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19 : 리스트뱐카, Berg House
20170206, 저녁식사, 벌그 하우스, 러시아 요리 음식점
리스트뱐카(리스트비앙카)와 바이칼 호(湖)를 둘러본 다음 호텔에서 잠시 쉰 뒤 조금 이르게 저녁식사를 하러 움직였다. 점심을 살짝 부족하게 먹었던 탓도 있지만 운동량이 많았던 터라 배가 빨리 고파진 것도 있고, 식사 후 일몰을 구경하기 위함도 있었다.
식사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가능하면 괜찮은 곳에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좋은 평가를 받은 음식점들이 다 멀리 떨어져 있는 터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좋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머물고 있는 호텔(프리보이, Priboy)이나 버스 정류장 앞의 호텔(마약, Mayak)에도 음식점이 있기는 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거나 영어 메뉴판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평을 볼 수 있었기에 확실히 영어 메뉴판이 있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평을 볼 수 있었던 이 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안 통하면 진짜 아예 안 통하기 때문에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주문 자체가 엄청나게 힘든 일이 되는데, 그러한 상황을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상호와 입구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아서 자칫하면 지나칠 뻔했으나 GPS의 도움으로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었고, 내부는 적당히 넓었지만 테이블을 여유롭게 배치하여 번잡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리 테이블 세팅이 되어 있었는데, 형태를 보니 기본 이상은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나이 드신 남성분께서 홀을 총괄하셨는데, 영어를 듣기 편하게 말해줬기 때문에 이해하기 상당히 좋았으며, 영어 메뉴판이 있는 데다 음식에 대한 설명도 영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메뉴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사실 이러한 점이 식당을 평가하는 데 큰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짧은 여행을 위해서 현지 언어를 통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식 요리를 팔고 있었으며, 육류 메뉴가 부실한 반면 수산물 메뉴가 상당히 풍부한 편이었다. 다만 주류 메뉴는 조금 빈약하긴 했는데, 그래도 아쉬움은 없는 수준이다.
음료는 흑맥주 탭으로 한 잔과 Mulled Wine(뮬드와인, 뱅쇼)을 주문했는데, 둘 다 적합한 품질로 제공되었다. 뮬드와인은 과일 조금과 향신료 등을 넣고 데운 와인으로, 존재 자체는 정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마셔본 적은 없었는데, 딱히 그 외에 다른 마시고 싶은 음료가 없었던 데다 추운 곳에서 오랫동안 걸어 다녔다 보니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어 주문했다. 맛은 예상하던 것과 정말 유사했지만, 당시 나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부모님께서도 와인을 드시는 편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처음 맛보셨는데, 두 분 다 흡족해하셨지만 어머니께서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이후 한국에 와서도 종종 만들어 드시고 계신다. 역시 다양한 경험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은 메인 요리를 제외한 것부터 나왔는데, 솔랸카(솔얀카, Солянка)로 기억하는 수프와 바이칼에서 나는 날생선(회)으로 만든 롤이 먼저 서빙되었다. 솔랸카에는 가공된 육류가 풍부하게 들어있었고, 짭짤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식욕을 돋우워주었다. 향신료가 다소 들어간 듯 보였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회로 만든 롤의 경우에는 민물고기라서 먹기 찝찝할 수도 있겠으나, 맛만큼은 정말 좋았다. 살짝 기름진 생선의 부드러운 감촉이 상큼한 레몬향과 아삭 거리는 양파의 질감에 잘 어우러졌다. 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양파를 조금 빼고 먹는 편이 생선의 향을 더 느낄 수 있으므로 더 나을 듯하다.
회로 만든 롤에 감탄하고 있으니 이어서 메인 요리가 나왔는데, 솔직히 소고기 스테이크라고 나온 물건은 정말 맛이 없었다. 기름기가 너무 적은 부위를 사용한 데다 두께도 얇은데 거의 바싹 구워서 퍽퍽했고, 위에 뿌려진 소스도 맛이 미묘했기에 누가 그걸 주문한다고 하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생선요리들은 정말 훌륭했는데, 크리미한 소스에 기름진 생선을 담아 오븐에 구운 요리는 정말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이 대단했으며, 시그니처 메뉴인 바삭한 감자 팬케이크에 구운 생선을 싼 요리도 진심으로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기존에 서양식 생선요리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인식이 확실히 전환되었다.
각 요리의 분량이 그래도 좀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다 먹고 나니 배가 제법 불렀다. 가격이 저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고기를 제외하고는 가격 값은 충분히, 혹은 그 이상 하는 음식들이었기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하긴 애초에 시푸드를 잘 한다는 식으로 소개되어 있는 데다, 이 지역의 특산물이 바이칼의 민물 생선인 점을 생각하면 육류 메뉴가 다소 부실한 것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을 꼽자면, 밖에는 신용카드가 된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었는데 막상 카드를 내니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했기에 현금으로 결제를 해야만 했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곳이 정말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식사 후 일몰을 감상한 뒤 호텔에서 쉬었고, 다음날 이르쿠츠크로 돌아갔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