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간의 긴긴 연차를 끝내고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루에 열 시간 걷는 국토종주자였던 내가 하루에 열 시간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회사원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휴가를 갈 때마다 느낀다. 내 일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다만 구멍 나지 않게 도와줄 뿐이다.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인수인계서에는 디지털 먼지가 쌓여 있었다. 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고, 온라인 회의를 하는 평범한 일과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여정을 다시 이어가기까지 적잖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스페인 출장을 갔다. 업계 최대 규모 박람회 참가를 위해서였다. 통신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행사였으나 참가자 명단에 내가 포함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그래서 전혀 기대가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여러 리더들이 힘써주신 덕분에 정말로 가게 되었다. 여주에서 밤길을 걷는 와중에 일정을 묻는 전화를 받고 얼마나 설렜던지.
비록 가서 일을 해야 했지만 그 덕분에 평소였다면 해보지 못했을 경험을 실컷 할 수 있었다. 회사 안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보고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초봄의 바르셀로나는 정말이지 아름다웠고 음식은 먹는 것마다 맛있었다. 영영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첼로 연주회를 했다. 첼로를 배운 지가 일 년 하고도 삼 개월이 되었다. 뭐든 시작하면 일 년은 해봐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이 연주회는 첼로 연주자로서 달성한 첫 번째 마일스톤이었다. 바이올린 연주할 때 피아노 반주로도 함께했다. 실수투성이었지만 여러모로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달성했던 날.
풋살 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을 했다. 더 잘하고 싶은 초보자들끼리 모여서 만든 팀인데 세상에 준우승이라니. 우승한 팀보다 우리 팀이 더 기뻐했던 것 같다. 이런 멋진 팀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뛸 수 있다니 나는 참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3월. 국토종주길을 마저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18일간 매일같이 걷고 마지막 날에 몸살 나고 스페인 출장 가서 하루종일 서서 일하기까지, 체력이 동나서 회복하는 데 한참 걸렸다. 컨디션이 좀 올라온다 싶어서 바로 길을 나섰다. 조거팬츠를 집어 들었다가 그래도 종주를 함께했던 동료인데 두고 갈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려놓고 종주할 때 입었던 바지에 다리를 꿰어 넣었다.
2월 종주를 마칠 때는 이곳 정류장에 BTS 슈가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종주를 재개하러 오니 BTS 지민 사진이 걸려 있다. BTS 팬들이 좋아하는 정류장인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렸다, 일단 밥부터 야무지게 먹어주고 시작. 문 연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하며 눈앞에 나타난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서울에 들어오니 식당이 하도 많아서 뭘 먹을지 결정하는 데 고심이 필요하다. 여러 옵션과 조건을 고려해서 클래식 이즈 더 베스트, 쟈니덤플링으로 결정했다. 10년 전에 데이트하면서 가던 식당인데 아직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니 나만 이곳 만두를 맛있게 느끼는 게 아닌 모양이다. 역시나 후회 없는 선택.
세상에나 마상에나, 꽃이다. 길가에 꽃이 폈다. 국토종주를 하면서 꽃을 보는 날이 오네. 물론 부산에서 동백꽃을 보긴 했지만 그건 원래 겨울에 피는 꽃이니까. 예정에 없던 봄 종주를 하게 되며 새로운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부터 너무나도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카페가 근처에 있어서 지나치지 못하고 들렀다. 대구에서는 가고 싶었던 카페가 10km 떨어져 있어서 미련 없이 포기했는데, 서울은 역시나 밀도 높은 도시다. 이때까지 휴식이란 허허벌판 한가운데 먼지 쌓인 정자에서 취하는 것이었는데... 국토종주 하면서 핫플 카페에서 쉬는 날도 다 오는구만. 너도나도 최선을 다해 차려입고 오는 힙한 카페에서 츄리닝에 바람막이를 입고 혼자서 디저트를 조졌다. 마침 또 창가자리에 앉혀주셔서 멋진 뷰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왠지 뭐라도 상담하고 싶은 광고판
서울 길은 어나더 옵션이 많아서 즐겁다. 지금 당장 이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앞으로 3시간 동안 다른 방향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던 지방의 길들과는 달리 이 골목으로 빠져도 저 골목으로 빠져도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걸어도 걸어도 앙상한 회색 나뭇가지 가득한 장면이 반복되던 것과 달리, 길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어 구경하기에 재미있기도 하다.
반면에 단조롭다는 생각도 했다. 도심 한가운데의 공원에서 겪을 수 있는 일과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종류는 시골마을 한가운데 허허벌판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만날 수 있는 것에 비해 매우 한정적이다. 풀컬러 TV로 무한 재방송을 보는 것과 흑백 모니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정도의 차이랄까. 마주치는 사람과 교감할 가능성도 도시에서는 훨씬 낮으니 말이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나름 얇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더웠다. 그나마 바람이 잘 불어주어서 걸을만했다. 한강 근처 공원에 진입하니 유모차 탄 아기부터 운동기구를 백분 활용하고 있는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양평 진입 후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청년과 학생들이 많이 보여서 새삼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마포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넘어간다.
강남으로 걸었던 10년 전 눈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63 빌딩을 보고 '와 이게 63빌딩이구나!'했던 기억이 있다. 강북으로 걷는 이번 종주에서는 63빌딩을 먼 곳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63빌딩이 제일 높은 건물이 아니니, 아쉽지는 않다.
한강을 바라보며 잠시 앉아서 쉬어 주었다. 한강공원은 꽃놀이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진을 안 찍고 넘어가기엔 아쉬울 정도로 온 세상이 꽃 천지였다. 사진을 부탁할 사람이 있나 주변을 한참 둘러보았는데 대부분이 데이트 온 커플이나 아기 데려온 가족이었다.
