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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Nov 21. 2024

서울아, 내가 왔다

국토종주 17일 차, 남양주-서울 구간


입사 10주년이 되는 날. 달리 기념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마음속으로 셀프 축하를 해주기로 했다. 너무 힘들어서 '딱 3년만 버티자, 이력서에 쓰려면 최소 3년은 일해야 한다' 했던 신입사원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 회사를 벌써 10년을 다녔다니. 장하다 나 자신.


출근까지 남은 날은 이틀. 남은 거리는 약 90km. 하루에 45km를 걸으며 기한 내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알람을 제때 듣고 새벽에 눈을 뜨기는 했다. 그런데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콧물이 나고 목이 아팠다. 집에 와서 긴장이 풀린 탓일까. 누워서 낑낑 앓다가 느지막이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깨끗이 세탁된 양말과 속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았다.



국토종주 17일 차, 멘소래담 앵꼬 나다. 약을 끝까지 다 써본 건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그간 나와 함께 아픈 근육들을 부여잡고 걸어줘서 고마웠어, 멘소래담아...



날이 좀 따뜻해졌나 싶어 바람막이를 입고 나왔다가 찬 공기에 도로 집으로 들어가 패딩으로 갈아입었다. 감기 기운이 있으니 나중에 벗더라도 따뜻하게 입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한남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전철로 갈아탔다. 버스에 사람이 많다했는데 어디에선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들이 가는 사람이 많아서 버스 다섯 번 보내고 이제야 탔어." 한 번에 탄 나는 아주 행운아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남역에서 출발한 전철이 한강을 따라 달렸다. 이제 여기를 내 두 발로 걸어서 돌아와야 하는구나.



전날 여정을 마무리했던 신원역으로 돌아왔다. 역에 내리고서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화장실에서 머뭇거렸다. 충주에서 넘어져 다친 손바닥의 딱지를 떼며 시간을 버리다가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트래킹 어플을 켜고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 이상 숙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배낭을 집에 두고 삼각대와 배터리 정도만 챙겨 왔는데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없다 보니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10년 전 종주할 때는 터널이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다. 긴 터널을 걸을 때는 여기 갇히면 영영 나갈 수 없겠지 싶은 두려움이 일기도 하는데, 밤길을 걸을 때처럼 상상력을 차단하면 침착하게 걸을 수 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던지라 배가 고팠다. 관광지라 먹을 데가 많을 줄 알았는데 1인분을 파는 식당이 없어 검색을 오래 해야 했다. 점심특선으로 육개장칼국수를 파는 집이 있어서 마음을 졸이며 들어와 주문을 했는데 다행히 1인 식사도 가능했다. 코 찔찔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맞은편 한과 집을 구경할 겸 들렀다가 처음 보는 과자가 있어 디저트까지 마련해 나왔다. 산자라는 한과인데 유과보다 찐득하다.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같이 산 약과는 맛있었다. 어렸을 땐 약과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입에도 안 댔는데 나이 먹고 나니 이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몸이 안 좋을 때 날씨가 좋으면 아이러니한 기분이 된다. 날씨가 좋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은데, 내 몸은 천근만근. 



작년 10월 처음으로 로드바이크를 빌려 타고 라이딩을 하며 지나갔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빌린 자전거 브레이크가 녹슬었던지라 잔뜩 긴장하고 타서 풍경을 즐기지 못했는데, 한걸음 한걸음 정성 들여 걸으며 아름다운 강과 산과 날씨를 원 없이 구경했다.


표정에서 컨디션이 보인다


남양주시에 진입했다. 과연 오늘 서울에 닿을 수 있을까?



고니들이 짝짓기를 하는지 떼거지로 모여 울고 있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나가는 사람 모두 발걸음을 세우고 한 번씩 구경하고 감.



익숙한 구간에 진입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알게 된 계기였던 능내역 근처 길이다. 양평-남양주 구간은 풍경을 보기 좋게 길이 잘 닦여 있고 보행자도로와 상행/하행 자전거도로가 잘 나뉘어 있어서 걷기가 참 좋다.



드디어 능내역 도착! 역 앞에서 핫도그 같은 걸 팔았던 기억이 있어서 도착하면 사 먹을까 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만 한번 들렀다.



인증센터 앞에서 찍었던 위풍당당(?)한 사진도 한번 재현해 주고.



10년 전 종주 사진 중에서도 좋아하는 사진이라 꼭 재현하고 싶었다. 에 근데 왜 이렇게 잘 나왔지. 평소에 셀카 잘 안 찍는데, 뜻밖에 레전드 셀카 탄생.



마을버스를 개조해서 자전거 대여소로 만들었다. 신박한 업사이클링이다.



5시 반쯤 한강에 진입했다. 따라 걸어야 하는 마지막 강이다. 해가 지기 시작해서 사진을 몇 장 찍어 봤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올렸더니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일하는 친구가 위치를 바로 맞춰서 신기했다!



길을 따라서 갬성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도 힘든 그런 곳들. 시간이 많았다면 들러볼 수 있었겠지만 늦게 출발한 탓에 여유가 많지 않았다. 파블로바나 수플레팬케이크를 파는 곳이 있다면 짬을 내 보려고 했는데 달리 없어 보였다.


