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와 취향의 변화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같이 먹어봤으면...'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다. 외식은 한 달에 1번 아버지 월급날에만 할 수 있었다. 외식 메뉴는 짜장면 아니면 돈가스(경양식집)였다. 내 또래 40대들은 다들 짜장면이나 돈가스 먹으러 나갈 때 설레던 순간을 기억할 거다. 부모님은 짜장면만 사주셨지 한 번도 탕수육을 시켜주시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같이 먹게 해달라고 새해 소원을 빌기도 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오락거리는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밖에서 노는 정도였다. 그중 독서는 그 시절 내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TV에선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의 모습들을 책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던 책을 꼽으라면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다. 이 소설엔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가 세계일주를 하기 전 초반부에 리폼 클럽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필리어스 포그가 먹던 음식은 스테이크. 소설에선 손바닥만 한 소고기를 나이프로 썰어서 한입 베어무니 피가 뚝뚝 떨어진다고 쓰여 있었다. 그때까지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도 실제로 본 적도 없던 어린 나에겐 무려 100년도 더 이전에 쓰인 그 소설에서 영국인들이 스테이크를 먹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스테이크란 음식에 대한 궁금증은 80일간의 세계일주 초반부를 읽고 또 읽게 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한 '컬처 쇼크'였다. 지금처럼 스테이크란 음식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할 수도 없던 시절이라 내 무릎높이는 족히 되는 두꺼운 백과사전을 뒤적여 스테이크에 대한 설명과 사진을 보고 또 봤었다.
시간이 지나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1990년대는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을 시작하던 시기. 갑작스럽게 맞은 1997년 IMF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취향은 빠르게 상향 평준화돼 갔다.
미국 등에서 건너온 패밀리레스토랑이 크게 유행했고, 더 이상 외식 메뉴로 짜장면이나 돈가스를 먹지 않게 됐다. 편의점과 커피숍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점심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습관도 이때 시작됐다.
이런 시점에 우연히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내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능가하는 컬처 쇼크를 경험하게 했다.
나보다 서른 살이 더 많고 우리 아버지보다 연배가 위인 1949년생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과 취향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20대로 접어들던 1990년대 후반,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선진국이었다. 일본은 1990년 초 버블붕괴 직후 잃어버린 10년을 겪던 시기였지만, 여전히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다. 문화적으로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고, 1998년 일본 문화를 개방할 땐 왜색 문화에 온 나라가 점령될 것이란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나를 사로잡은 것도 이런 처음 접해보는 다양한 취향과 문화에서 오는 신선 함이었다. 20대 초반 내 상식의 수준은 하루키 소설 중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시나몬'이 계피란 뜻인지도 모르는 정도였다.
소설 여기저기 거론되는 음악과 책, 예술 작품, 음식, 취미 등은 이전까지 내가 듣지도 보지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모든 경험과 취향을 나보다 30살이 많고 우리 아버지보다 형인 하루키가 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루키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우리나라에선 절대 가르칠 이유가 없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역사를 많은 부분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에게 일제는 악(惡) 그 자체이고, 그들의 일제 시기 역사는 한반도에서의 수탈과 억압 등을 설명하는데 맞춰져 있다. 그런데 하루키 소설에는 일제시대 전쟁을 겪은 일본인의 관점에서 서술돼 있어 처음 보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노모한 전투와 동물원 습격 부분 등은 한국인은 전혀 알 수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을 내용이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20대의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군대 시절을 포함해 10년 간 일상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 작가다. 그 10년간 '상실의 시대'로부터 시작해 '해변의 카프카'까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모든 책을 다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간절히 기원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성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 최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 내 취향이 인정받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선 최고의 흥행작이라고 하는 '1Q84'부터는 더 이상 하루키 책을 읽지 않게 됐다. 내가 30대로 접어들던 시점과 정확히 겹친다.
1Q84를 1~3권까지 샀지만 1권 초반부를 읽다가 그만두었고 지금까지도 먼지가 쌓인 채 책장 한쪽에 방치돼 있다. 1Q84를 읽었을 때 하루키가 자신의 과거 소설을 스스로 자기복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1Q84에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 여러 이전 작품을 뒤섞어 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고, 더 이상 내게 새로움을 주지 못했다. 하루키 소설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위대한 개츠비'도 읽으려고 사놓았지만, 책장에 여전히 그대로 방치돼 있다.
60대에 접어든 하루키의 작품은 30대에 들어선 내겐 더 이상 동경의 대상도 신선한 충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하루키 작품을 읽지 않는다. 내가 20대에 첫 해외여행으로 갔던 일본은 이상향 그 자체였지만, 40대에 다시 찾은 일본은 그냥 맛있는 음식이 많고 물가가 싼 이웃나라 정도가 됐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