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15 : 이르쿠츠크 중앙시장에서 리스트뱐카까지
20170206, 사설 버스, 이르쿠츠크→리스트비앙카?리스트비안카?리스트비얀카?
호텔에서 조식을 일찍 먹고 서둘러 준비하여 나섰다. 이르쿠츠크에 오래 있어봤자 할 일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흔히 미니버스라고 부르는 Маршрутка(마르시룻카, 마슈르트카)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일찍 가서 확인해보려 했다. 그리고 바이칼 호수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기에, 최대한 일찍 가서 더 제대로 감상하고자 함도 있었다.
마르시룻카(미니버스)는 노선버스라고도 볼 수 있지만 승합 택시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참조). 그래서 잘하면 편하게 이용할 수도 있고 속도도 더 빠른 편이지만, 요금이 조금 더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걸 선택한 이유는 버스터미널보다는 중앙시장이 더 접근하기 쉬웠기도 하고 동유럽 쪽의 교통문화를 체험해보고자 하는 것도 조금은 있었지만, 정식 버스는 몇 대 안 다닐뿐더러 혹시 자리가 없으면 결국 마르시룻카 쪽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앙가라 호텔에서 이르쿠츠크 중앙시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는데, 눈길에 캐리어까지 끌고 가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뭉쳐진 눈들이 캐리어의 부드러운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계속 달그락거렸다. 그래도 중부 유럽의 울퉁불퉁한 돌로 된 길을 다니는 것보다는 편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이런 데서나 그런 데서는 차라리 배낭을 메고 다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중앙시장 쪽에 큰 건물이 두 개 있는데, 건물이 유리창으로 덮인 듯한 곳이 종합상가이고, 유리창이 적은 쪽이 시장이다. 봐도 모르겠다면 들어가 보면 느낌 자체가 다르므로 쉽게 알 수 있다. 건물 안뿐만 아니라 밖에도 노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곳들이 많았으며, 큰 시장인 만큼 정말 다양한 품목들을 취급하고 있었다.
도착해서 바로 보이는 주차장 쪽에 미니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우선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많은 버스들 중에 리스트뱐카가 행선지인 버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쉬고 있는 듯한 운전기사분께서 '리스트뱐카?'라고 물어봐주셨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 고맙게도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런 무심한듯한 친절 덕분에 크게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시장 건물 옆을 따라 돌아가니 또 다른 주차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미니버스가 몇 대 없었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Листвянка'라고 적힌 미니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동문이므로 굳이 일부러 열지 말고 버스 기사에게 말하면 되고, 요금은 내릴 때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탑승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우리가 그 미니버스의 첫 승객이었는데, 승객이 전부 찰 때까지 다소 기다려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짐을 놓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씩 탑승하기 시작했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도 짐을 가지고 탑승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숙박하기보다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듯하다. 사실 처음에는 나도 굳이 숙박하기보다는 당일치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르쿠츠크에서 할 것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잘못 예상한 것도 있고, 빡빡하기보다는 여유로운 일정을 짜고 싶었기에 하루 자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 대신 캐리어를 매일 끌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 점은 안타깝지만.
버스의 자리가 가득 차니까 곧 출발하였다. 가는 동안 밖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기온차로 인해 차창에 성에가 심하게 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볼 수 있는 것은 흐릿한 풍경뿐으로, 깨끗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성에를 계속 긁어내야만 했다. 매번 손으로 하는 것은 무리고, 딱딱한 명함이나 안 쓰는 플라스틱 카드가 있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하려니 힘들었다.
