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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rukinasy Apr 12. 2017

반나절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다 보기엔 부족했다

러시아 _ 06 : 블라디보스토크, 관광이라기보다는 산책

20170202, 잠수함 박물관, 해양공원 등




심카드 구입과 환전을 마치고 나니 기차 탑승 시간까지 6시간 정도 남았다. 필수적으로 빼놓아야 하는 시간은 점심식사시간, 3박 4일간 탈 기차에서 먹을 음식을 장보는 시간, 호텔에 맡긴 캐리어를 가져오는 시간 정도였다. 그렇게 여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잠시 동안 둘러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서, 가까운 곳을 적당히 둘러보기로 했다.


여행을 계획하던 초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블라디보스톡)에 대해서 조사를 했으나, 이후 횡단 열차의 생활과 바이칼 호수 쪽에 집중한다고 조사를 등한시하여 아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어설픈 기억을 바탕으로 만만한 트립어드바이저 앱을 켠 뒤 다니기로 했다. 잘 모르겠는데 적당히 다니고 싶을 때는 저 앱이 쓸만하다.




혁명광장은 아스팔트와 동상과 비둘기로 이루어져있다. ⓒ


일단 바로 근처에 있는 혁명광장으로 향했다. 매번 어디든 광장을 갈 때마다 광장 자체는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여긴 더 심했다. 그저 아스팔트로 평평하게 다져진 바닥에 동상이 몇 개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거나, 지역적 색깔이 드러나는 것도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그냥 무슨 행사 있으면 이용하기 좋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옆으로 갔으면 굼 백화점(ГУМ, GUM)이 있기는 했으나, 어차피 모스크바에서 더 제대로 된 것을 볼 것 같았으므로 넘겼다.




바닷가쪽 공간은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


광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내려가니 바다따라 철길이 깔려있다.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쭉 가면서 앞 방향에 있는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Zolotoy Bridge)를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조형물들을 지나치며 계속 가니 흔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부르는 곳이 나왔다.


꺼지지 않는 불꽃. 이 근처는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


보통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러시아어로는 Вечный огонь라고 하고, 영어로는 흔히 Eternal Flame이라고 하니까 영원의 불(불꽃) 정도가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미 굳어진 표현이니 일단 그러려니 한다. 그곳은 군인들을 추모하는 곳인데, 불꽃 외에도 여러 조형물들이 있었고, 벽에는 여러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꽃이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주기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잊지 않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해가 진 뒤 조명을 비추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다. ⓒ


그 일대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불꽃 옆에 있는 잠수함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쓰던 С-56(S-56) 잠수함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써 활용하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이기도 하고, 입장료도 저렴해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다만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 대한 요금은 입장료와 별개로 내야 했고, 입구와 출구가 나뉘어 있으니 입구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반부는 이런 느낌. ⓒ


처음 전반부는 정말로 '박물관' 같은 형태였다. 여러 사진들과 훈장과 장비와 설명들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전부 러시아어로만 되어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 따로 외국어로 된 안내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외국인들은 이 부분을 관람하는 데 큰 애로사항이 있을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의복과 장비 같은 것만 적당히 보고 지나가야만 했고, 이때까지는 후반부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터라, 돈 아까운 짓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동그란 잠수함 문을 통과하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잠수함의 원래 모습이 보존되어 있었다. 완전히 그대로 둔 것은 아닌 것 같고 깨끗하게 관리 중인 것 같았다. 잠수함 내부를 재현한 곳은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 잠수함의 내부를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사실 잠수함에 해박한 것은 아니라 무엇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조타실이나 거주공간이나 통신실이나 어뢰실 등을 구경하며 흥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수함 박물관의 가장 마지막 부분. ⓒ


어뢰실을 끝으로 우측에 출구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귀찮은 듯 하지만 팔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청년이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각종 엽서와 마그넷 등 흔한 기념품을 기본으로, 플라스크나 털모자나 장식된 접시 등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만 살 수 있을 법한 기념품은 그다지 없는 것 같았고, 앞으로 긴 여정 동안 들고 다니기 부담되어 구입하지는 않았다.


혹시 소련 시대의 잠수함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들러볼 가치가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이 일대에 왔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신선한 구경을 할 수 있으니 추천해주고는 싶다. 그러나 그다지 흥미가 없는데 굳이 일부러 와서 볼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다.




그 일대를 다 둘러봤으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야 했는데, 독수리 전망대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서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시내 쪽 도로로 걷고 싶었으나, 어머니께서 한산한 바닷가 쪽 길로 걷는 걸 희망하셔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미 오면서 본 길이기는 하지만, 반대 방향에서 보니 또 살짝 다른 게 괜찮았다.


