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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Feb 06. 2024

우리나라 기독교미술의 효시

 한국의 기독교 미술에 있어서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의 전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우리나라의 천주교 수용은 17세기 초부터 청나라에 왕래 한 사신 일행을 통해 먼저 학문으로 소개되었고,1세기 반 이상에 걸친 학문적 연구와 접촉을 통해 이어 오다가,이승훈8)이 북경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선사받은 성물 등을 갖고 귀국한 18세기 후반부터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교의 한 방침으로 성화 등을 제작하며 기독교 미술이라는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9)


 이런 가운데 서양화 양식의 그림이 들어왔으며, 이 무렵부터 한국 근대 미술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한국근대 미술사가 시작될 무렵 서양화 양식의 도 입은 역시 천주교 성화상과 상본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 서 처음으로 서양화 화법을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서양화를 그린 사람이 이희영 (李喜英)루가(1756-1801년)이다.10) 


「조선왕조 순조실록」에는 이희영 루가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이희영은 호가 추찬이며, 은성사람으로 순조 원년 (1801년)신유년에 사학죄인으로 지목되어 옥사했다.”그리고 다른 사람이 따르지 못할 만큼 글씨와 그림의 재주가 뛰어났다고 평하고 있다. 이로써 그가 성화를 그리다 순교한 사람임을 추정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최초의 서양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이희영의 그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의 성화는 박해 중에 숨 겨지고 없어졌으며, 현재 남아있는 그의 유일한 작품으로 〈견도(犬圖)〉〈도판 2〉11)가 있을 뿐이다.12)


 그 밖의 이희영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정약종 초상〉〈도판 3〉13)이 있다. 


 한편 1882년 5월에 맺어진 한미수호조약(韓美修好條約)을 통해 천주교가 전래 되었듯이, 1886년의 한불수호조약(韓佛修好條約)에는 종교에 관한 규정은 없었지만 우리나라에 개신교 전래의 길을 터놓았다. 개신교는 천주교보다 꼭 100년 뒤 늦게 한국에 전래 되었다. 그런데 천주교 유입과 마찬가지로 처음 기독교를 전하 고 성경을 들여와 교회를 세운 것은 한국인이었다. 선교사들이 교회를 창설했음은 사실이나, 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만주와 일본에서 우리말로 된 성서가 나왔고,14) 그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에 반입 되어 성서를 읽은 용기 있는 전도인들의 활약에 의해 기독교의 터가 벌써 몇 해 전에 마련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개신교 초기 선교 과정에서 나타난 미술의 흔적은 1882년 존 로스(JohnRoss)15)목사에 의하여 만들어진 책 뒷부분에 한국풍속 몇 점을 그려 넣었다는 기록 외에는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러한 전도의 방편으로 교리의 해설을 위한 삽화가 중요한 몫을 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서구 미술의 역사에서도 1523년에 마틴 루터에 의하여 번역된 신약 성경 삽화를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성경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미술 의 새로운 기법과 조형성이 전파되었듯이, 한국에서도 삽화는 중요한 기능을 담 당하였다. 삽화는 문화적 조건이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들려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서양화의 기법을 전달하였던 것이다. 

 1817년경에 한국 내에서는 선교를 위하여 여러 책자가 발행되는 사례가 있었다. 책자 발행은 주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국인 서상륜,이응찬,김진기,백홍준 등과 함께 성경 번역에 힘을 쏟았던 존 로스(JohnRoss)목사는 1882년에 자신이 만든 책의 뒷부분에 한국 풍속을 설명 하면서 몇 점의 삽화를 그려 넣었던 것이다. 

 1884년을 시작으로 외국 선교사들의 한국 내한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초기의 선교사 게일(J.SGale)도 1884년 「텬로 력뎡(天路歷程)」16)〈도판 4〉,〈도판 5〉을 번역 출간할 때 풍속화가인 김준근 을 통하여 갓 쓴 남자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부녀들의 모습을 〈조선풍속도〉〈도판 6〉,〈도판 7〉,〈도판 8〉,〈도판 9〉,〈도판 10〉,〈도판 11〉17)에 그리게 하여 교리의 내용을 설명하는 삽화를 그려 넣었다.

