후에 훈련에 참여한 회사 멤버들도 모두가 가장 먼저 놀랐던 건 운동장이 잔디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밤 8시에 시작되는 훈련장에서 경기장 조명은 사이드라인 한 쪽으로만 비춰주고 있어 조명을 바라보는 쪽에 있는 사람은 시야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축구가 체계화된 독일이지만 최하위 리그에 해당하는 9부 리그까지 모두 시설이 좋지는 않다. (9부 리그 경기에는 부심이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오프사이드 판정을 주심이 직접 내린다)


사장님한테 혼나는 거 아니다. 앞으로의 계획 설명하는 중이다. 

사실 경기장, 훈련 시설 등의 환경은 같은 리그의 다른 팀들도 대부분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 팀은 시설 뿐만 아니라 선수단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도 '날 것 그대로의 상태'에 가깝다. 왼쪽 사진의 빨간 옷을 입은 친구가 지금까지 감독을 맡아왔던 '랄프'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의 철학은 '만물열정설'이다. 우리가 경기를 이긴 건 우리의 열정이 상대팀보다 강해서이고 우리가 경기를 지면 상대팀보다 열정이 덜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친구는 이 팀의 구단주이자 단장이자 감독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이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기 또는 훈련을 준비함에 있어 전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많이 있었다. 감독이 정하는 포메이션은 사실상 '전반전 휘슬 불 때 서있는 자리' 정도에 지나지 않고 선수들은 자신이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고 했던가. 이 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팀의 규율이나 체계가 말그대로 '개판'이라는 것이다. Hamburger berg는 아마추어 축구 클럽이지만 굉장히 특이하게도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이 팀은 이전까지 독일에 오는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독일로의 정착을 돕는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Bepro 멤버 중 한 명은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눈물을 흘릴 정도의 감동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사실 긍정적인 기능임이 분명하지만 이런 부분을 역으로 이용하여 단물만 빼먹고 팀에 나오지 않는 버러지같은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는 팀의 단합에 굉장한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게다가, 아마추어 축구임을 감안하더라도 라인업에 등록된 선수가 경기 직전까지 나타나지 않거나, 심지어는 경기에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국에 있는 대학교 축구 동아리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여기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명언을 좋아하는 편이다. 

데로시는 말했다. 맨유 갈 바엔 자살한다. 맞다 나는 맨시티 팬이다.  가장 좋아하는 명언 중 하나는 청춘 FC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젊음의 매 순간이 기회임을 젊음은 종종 잊는다'라는 문구다. 하지만, 우리의 강사장님은 매 순간이 기회임을 잊지 않고 이 팀을 개선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시설 면에서 당장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연습 구장은 우리 구단의 소유가 아니며 다른 잔디 구장을 대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팀의 '내부적'인 부분을 먼저 고쳐나가기로 했다. 


1. 감독의 교체

먼저 감독을 바꿨다. 강사장님이 감독직을 맡는다. 권력욕이 상당한 듯 하다. 훈련과 경기 준비등을 돕는 코치(그게 나다)와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비디오 세션을 같이 준비할 비디오 분석관이 함께 감독을 보좌한다. 

강 감독님이 만드신 전술 중 하나. 

기본적인 팀 전술의 테마를 정하고 조금씩 팀에 색깔을 입혀나갈 것이다. 의미없이 공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할 것에 대해 명확하게 명시하고,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이 해야할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축구판에서는 감독을 교체하면 새로 부임한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을 지원한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지원할 형편이 되지 않아 우리 스스로 선수들을 충원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Bepro에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멤버들 중 축구를 좋아하는 멤버 3명을 팀에 영입했다. 다들 '너 나보다 축구 못하잖아' 라는 소리 들으면 기분 나빠하는 선수들인데 경기장에서 얼마나 잘 할지 기대가 크다.


2. 팀 규율의 강화

가장 많이 손봐야할 부분 중 하나인 '규율'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조금씩 갖춰나갈 예정이다. 

새 유니폼 가안. Bepro는 메인 스폰서 자리에 위치한다.

먼저, 팀의 새로운 유니폼을 맞출 것이다. 지금까지 선수들은 기존에 구매해뒀던 예전의 유니폼을 돌려가면서 입었다. 때문에, 자신의 등번호가 없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이 없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9부 리그여도 '내 유니폼'이 없다는 건 기분이 좋지 않다. 선수들이 각자 자신의 이름을 달고 뛸 때 아무래도 조금 더 책임감있게 뛸 수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기강 확립이다. 첫 훈련에 앞서 강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했다. 그 내용 중 가장 강하게 말했던 부분이 위의 슬라이드 두 장이었다. 오른쪽 이미지의 3가지 항목을 2번 이상 지키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바로 'Adiós'를 날리기로 모두가 있는 앞에서 선언했다.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팀의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들은 가차없이 쳐내기로 랄프에게도 동의를 얻었다.


3. Bepro 프로덕트

아마 전 독일을 통틀어서 9부 리그 아마추어 팀에 축구 분석 시스템을 도입한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앞으로 Hamburger berg의 경기는 전 경기가 촬영되어 분석되고 우리 서비스 위에 올라갈 것이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자신의 이벤트들을 모두 영상으로 볼 수 있고 다양한 스탯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회사에서 개발 중인 경기 영상 분석 및 편집툴로 직접 비디오 세션을 준비하고 이를 선수들과도 공유할 예정이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멤버들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프로덕트를 실제 코치 즉, 유저의 관점에서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기도 하다.



 

첫 훈련에 앞서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 진행 중이다. 모니터는 사장님이 직접 회사에서 챙겨갔다. 이 헝그리함이 보이는가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 정말로 감사함을 느낀다. 한국인 중에 평생을 살면서 독일 9부 리그 팀을 운영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축구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축알못들이 뭘 하냐~'라고 비웃을 수도 있고 분명 그 사람의 지적 또한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의 멤버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거 재밌겠는데?'라고 느끼고 있고 이 프로젝트에 대해 주인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혹시 아는가? 제 2의 RB 라이프치히가 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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