버스의 시설은 미묘했는데, 바닥이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닦여있는 걸 보면 깨끗하게 잘 유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자잘하게 고장 난 부분은 방치하는 것 같았다. 실례로 내 앞자리의 팔걸이가 부서진 것 같았는데, 그냥 테이프로 적당히 감은 채로 방치 해놓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엔진에서 굉음이 난다거나 차체 진동이 심하다거나 하는 그런 심각한 결함은 없는 것 같아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도심에서는 교통체증 등으로 인해 천천히 달렸지만, 벗어나자마자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노면의 상태가 불량해서 덜컹거림이 심했으므로 더욱 질주처럼 느껴졌다. 특히 일부 구간은 공사 중이었는지 임시포장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가 더 심했는데, 거기서도 속도를 크게 줄이지 않아서 고속으로 내달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도로 양 옆으로는 눈이 가득 쌓여있었고 도로만 어느 정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눈에 띄는 수준이었고, 거기에다가 눈이 계속 더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더욱 불안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폭설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눈이 계속 쌓이는 만큼 노면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은데, 운전기사분은 그런 상황과 길이 엄청 익숙하다는 듯 계속 거침없이 달렸다. 그래서 차가 엄청 덜컹거렸고 가끔씩은 몸이 튀어오를 정도였는데,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주의해야할 것 같지만, 나는 괜찮은 편이라 그냥 그 상황을 즐겼다.
그런데 처음 탔을 때는 몰랐는데, 계속 타고 갈수록 조금씩 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반신은 패딩을 입어서 괜찮았지만 하반신이 살짝 시렸는데, 그제야 밖이 영하 10도를 넘어가는데도 히터를 전혀 틀고 있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하긴 모든 사람들이 추위 대비를 확실히 하고 탔기 때문에 난방을 할 필요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하반신만 살짝 시리기만 했을 뿐 그렇게 힘들지 않기는 했다. 아마 운전자마다 다를 것 같으니 그냥 참조사항 정도로 알아두면 될 것 같다.
원래 차에서 폰이나 책을 잘 안 보는 타입인데, 그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그럴 경우 멀미를 심하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전혀 그러지 않았으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현상이 심해졌는데, 그래도 가는 동안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잠시 보았다. 그러나 통신상태가 워낙 오락가락하는 터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서는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만약 제대로 전파가 통했다고 하더라도 차가 워낙 덜컹거려서 제대로 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도착할 때쯤이 되자 오른편의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안가라(앙가라)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가라 강은 바이칼 호수의 유일한 출구인데, 그래서 그 유량과 유속이 대단하다고 한다. 멀리서 보는 것이긴 했지만 그 위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쯤 되자 버스가 정차를 하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내리는 사람들은 다 현지인으로 보였다. 종점에 도착하기 이전에도 딸지 박물관 등 관광지나 숙소가 뭉쳐있는 곳이 있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일단 끝까지 가는 듯하다. 그렇게 몇 번 정차를 하고 어느 지점에 와서 제대로 주차를 하더니 운전기사가 '리스트뱐카!'라고 말했다. 1시간을 달린 끝에 드디어 도착을 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내리면서 요금을 계산해야 하는데, 큰 짐은 별도 요금이 붙는다. 총 요금을 물어보자 그는 폰을 꺼내 숫자를 입력하여 보여주었다. 어차피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그렇게 한 것인데,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그렇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아라비아 숫자의 보급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숫자만큼은 지구 어디를 가더라도 웬만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편리하다.
하차를 하니 완전히 하얀 세상이 펼쳐졌다. 바닥과 호수는 완전히 눈으로 덮여있는 데다, 날이 살짝 흐리면서 눈까지 내리니까 정말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다만 여기서 전부 하얗게 보였다는 점은 약간 부정적인 표현인데, 태양이 가려져서 살짝 어두운데 그렇게 되니까 풍경이 상당히 밋밋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중에 구름이 좀 걷힌 뒤에는 훨씬 괜찮은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타까웠던 점이, 나는 호수가 투명하게 얼어붙은 모습이 끝없이 펼쳐진 장관을 기대했는데, 그게 눈으로 다 덮어저버린 터라 그저 모래 대신 눈으로 된 평평한 사막과 같은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장관이었지만 기대와는 어긋났기 때문에 아쉬웠는데, 막상 바이칼을 다녀보니 눈이 덮인 풍경도 상당히 아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시각이지만 체크인을 하고 리스트뱐카와 바이칼 호를 구경하러 나섰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출처 1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https://www.openstreetmap.org/copyright 참조. 편집은 직접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