 




 한복을 입은 예수의 모습이 나오는 이 삽화는 한국 기독교 미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18) 

이밖에도 전도를 목적으로 한 문서에 삽화도 성경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 수 그려졌다.〈십계요해(1911년)〉〈도판 12〉는 전도사 오기선이 하나님이 모 세에게 내린 인간이 마땅히 행할 바와 행치 말아야 할 열 가지 계명을 한글로 옮긴 편술서이다. 또한 1916년에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목사 중 한 사람인 길선 주(吉善宙)목사가 쓴 기독교 전도문서인 〈만사셩취(萬事成就)〉〈도판 13〉에서 도 관련주제 28항목 가운데 10개의 관련 삽도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게으름을 피하여 부지런히 신앙생활에 임할것을 권고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경교미술과 기독교 초기 전도 목적으로 쓰여 진 삽화를 통하여 기독교 미술의 시초와 형성 배경을 알아 볼 수 있다.






Reference

8)세례명은 베드로이며 호는 만천(蔓川),강원도 평창 출생의 조선 천주교 사상 최초의 영세자(領 洗者).1780년(정조 4)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심하다 천주교인 이벽(李蘗)을 만나 천주교에 심취하였다.

사제대행권자로서 주일 미사와 영세를 행하며 전도했다.두 번의 배교(背敎)와 복교(復敎)를 반복하며 결국은 순교하였다. 1866년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在誼)가 순교한데 이어 1871년에는 증손 연구(蓮龜),균구(筠龜가 순교함으로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낸 집안이 되었다. 

 9)서자희 〈한국 기독교 미술의 考察〉 p.7.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91.서울 

10)김길수 〈향기가 있는 삶〉《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희영 루가-》 경향잡지 12월호.p.6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99

 11)한국에서 서양화법으로 그려진 초기의 작품이다. 서양화의 전래는 17세기부터이지만, 서양화법 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 이다. 처음에는 서양화의 음영법(陰影法)을 이용하여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희영 때에 와서 완전한 서양화가 그려졌다. 이희영은 예수상을 그린 사실이 발각되어 사형당한 천주교 신자로, 박해과정에서 천주교 성화를 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 우측에 이희영의 약력과 이 그림이 서양화법의 효시임이 설명되어 있고, 좌측에는 이희영이 천주교 신앙으로 인하여 순교한 내용이 기술되어있다.  12)김길수 〈향기가 있는 삶〉《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희영 루가-》 경향잡지 12월호.p.7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99  

13)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천주교 순교자인 정약종(丁若鍾,1760-1801년)의 초상화이다. 초기 천주 교인의 유일한 초상화로,같은 시대 천주교인이던 이희영(李喜英,1756-1801년)의 작품으로 짐 작된다.정약종은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학자라 할 수 있다.정 약종은 〈주교요지主敎要旨〉라는 한글교리서를 저술하여 초기 조선 천주교회의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천주교 신앙 연구 및 포교에 힘쓰다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때에 순교하였다.  

14) 韓國基督敎史硏究會 편 《韓國 基督敎의 歷史 Ⅰ(기독교와 한국 현대미술)》敎史硏究會 pp.146-152,162-166.基督敎社.1989  

15)우리나라에 최초로 성서를 전한 목사.

16)영국인 존 버니언(JohnBunyan,1628-1688)의 종교적 우의소설인 《ThePilgrim’sProgress》 을 조선 후기이 1895년 J.S게일 목사가 한글로 번역하고 김준근(金俊根)이 삽화를 그린 것이 다.천로역정의 내용을 조선의 풍습과 문화에 맞춰 기술하였다.국문으로 번역된 최초의 작품이 며 한글 신문학의 모체가 되었다.풍속화가인 김준근의 삽화는 기독교 미술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원근법을 사용하였고 등장인물이 한복과 갓을 쓰고 있으며 천사의 모습이 한국 고전의 선녀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 삽화는 김준근이 판화를 그려 상하 2책으로 원산에 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이는 근대의 첫 번역소설이다.특히 일부 판화에서는 원근법을 사용 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도 한복과 갓을 쓰고 있으며,천사의 모습은 한국 고전의 선녀를 연 상케 한다.  

17)19세기말 조선의 풍속을 담은 화첩(畵帖)으로 김준근(金俊根)에 의해 그려졌다.그는 주로 개 항장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풍속화를 그렸으며,개화기 조선의 풍속을 담은 약 1000여점의 풍 속화를 남겼다.최근 조사에 의하면 독일,러시아 등 유럽지역에 채색화(彩色畵)를 비롯한 상당 량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기의 화첩은 모두 100폭으로 된 수묵화로 일상생 활,세시풍속,전통의례 등 장면마다 직접 제목을 달아 당시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민경배 저 《한국기독교회사》 pp.168-169.연세대학교출판부.2000.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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