와중에 작년 10월 라이딩 중에 들렀던 카페가 저 멀리 보여서 반가웠다. 모두가 한껏 차려입고 와서 예쁜 사진을 찍는 와중에, 백패킹을 막 마치고 열심히 페달 밟아온 터라 추레한 차림새로 혼자 파스타와 망고주스를 시켜 먹었던 나.



이 구간에서 과자를 까먹었던 모양이다. 챙겨 온 과자가 없어서 그냥 앉아서 쉬었다. 이 날따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냥 텅 빈 머리와 함께 걸었다. 집에 들르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멍하기만 했다. 어쩌면 몸도 그래서 아프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익은 장면. 팔당역이 머지않았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라멘으로 잠정 결정했는데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쿨하게 놓아주기로 했다.



대신 바로 앞 만두집에서 만두 포장하기. 길건너에는 인스타 감성 도넛 집이, 옆에는 레트로한 도나스 집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 무슨 재미난 대비란 말인가.



걸어 다니면서 빵 먹는 걸 길빵이라고 하던데, 길빵 대신 길만두. 앉아서 쉴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몸이 아주 힘든 것도 아니라 걸으면서 먹기로 했다. 밥을 먹고 바로 운동을 하면 몸이 소화모드를 켤지 운동 모드를 켤지 헷갈려한다던데 걸으면서 먹으면 어떨까? 뇌에 과부하 오려나? 너무 푹 익었는지 자꾸만 터져서 곤란했지만 맛 자체는 만두 덕후인 나의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괜찮았다.



10년 전 종주할 당시에는 사람들 눈치를 엄청 보는 성격이었던지라 길에서 삼각대 설치해서 사진을 찍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동인구 많은 이곳에서 이 사진을 남겼던 이유는 내 이름이 '날개'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나에게는 사람들 시선 따위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기에 당당하게 척척 걸어가서 셀프 촬영을 했다. 10년 새 발받침이 사라져서 머리에서 날개가 돋아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노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한참을 감탄하고 전율했다. 종주를 하며 매일같이 해넘이를 봐 왔는데 왜 이날 처음으로 감동을 한 걸까? 유독 아름다운 노을이었나?


어쩌면 이때까지는 석양이 곧 재앙의 징조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고 나면 핸드폰 플래시에 기대 암흑 속을 뚫고 잘 곳을 찾아야 하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경기도를 걷고 있다. 해가 져도 빛이 가득한 곳. 어디서든 잘 수 있고 어디서든 우리 집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잡아탈 수 있는 도시. 나는 서울을 향해 간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첫 다리를 건너본다. 해진 뒤의 세상이 이렇게 밝을 수가 있다니. 다가오는 밤이 이때까지처럼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기대가 된다. 어둠은 생각보다 큰 제약이다. 군데군데 조명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팔다리에 무게추를 단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어두우면 시야가 좁아지니 다치지 않고 위험에 처하지 않는 데에 낮보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도시를 걷게 되니까. 어둠이여 오라.



엔지니어로 일했을 당시 오가며 일을 했던 하남 스타필드를 스쳐갔다. 내가 설치한 인프라를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했을 때 느껴지던 그 자부심이 여전히 생생하다.



카카오바이크다! 한때는 가로수나 비둘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 일상에 흩뿌려져 있던 이 존재, 오랜만에 마주하니 어찌나 반갑던지. 정말 수도권에 진입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하남 진입. 표지판이 없어서 하남이라는 글씨가 있는 구조물들 사진을 모아보았다.



사는 곳이 호세권이 아닌지라 호떡만 보이면 부지런히 사 먹는 사람. 가끔 호떡트럭이 오곤 하는데 기름 없이 부치는 호떡이라 취향이 아니다. 자고로 호떡은 두툼하게 빚어서 기름에 자글자글 튀겨줘야 하거든요.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주문하고 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서 '아니 무슨 호떡 하나 부치는 게 이렇게 오래 걸려!'하고 부아가 치밀었는데 받아 든 호떡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그 바삭하고 폭신한 식감에 모든 것을 다 용서하게 되었다.



제가 서울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순간 함께 보실 분. 드디어 서울이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걷고 또 걸은 지 17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정말 완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와 친구들이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했을 때처럼, 서울 입성의 순간이 제법 화려하리라고 생각했던 예상이 멋지게 빗나갔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은 아주 어두컴컴하고 으슥한 곳에 있었다. 누가 잡아가지 않을까 살짝 쫄리는 마음으로 무사통과.



뚝섬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리저리 계산을 돌려 봐도 막차시간 전에 뚝섬에 도착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숙박을 할까 하고 검색해 보니 뚝섬 근처 제일 저렴한 방이 하룻밤에 13만 원. 이때까지 거쳐왔던 모텔들은 지방 가격이 적용된 거였구나. 안마의자가 있는 VIP룸을 5만 원 주고 묵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서울 물가'에 놀랐다.


그리하야 막차 시간 전에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역이었던 천호에서 17일 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멀었고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고.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줄이야. 완주보다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것, 그리고 매 순간 주어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길을 고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일단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어 보니 발목보호대 뒤꿈치에 구멍이 나 있었다. 새 운동화가 닳아서 구멍이 나고, 멘소래담 한 통을 다 쓰게 하고, 발목보호대까지 구멍 날 정도로 오래 걸어야 하는 일, 국토종주. 그 일을 벌써 17일째 해내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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