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Apr 18. 2024

건강한 다문화사회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블루가 따뜻한 색일 수 있을까?


 본인에게 불편하다고 느끼는 유무, 개인에게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치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나에게 불편하지 않으면 굳이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나는 다문화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있고, 여러 문화권의 학생들과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관대하다고 생각을 해 왔었다.  


 미국에서 동성애 커플을 너무 많이 봤었는데, 그곳은 동성애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트렌드적인 느낌까지 있었다. 트렌드에 맞는 백인 남자 둘이 다니는 게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오히려 남녀 커플이 구세대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또한 그 사람이 세련된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인종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상하게 한국에서 보는 동성애 커플은 익숙해지지가 않는 면이 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이 사귀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법적인 결혼을 인정하는 일까지는 불편하고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나는 아이들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런 편견을 깨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부모가 둘 다 여자 아니면 남자다? 하는 생각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변화에 적응을 하는 일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피로가 쌓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편하고 익숙한 대로 살고자 하는 면이 강하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굳이 바꾸고 싶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TV토론회에서 “저는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 이것이 많은 동성애자들을 분노하게 했다고 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개인 취향이지만 사실 이것은 “나는 장애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소수자들을 내가 싫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싫고 좋고 보다 그들을 인정하도록 생각의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한 부분 같다. 내 추측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이가 많고 옛날 사람이라 아직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젊은 사람들 보다는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다. 

 

 “다문화아동”이라는 단어는 왜곡된 한국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 한다. 나는 다문화 협회에서 다문화아동들을 만나고 있는데, 실제로 그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인다. 물론 아이들을 부를 때 그런 단어를 쓰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끼리 회의를 할 때 그런 단어가 나온다. 한국배경의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다문화 아동들과 학습차이나 발음에서도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 아동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럼 그 아이들을 지칭할 때 뭐라고 해야 할지 아직 대안이 생각나지 않는다. 순수하게 아이들 이름을 불러 주는 방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문화교육에 대한 시도와 노력이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단계인데 이때 이런 것들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는 좀 더 발전된 한국의 다문화 교육이 정착될 것이라 바라본다.     

 

 나는 농학교의 강사로 나가고 있다. 이번주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는데, 주로 농아청소년들이지만, 여러 건강상의 이유로 말을 못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번에 특별히 몸이 많이 불편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혼자 교실을 찾아 올 수가 없어 경비아저씨가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책상에 앉자 가방에서 곽 티슈와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놓더니 2초에 한 번씩 목에서 나오는 이물질을 휴지에 뱉어 내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튜브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성장이 어려워 다리는 여성 성인의 팔뚝 굵기였고 몸이 작았다. 학교에 온다는 자체만으로 대단해 보였다. 미술시간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단순한 스티커 떼서 붙이는 작업, 색칠하기 정도의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는작업 활동만 해도 많은 걸 하는 것이었다.

 학교가 특수학교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1:1로 붙어서 지도해 주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가능하지만, 건강한 일반 사람들이 다니는 공공장소에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이들을 위한 사회의 도움이나 배려, 인식이 

우리 사회의 성장을 이루고 인간적인 사회가 되는 것일 것이다.      


 끝으로 인간다움, 인간을 위한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인권을 갖고 있고, 생명체고 로봇이 아니라서 다양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있지만 병이 나서 아플 수도 있고 늙으면 다 아프다. 사람끼리 서로 좋아하고 미워한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또한 환경과 지역에 따라 사람의 모양은 다 다르다. 

그래서 질서는 필수다. 하지만 그 질서 가 보호막이 되어 인간의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씩 제도와 정책, 우리 생각의 다양성과 유연성이 성장한다면 이 사회가 좀 더 건강한 다문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ference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창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