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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May 21. 2024

홍콩여행과 음식

딤섬과 에그타르트

1980~90년대 홍콩은 내게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었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고 유명한 영화배우들을 길거리에서 언제나 마주칠 수 있을 듯한 도시.

성룡과 주성치,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여명, 구숙정 등등...

내가 좋아하던 수많은 영화와 배우들이 활동하던 홍콩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고3때 본 영화 '첨밀밀'에서 여명이 기차를 타고 처음 홍콩에 도착했던 첫 장면, 영화 마지막에 장만옥도 같은 열차를 타고 홍콩에 왔었다는 반전(?)이 주던 깊은 여운.

하지만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이후론 내가 사랑했던 유토피아 홍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한동안 영국이 홍콩을 반환하지 않았거나, 1970년대 대만이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이던 시절에 대만에 반환했거나, 홍콩이 스스로 독립했거나 했다면 어땠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1990년대 한창 할리우드키드로 살아가던 시절, 내 눈을 사로잡은 왕가위의 '중경삼림'과 홍콩 반환 이전의 불안감을 묘사한 홍콩 영화 속 그곳은 이제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실제로 홍콩에 다녀온 사람들마다 중국화 된 홍콩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들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홍콩에 가서 그 변화를 내 눈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이유들로 불과 비행기로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지만 40대 중반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홍콩.

이번에 홍콩을 가게 된 이유는 사실 '가성비' 때문이다. 가족여행으로 갈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나라들은 일본, 중국, 동남아 등인데 그중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그래도 아직까지 호기심이 남아있는 곳.

그리고 음식이 맛있다고 많은 방문자들이 공인한 곳을 찾다 보니 역시 홍콩이 선택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도착한 홍콩의 야경은 화려했다. 침사추이 도심 광고판을 장식한 낯선 배우들은 홍콩이 아직도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했다. 광고판에 나오는 배우 중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곽부성'정도였다.

하버시티에서 중국의 오성홍기와 홍콩 국기가 나란히 나부끼는 모습을 보니 홍콩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다음날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양조위 집으로 가는 장면에 등장해 유명해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에그타르트 등으로 유명한 베이크하우스를 찾았다.

해외여행을 가면 유튜브나 SNS에서 널리 알려진 맛집을 우선적으로 찾게 된다.

"나도 거기 먹어봤는데 이렇던데"라고 경험을 자랑(?)하고 아는 척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날 베이크하우스엔 줄이 너무나 길어 굳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줄이 길지 않은 다른 곳을 찾다가 타이청에서 에그타르트를 사서 먹어봤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비주얼은 참 깨끗하고 맑은 노란빛이 인상적인 에그타르트였다. 사진으로 본 베이크하우스 에그타르트는 겉을 그을린 꾸덕한 느낌이 드는 겉모습이라면, 타이청 에그타르트는 계란맛이 진하게 날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한 입 베어무니 계란향과 맛이 진하게 올라왔다. 7년 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 갔을 때 소위 에그타르트 원조집이란 곳에서 먹어본 에그타르트와는 다른 홍콩식 에그타르트랄까.

리스본 에그타르트는 계란맛이 전혀 나지 않는 단맛이 강한 디저트 느낌이었는데, 타이청 에그타르트는 우리나라 계란빵과 리스본 에그타르트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동서양이 공존하는 맛.

개인적으론 리스본 에그타르트보다 타이청 에그타르트가 내 입맛엔 더 맛있게 느껴졌다.

참고로 위 사진이 리스본 원조집 에그타르트. 외관상으론 베이크하우스가 원조집 비주얼과 비슷했다.

쇼마이

홍콩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음식은 '딤섬'. 사실 만두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딤섬도 이미 한국에서 많이 먹어본 음식이라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홍콩에 갔으니 딤섬을 먹어봐야 하니 이왕이면 한국엔 체인점이 없는 현지에만 있다는 조던역 인근 '딤섬히어'에 방문했다.

역시나 한국인 사이에 유명세 때문인지 테이블 절반은 한국사람이었다. 유튜브 등에서 추천하던 샤오롱바오, 하가우, 창펀, 쇼마이, 커스터드번 여러 종류를 시켜서 먹어봤다. 메뉴판에 왕관이나 따봉표시 등이 있어 그런 메뉴 위주로 시켰다.

샤오롱바오
커스터드번
튀김만두류와 창펀, 하가우 등

결론부터 말하면 익숙하게 아는 맛 들이었다. 한국에서 먹어본 딤섬과 홍콩 딤섬사이에 엄청난 맛의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새우가 들어간 딤섬들은 새우의 씹히는 탄력감이나 향이 더 좋았다.

창펀은 따봉표시가 있는 것으로 시켰는데, 결과적으로 주문 실패. 땅콩소스와 간장소스에 창펀을 적셔서 먹는 메뉴였는데,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니었다. 그냥 얇은 찹쌀떡 피를 간장과 땅콩버터에 찍어먹는 느낌.

옆에 다른 사람들이 주문하는 것을 보니 돼지고기 다진 소를 창펀으로 감싸서 잘라 나온 메뉴를 많이 먹던데. 내가 원했던 메뉴가 바로 저거였는데 했지만, 이미 여러 딤섬을 먹은 후라 배가 불러서 더 시키진 못했다.

아무튼 홍콩이 '미식의 천국'이라고 하는데,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기본적으로 딤섬이나 중국식 중국요리(한국식 중국요리 말고)가 입맛에 맞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듯싶다.

나는 캐나다 연수 시절에 차이나타운에서 베이징덕이나 각종 덮밥류 등 중국식 중국요리가 너무 입에 잘 맞았던 사람이라 홍콩 음식도 전반적으로 좋았다.

중국식 야채볶음도 참 별것 아닌데 맛있었다. 밥 위에 올려서 같이 먹으면 건강해지면서 맛도 있는 ^^.

오늘의 식사 결론은 홍콩 딤섬은 원래 딤섬을 좋아했던 사람에겐 맛있을듯하다. 그러나 원래부터 딤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현지 음식을 경험해 본다는 느낌으로 드시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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