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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민 Jul 23. 2019

초등학교 3학년 철수에게서 배운 것

아이들은


“오늘은 해피데이니까 모두 줄넘기 들고 공터로 나가세요!” 매주 수요일은 지역아동센터 해피데이다. 해피데이에는 센터에서 5분 거리 공터로 나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활동을 하루 종일 한다. 빈 공터에는 녹슨 철봉이 두어 개 꽂혀 있었고 외벽 페인트칠은 벗겨진 지 오래였다. 들이마시는 숨마저 차가운 11월 겨울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자유를 만끽했지만 탁 트인 그곳에서 아이들을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았다. 교육봉사를 나가기 시작한 첫날부터 낯선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쳤다.


아이들에게도 내가 낯설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빠삭했다. 필요한 봉사시간만 짧게 채우고 사라지는 봉사자들을 숱하게 본 것이다. 낯선 봉사자에게, 아이들은 쉽게 다가서지 않았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멀뚱히 서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다가왔다.


“선생님이 나 줄넘기 봐줘요.” 초등학교 3학년인 철수(가명)였다. 혼자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준 철수가 고마웠다.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어린이용 줄넘기가 짧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뛰어넘으면서 시범도 보였다. 하지만 철수는 양손에 잡은 줄넘기를 바닥을 때렸다가, 줄 뒤에서 잠시 멈칫했다가, 두발로 쾅! 제자리 뛰기를 반복했다.


줄넘기가 잘 안되자 철수는 줄넘기를 허리에 묶었다. 그리고 어제 책에서 본 오징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남쪽 바다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대왕 오징어가 산대요. 몸길이는 4미터가 넘고 수명은 10년이 넘는대요.” 철수는 대왕 오징어가 주로 잡아먹는 물고기 종류와 대왕 오징어의 위험성(사람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등 책에서 본 내용을 줄줄 읊었다. 거의 백과사전이었다.


철수는 끊임없이 말했다. 졸졸 따라다니며 쉬지 않고 재잘대는 철수의 입이 귀여웠다. 결국엔 가르치라는 줄넘기는 내팽개치고 철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줄넘기 안 가르치고 뭐하는 것이냐'는 눈초리 원장 선생님 외면했다. 철수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싶었다. “대왕 오징어 말고 대왕 문어는 없어?” 유치한 질문도 했다. 그런데도 철수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그날 피라냐의 서식지와 교배 시기, 트리케라톱스의 뼈는 모두 몇 조각인지까지 철수에게 배웠다.


한겨울이라 해가 금방 졌다. 공터에서 센터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철수가 다리에 달라붙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나는 그 말이 센터로 가지 말라는 말인지 센터를 영영 떠나지 말라는 말인지 헷갈렸다. “선생님 어디 안가. 철수랑 같이 센터로 돌아갈 거야.” 그제야 철수가 손을 풀었다.  


“선생님 손 따뜻해요.” 철수는 갑자기 내 두 손을 제 볼로 가져갔다. 하루 종일 바깥에 있어서 손은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상태였다. 차가운 손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 거짓말이나 억지는 분명 아니었다. 순수한 아이의 진심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진심과 거짓을 잘 구분해냈다. 진심으로 대한 만큼 아이들도 진심을 보여줬다. 사실 진심이란 말이 거창하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랄 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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