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곡동 서작가 Oct 06. 2021

집 잃은 소년병의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마지막 장까지 읽은 다음, 책장을 덮고 다시 앞표지에 눈길을 주었다. 매끈한 표지 위에 알록달록 글자가 새겨져 있다. 왼쪽 위에 배치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과 오른쪽 아래에 배치된 ‘어느 소년병의 기억’이라는 부제 사이에 초록과 파랑, 핑크로 수놓인 ‘A Long Way Gone’이라는 원제는, 바라만 봐도 슬프고 아프다. 그 곳에도 분명 초록의 나무가, 푸른 바다가, 핑크빛의 생기가 있었을 텐데, 전쟁은 시커먼 잿더미와 피로 물든 땅 깊은 곳으로 아이를 끌고 갔다. 아이의 손에 총과 칼, 그리고 마약을 쥐여주고서.  

악몽 같은 현실을 살아낸 아이의 긴 한숨 같은 원제가 알록달록 수놓인 책을 펼치면 낯선 나라의 지도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에라 리온. 뉴스에서 어쩌다 스치듯 들어봤을 따름인 이름. 동네 어른들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독백을 암송하고, 힙합에 빠져 랩을 하고 춤을 추던 한 아이는 잠시 집을 떠나 다른 동네에 놀러 갔던 날 들이닥친 반군에 의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가족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아이는 많은 죽음과 죽임의 현장을 목도하고, 어느새 ‘정부군’의 이름으로 소년병이 되어 핏발 선 눈으로 죽음과 죽임의 현장에 가담한다. 의지할 데라곤 없었던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를 아이 손에 쥐어준 사람은 정부군 하사였고, 그는 고작 십대 초반에 불과한 아이들을 모아놓고는 ‘반군의 잔인무도함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가족에 대한 복수’로서 반군을 사살하기를 끊임없이 주문한다. 


적들을 떠올려라. 너희 부모님을 죽이고 너희 가족을 죽이고
너희에게 온갖 불행을 가져다준 반군 놈들을 떠올려. 



아이는 이 정부군 하사를 마치 아버지처럼 따랐지만, 사실 아이도 마음 깊숙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아무 상관 없다는 걸. 그 미친 살육의 현장은 어른들의 놀이였을 뿐이고, 아이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했을 뿐이다.


전쟁이라는 걸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에 무엇을 남길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1920년대에 태어나 일제시대와 6.25를 거쳐 두 남편을 연거푸 잃고 혼자 몸으로 아이 셋을 키워낸 나의 할머니는, 갓난 남자아이를 등에 업고 피난을 가다 아이가 죽은 줄도 모르고 한참을 업고 걸었다 했다. 나중에야 아이가 죽어 있음을 깨닫고 어느 강가에 묻어두고 돌아서야 했던 그 때를,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몇 해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물며 아직 어린 나이, 열두 살, 열세 살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소년병이 되어야 했다면 그 기억은 어떨까. 시커멓게 타버린 땅 위를 총칼을 들고 피범벅으로 뛰어다녀야 했던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나가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유니세프에 의해 소년병 신분에서 벗어나 재활 센터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아이는 한동안 수돗물을 틀 때마다 피가 철철 쏟아지는 것처럼 보여 힘들었다고 했다. 전쟁영화를 연이어 몇 편 보는 것만으로도 꿈에 전쟁 장면이 재현되어 힘들어본 적 있는 나여서, 아이의 머릿속에서, 눈 앞에서 끝없이 재생되었을 그 경험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쏘면 당신 어머니가 죽으리오, 나를 쏘지 않으면 당신 아버지가 죽으리라. 

 

전쟁의 한복판에 휩쓸려 들어가기 이전, 평화로웠던 어느 작은 마을에서는 해마다 동네 어르신이 아이들을 불러모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사냥꾼을 맞닥뜨린 원숭이는 사냥꾼이 들이대는 총구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자신을 쏘면 사냥꾼의 어머니가, 쏘지 않으면 사냥꾼의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너희가 사냥꾼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동네 어른의 물음에, 아이들은 난처해 어쩔줄 몰랐다. 하지만  한순간에 가족을 모두 잃고 소년병으로 살아야 했던 아이, 이스마엘은 책의 말미에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실 일곱 살 때 나는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 되는 답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나는 만약 내가 사냥꾼이라면 원숭이를 쏘겠다고 결론내렸다. 그래야 녀석이 더 이상 다른 사냥꾼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없을 테니까.”

지금도 어딘가에선 벌어지고 있는 일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3b



%23f




9정덕, 최현주, 외 7명




댓글 2개




공유 1회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하기










댓글 2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관이라는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