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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26. 2024

삼성은 TSMC를 넘어설 수 있을까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대만의 파운드리 공략

"TSMC? 내가 전자업계 출입하면서 처음 들어본 회사 이름인데 거기가 어딘데?"

대략 10년 전 일이다. 당시 삼성전자 등 전자업계를 처음 출입하던 나는 외신을 살펴보다가 대만에 TSMC라는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 TSMC란 이름을 말했을 때 같이 출입하던 기자 선배도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TSMC라는 회사는 자체 브랜드가 없는 수탁 생산 업체이고, 이런 회사를 파운드리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 주요 정보업체들이 발표하는 반도체 기업 순위에도 TSMC는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TSMC는 생산은 하지만 모든 생산이 다 외주인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 순위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파운드리 시장 자체가 10년 전까지도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었고, 국내에선 메모리에 가려 언론이 관심도 거의 가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파운드리를 하는 기업은 과거 동부하이텍(현 DB하이텍)과 하이닉스 계열이다 독립한 매그나칩 등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겐 생소했다. 이들 기업이 만드는 제품도 미세공정 수준을 따지기 어려운 나노미터가 아닌 마이크로 단위 아날로그 반도체가 중심이었다.

사실 현시점에서 '삼성은 TSMC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불과 10년 전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전자업계를 꽤 오래 출입했던 기자 선배조차 생전 처음 들어봤다고 하던 대만 기업이던 TSMC가 이젠 전 국민이 다 알고 우리가 넘어서야 할 목표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사실 2010년대까지 한국인에게 반도체는 곧 '메모리'를 의미했다. 시스템반도체는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비(非) 메모리로 불리며 관심 밖이었다.

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1·2위를 다투고 있는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인 파운드리와 인텔이 주도하고 있는 CPU(중앙처리장치) 등 시스템반도체까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시리즈로 유명한 퀄컴은 시스템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팹리스다. 전체 반도체 산업을 놓고 볼 때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비중은 ‘3대 7’ 정도로 비메모리의 시장 규모가 두 배 이상 크다.

반도체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선 비메모리 분야의 육성이 필수적이지만 우리나라는 굳이 비메모리를 키울 필요가 없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만으로도 2017~2018년 슈퍼사이클 시기엔 인텔을 넘어 세계 1위 반도체기업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의 파운드리까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팹리스도 파운드리 역량이 뒷받침이 돼야 성장이 가능한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시장이 자라날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 반도체는 곧 메모리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엔비디아나 퀄컴 같은 팹리스가 성장할 가능성은 낮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보면 국내에서도 비메모리 분야를 키우자는 얘기는 이미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반도체 업체들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오긴 했다. 현대그룹과 LG그룹의 반도체 빅딜 과정에서도 각각 생산과 설계를 맡아 분업하는 방식으로 파운드리를 출범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실현되진 않았다.

2000년 3월 당시 산업자원부는 비메모리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파운드리와 팹리스 설립을 지원하겠다며 2002년까지 약 3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비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2010년까지 6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현실화되지 못했다.

과거 SK하이닉스에서 분리된 이후 매그나칩은 파운드리 분야 세계 8위까지 오르며 201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했지만, 그때가 최정점이었다. 또 다른 파운드리인 DB하이텍도 세계 시장 점유율이 1% 안팎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 설계 회사인 팹리스가 성장하기 위해선 가까운 곳에 생산을 맡길 파운드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파운드리 역시 팹리스로부터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메모리 중심 산업이라 이런 팹리스와 파운드리 생태계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다.

반면 메모리는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를 통한 미세공정 개발과 대량 생산, 가격 경쟁력 확보 등이 중요한 만큼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경쟁 우위에 있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TSMC의 설립자인 모리스 창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 연간 투자 규모를 30%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또 연구 개발 비용은 20%, R&D(연구개발) 인력도 30% 늘려나갔다. 그 결과 인공지능 시장의 확대와 함께 파운드리 전성시대가 열리며 TSMC는 이름 없는 하청업체에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났다.

반도체 왕좌를 굳건히 지키던 인텔이 그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한 시기도 TSMC가 급부상하던 때다. 자체 생산을 고집하던 인텔이 미세공정 개발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던 사이, 만년 2등이던 AMD는 TSMC와 손잡고 인텔을 위협하는 자리로 올라섰다.

엔비디아가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회사 정도로 치부되다가 AI시대를 맞아 각광받게 된 것도 TSMC라는 파운드리를 만난 덕분이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자신의 브랜드는 없이 최고의 기술력으로 남의 회사 제품을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해 오늘에 이르렀다.

한때는 대만이 우리나라의 '브랜드' 파워를 그토록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노브랜드' 전략으로 승부한 TSMC가 반도체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TSMC는 2026년 하반기부터 1.6 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삼성전자도 2027년 1.4 나노 양산을 목표로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잇다.

현시점에서 자체 브랜드를 통해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하청인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넘어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추정컨대 삼성이 노리는 자리는 파운드리 세계 1위보다는 확실한 2등이 아닐까 싶다.

현재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회사는 TSMC와 삼성 등 2곳뿐이고 최근 인텔이 뛰어들어 2위를 목표로 설정했지만 단기간에 삼성을 위협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삼성은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TSMC에 밀리지 않는다면 TSMC의 대안으로써 확대되는 파운드리 시장 성장세의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삼성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세계 2위에 머물렀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1위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며 추락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TSMC는 현재로선 철옹성과 같은 1위다. 그러나 확실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2위 자리를 지키고 때를 기다린다면 스마트폰에서처럼 삼성이 파운드리 1위에 오를 기회가 언젠간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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