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교실 이데아의 가사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도 외칠 수 없었던 그게 답인 것인마냥 끌려 다니던 학생들은 서태지의 교실이데아의 가사가 죄를 짓는 것만 같은, 그렇지만 극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런 8~90년대의 초중고 학교를 다니고, 2000년대 초반, Be The Reds를 외치던 그 시절, 대학에 가면 모든 게 끝난 것 마냥, 다 이룬 것 마냥 나는 의미없이 놀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1년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4학년이 되자 그래도 자격증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처음으로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색채연구소에 들어가게 된 과정도 좀 특이하다. 무조건 실행에 옮기고 보는 나의 성향이 이때에도 있었던 것 같다. 막연히 색채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색채연구소는 그때만 해도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큰 기업이 아니기에 공채로 사람을 뽑거나, 자주 직원들을 뽑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색채연구소의 홈페이지를 찾았고, 마침 홈페이지에서 이력서를 넣는 게시판을 발견하곤 그곳에 무조건 내 이력서를 저장 해 놓았다. 한동수 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나는 색채연구소에서 일 할 수 있었다.
후에 나는 미국으로 가 약 7년간 한국계 이민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사업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그 때의 경험은 나에게 다문화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고, 다문화교육과 다문화상담을 전공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국립서울농학교에서 미술치료사로 일하면서 미술치료와 교육의 융합적인 방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술과 심리를 아동청소년들에게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적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농학교 학생들에게는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감각의 자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취약한 듣기, 말하기와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예민하게 발달된 시각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각적인 매체들의 활용 방안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2002년, 미국과 한국의 축구경기가 열리던 날 나는 Be The Reds가 적힌 빨간색 티를 사서, 흰 반바지에 받쳐 입고 시청에 앉아서 응원했다. 비가 정말 많이 내렸는데, 빨간색 싸구려 티는 물이 빠져 내 흰 반바지를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그것이 나의 20대 초의 가장 강렬했던 색의 기억이고, 강렬했던 2002년의 기억처럼 밀레니엄 시대를 맞았다.
나는 2000년대 가장 찬란했던 20대에, 색과 이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