그렇게 계속 걸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까지 도착했는데, 항구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거나, 철로 반대편으로 건너는 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항구 1층은 여객을 담당하기보다는 화물을 취급하는 곳 같았으며, 보통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은 2층이었고, 그쪽을 통해서만 철길을 건널 수 있는 것 같았다. 철로 지하를 통해서 건너는 길이 있기는 했지만, 한참 멀리 가야만 했다. 혹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폰으로 지도를 살피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선착장의 출입구를 지키는 듯한 가드에게 건너는 방법을 물었다. 다행히도 영어를 알아들은 건지 바디랭귀지가 통한 건지, 우리를 직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안내해주었다. 밖에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지나친 곳이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어딜 가나 친절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항구에서 바라 본 금각교와 금각만. 사진이 이상해보인다면 당신 눈이 정확한겁니다. ⓒ


2층으로 올라오니 바로 여객터미널이 있었는데, 바다 쪽을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잠시 구경하였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탁 트였고, 드문드문 바다 방향으로 놓여 있는 벤치가 있어 여유롭게 경치를 감상하기 좋았다. 금각교가 한눈에 들어왔으며, 그 양쪽으로 도시가 펼쳐져있었다. 군함이 여러 척 정박되어 있는 것이 보였는데, 역시 군사항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보고 항구의 화장실을 가려했는데, 역시라면 역시랄까, 유료였다. 다만 일반적인 유럽의 화장실처럼 엄청 비싸지는 않았고, 수백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예전에 2유로를 내고 화장실을 이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정말 양호한 가격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유료로 운영되는 화장실은 일반적으로 깨끗하다. 무료 화장실만 다니다 보면 유료 화장실은 돈 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여기의 화장실은 안 가봐서 잘 모르겠다.




이어서 점심식사를 하기 전까지 해양공원 쪽을 다니기로 했다. 호텔에서 아침부터 사람들이 얼어있는 바다 위를 걸어 다니던 것을 보았는데, 한낮에 갔는데도 얼음이 튼튼한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가 있었다.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현지인들도 많았는데, 현지인들의 상당수는 얼음에 구멍을 뚫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물고기가 잡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간단히 취미 삼아 하기에는 좋아 보였다.


아재들 낚시 재미있어요? ⓒ


얼어있는 바다 위를 걷는 건 그다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무리 추워도 바다가 통째로 어는 일은 없으므로 불가능한 경험이다. 그래서 실제로 얼어있는 바다 위를 걷는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생각보다 두껍게 얼어있는 것 같았는데, 얼음낚시를 하는 분들이 파놓은 구멍을 보면 깊이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 두께로 엄청 넓은 면적이 얼어있으니, 근방 수백 미터 정도를 걸어 다니는 것 정도는 안전해 보였다.


얼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중에 바이칼 호에서 들어본 얼음과 비교하면 그 밀도의 차이가 상당했는데, 관련된 지식이 없어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뿌옇고 표면이 균일하지 않으며 울퉁불퉁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갈라진 곳이 있었으나, 그 밑은 완전히 얼어있는 것 같았다. 걷다가 빠질 정도로 그 틈이 넓고 깊지는 않았으나, 충분한 주의는 필요해 보였다.


사진에 보정을 잔뜩 줘봤습니다. ⓒ


바다 쪽으로 펼쳐진 경치는 마치 하얗고 평평한 사막 같았는데, 얼핏 보기에는 수십 킬로미터 건너편의 만 반대편까지 얼어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수평선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얼음으로 이루어진 드넓은 평야를 보는 것은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런 장대한 경치는 겨울이 아니면 못 본다. 겨울에 오기를 정말 잘 한 것 같다. 그리고 바다 쪽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것도 괜찮았는데, 평상 시라면 일부러 배를 타고 나와야만 볼 수 있는 경치를 걸어 나와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틀 재탕. 좀 더 밖으로 걸어가고 싶었지만 돌아가기 귀찮았다. ⓒ


누가 안 그래도 겨울이라서 추운데 왜 러시아에 가냐고 묻는다면, 이러한 경치를 보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새하얗게 얼어붙은 경치는 이런 곳과 이런 시기가 아니면 못 본다. 그리고 위도가 유사한 홋카이도의 겨울도 궁금해져서, 다음에 언젠가 겨울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한 다음에는 식사를 하려 다시 중심지로 향했다. 식사 후에는 기차를 탈 준비를 해야 했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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