와중에 내 눈에 띈 할아버지 한 분. 테니스채 손잡이가 삐죽 튀어나온 배낭을 메고 손을 있는 힘껏 뻗어 꽃나무와 셀카를 찍고 계셨다. 냉큼 달려가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고맙다며 핸드폰을 넘겨주신다. 혼신의 힘을 다해 찍어드리고 사진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이 사진을 건졌다... 아니 사진을 왜 이렇게 잘 찍으십니까. 기대도 안 했는데 인생사진을 건져버렸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이제는 기억이 안 나는 한강공원의 테니스 플레이어 아버님 멋진 사진을 건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사진도 하나 챙겼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출발. 매화 향기가 가득해서 참 좋았다. 봄에 걸으면 이런 맛이 있구나.
10년 전 한강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는 싶은데 남에게 부탁하기에는 너무나도 소심했던 나. 삼각대를 설치는 했는데 이것조차 부끄러워서 쭈뼛쭈뼛 걸어가서 찍었던 기억이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마이웨이 인간이 될 줄이야. 삼각대를 설치해 놓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었다.
그리고 내 뒤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0년 전이라면 절대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짓이라 스스로가 많이 변했음을 새삼 실감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지나쳐 간다. 어렸을 때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이 하늘색 돔 천장을 보고 엄마에게 저게 뭐냐고 물으니 '니잘났다 나잘났다 하는 곳이야' 해서 동생과 자지러지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저 말을 이해하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고 단어의 조합 자체가 재미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랜덤한 단어들이 웃겼다. '코끼리 밥통' 이라던가.
10년 전 종주 기록을 보니 이 즈음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고 되어 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을 텐데, 이렇게나 먹을 게 많은 동네에서 굳이 컵라면을 먹다니... 그때의 나 참으로 도시인이었구나. 종주를 하면서 '맛있는 건 있을 때 먹자' 정신을 체득하게 되었다.
여의도 인증도 완료! 날이 좋아서인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지나갔다. 2월이었다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간 고독한 종주를 했던 것도 어쩌면 겨울이어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을 지나가다가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낙서가 있어서 찍어보았다. 한강에서 요트 타기 내 로망이었는데... 타지 말아야겠네...
마른풀로 뒤덮인 언덕 위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렸다. 공연은 아니고 버스킹인 것 같았다. 이 좋은 날 색소폰 버스킹이라니 운치 끝장난다고 생각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니 내 사진 건지기가 어렵다. 강가에 후미진 곳이 있길래 내려가보니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한강 구간 기념사진을 하나 찍었다. 멋지게 나왔지만 찍는 동안은 뾰족한 바위 위에서 균형 잡느라고 엉덩이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음.
와중에 아저씨 한 분이 빨간색과 하얀색이 섞인 캡모자, 까만색 재킷,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셔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지나갔는데 <포켓몬스터> 등장인물인 지우의 40년 후 모습 같아서 웃음 참느라 고생했다.
뱀 보고 싶다. 하지만 못 봤다. 시골 살 때 누가 불러서 본 것 외엔 야생뱀을 본 역사가 없다. 한국 뱀들은 보통 나무, 풀과 색이 비슷해서 내 눈썰미로 발견하기는 어려울 듯.
스무 살 종주할 때였다면 알아채지도 못했을 이 장면.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런 장비를 유럽 통신사들에게 판매하는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지루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나만 아는 모먼트가 닥쳐올 때마다 남몰래 즐거워하곤 한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출처를 모를 삼겹살 냄새가 자꾸만 나서 괴로웠다.
해가 슬슬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해넘이 후의 암흑이 두렵지 않지만서도. 지도를 열었다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미국식 파이 가게가 근처에 있음을 알게 됐다. 6시에 닫으니 서두르면 한 조각 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길의 끝에 파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스스로의 단점을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다 (?)
놀러 나온 사람들이 가득한 한강을 벗어나 집이 있고 식당이 있는 평범한 동네로 걸어 들어왔다. 서둘러 걸은 덕분에 파이집 방문 가능성이 안정권에 들어왔다. 닫을 채비를 하는 중이라 컵케이크와 파이를 포장해서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못 걷기도 했고, 체력도 아직 남았지만 아쉬운 대로 가양역에서 이날의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하루 만에 완주하기 어려운 거리이기도 하고, 이 동네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었던 일 첫 번째. 평소 가보고 싶었으나 위치가 애매해서 도전하지 못했던 디저트 집 들르기. 탐스럽게 생긴 예쁜 사과 케이크를 사 먹었다. 무스류를 엄청 좋아하진 않는데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뜻밖에 사과향이 참 향긋했다.
하고 싶었던 일 두 번째. 등촌동에서 등촌칼국수 먹기. 회사 앞 등촌칼국수가 내 소울푸드나 마찬가지인지라 등촌동 온 김에 그 원조라는 버섯칼국수를 먹어보고 싶었다. 1인도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족 모임이 있어서 저녁으로 뷔페를 먹고 왔음에도 나를 위해 달려와서 칼국수를 함께 먹어주는 친구가 있는 나, 정말이지 행운아예요. 고기가 안 들어가서 생각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국토종주 하는 중에 먹킷리스트를 이렇게 많이 지울 수 있다니, 역시 서울에는 맛있는 게 많다.
마지막 날을 위해 체력을 아껴둔다 생각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과연 하루를 더 걸으면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완주는 어떤 기분 어떤 마음으로 하게 될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가는 전철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