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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이라는데, 과연 맛은?

[맛집을 찾아서] 의정부시 용현동 솔뫼집

by 챠크렐

'맛집을 찾아서'는 단순히 맛집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다룹니다.



닭고기를 정말로 즐긴다. 딱 한 가지 고기만 평생 먹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닭을 택할 것이다. 배달 음식의 최고봉으로는 주저 없이 치킨을 꼽고, 닭도리탕과 닭한마리는 최고의 술안주라고 생각하며, 해외여행을 가서도 꼭 하나씩 닭고기가 들어간 현지 요리를 먹어 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꿩요리를 먹어볼 기회가 생겼다. 부모님 댁 인근 동네에서 꽤 오랫동안 장사한 꿩요리 전문점이 있어 그곳에 가 보기로 하면서다. 무려 '맛있는 녀석들'에도 소개됐단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데, 닭이 이렇게 맛있는데 도대체 꿩은 얼마나 진미일까? 부모님과 같이 가 봤다.


메뉴를 보니 샤브샤브부터 볶음탕, 심지어 육회까지 다양한 꿩 요리가 나열돼 있다. 꿩을 닭도리탕처럼 요리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꿩 육회는 뭔지 상상조차 안 간다. 우리는 꿩 한 마리로 이런저런 요리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꿩스페셜'을 시켰다.


기본으로 나온 밑반찬. 김치 종류는 다 맛있었고 나물들도 훌륭했다.
꿩 육회. 왼쪽이 살코기고 오른쪽이 근위였나 그랬다.


다채로운 밑반찬과 함께 먼저 나온 것은 꿩의 살과 근위로 만든 육회다. 몇 점의 육회가 양배추에 얹어 나왔다. 예전에 딱 한 번 닭 육회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꽤 부드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과 근위(확실하지는 않다) 둘 다 먹었는데, 근위도 근위였지만 살도 꽤나 쫄깃한 게 씹는 맛이 있었다. 식감이 재밌다. 육회 맛을 보는 순간 확실히 닭보다는 쫀득한 맛이 부각되겠구나 싶었다. 꿩고기가 가볍게 첫인사를 하는 느낌. 닭이나 꿩 같은 조류 고기를 육회로 먹는다는 게 낯설고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육회를 잘 먹는다면 충분히 좋아할 만한 맛이다.


그 다음 나온 메인메뉴인 꿩샤브. 꿩 육수가 든 큰 냄비가 가스불 위에 올라가고 꿩고기와 함께 미나리, 부추, 배추, 무, 버섯 등 갖은 야채들이 푸짐하게 접시에 담겼다. 야채의 양이 많아서 야채를 두 번에 나눠서 넣어야 할 정도였다. 추가요금을 내면 여기에 산낙지도 넣어 준다고 한다.


육수에 야채와 고기를 넣으면 대략 이런 느낌. 고기는 아직 살짝만 넣어서 양이 적어 보인다.
한 절반쯤 남았을 때. 갖은 야채들이 준비돼 있다. 꿩고기와 환상의 궁합.

육수가 끓으면 야채 절반과 꿩고기 절반 정도를 담아 데친다. 그러다가 적당히 익은 야채와 꿩고기를 번갈아 가며 소스에 찍어 먹는다. 여기서 핵심은 꿩고기를 완전히 익히지 않는 것. 종업원 분이 꿩고기는 푹 익히지 말고 살짝 덜 익힌 정도로 먹으라고 당부했다. 이를 상기하며 적당히 익은, 하지만 약간 분홍빛이 도는 꿩고기를 입에 넣어 봤다.


꿩고기는 확실히 같은 새고기였지만 닭고기와는 느낌이 달랐다. 잘 요리된 닭은 담백하면서도 퍽퍽함이 최소화되고 감칠맛을 내며 부드럽게 넘어간다면, 꿩은 마찬가지로 담백했지만 닭보다는 탄탄하고 쫄깃한 식감이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말로 표현하긴 애매했지만 분명히 닭고기와는 다른 감칠맛도 돌았다. 인터넷에서 꿩고기를 먹어 봤다는 몇몇 사람들은 꿩고기에서 특유의 냄새(노린내라고 하기도 하고 풀냄새 비슷한 게 난다고도 한다)가 난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 집은 그런 건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같이 들어간 야채와 함께 소스를 찍어 먹으니 고기의 맛이 더욱 풍부해졌다.


그렇게 맛을 보다가 문득 국물의 시원함이 확 느껴져서 국물만 후루룩 마셔 봤다. 고기 자체가 담백하면서도 동시에 진해서 그런지, 여기서 야채와 함께 우러난 국물도 기가 막힌다. 이렇게 시원한 국물을 언제 먹어 봤더라? 꿩 육수에 채수가 우러나니 이렇게 개운하고 깔끔하면서도 속이 확 뚫릴 줄이야. 꿩 육수는 정말 엄지를 들게 하는 맛이었다.


살짝 분홍빛이 돌 때 건져서 먹어야 적절하다고 한다. 육수가 끓으니 슬슬 꿩만두도 넣어줬다.

어느 정도 먹으면 남은 꿩고기, 야채와 함께 슬슬 꿩만두를 넣을 때가 됐다. 꿩고기를 갈아 넣어 만든 꿩만두는 만두소도 풍부하게 들어 있고 육수와 육즙이 같이 나와서 씹으면 씹을수록 만족감을 준다. 꿩 자체로 먹는다기보다는 잘 빚어진 만두를 먹는 느낌으로 먹어준다. 무난하게 맛있다.


꿩샤브를 다 먹었다면 마무리는 꿩의 뼈로 우려낸 육수가 돋보이는 꿩탕이다. 맑은 국물의 꿩샤브와는 달리 얼큰해 보이는 빨간 국물이다. 살코기가 약간 붙은 잡뼈와 다리뼈에 무와 미나리를 잔뜩 넣어 고소하면서도 시원함을 배가시킨다. 국물은 매운탕 느낌이 났는데 먹어 보면 매운맛보다는 무에서 우러난 듯한 은은한 달콤함과 뼈에서 나온 고소함이 더 강하다. 밥과 잘 어울리는 맛. 식사를 끝내기에 더없이 좋은 마무리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꿩 한 마리를 아낌없이 다 먹었다.


닭과는 차별화된 탄탄하고 쫄깃한 식감은 물론, 깔끔하면서도 고소함과 진함까지 맛도 두루 갖췄다. 꿩이 왜 예로부터 고급 식재료라 불렸는지,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런 좋은 고기를 맛있게 하는 집에서 먹은 것도 행운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꿩탕. 빨간 국물인데 그리 맵지는 않고 밥이랑 후루룩 먹기 좋다.

다만 막상 정말 '꿩 대신 닭'을 먹을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3명이서 알맞게 나눠 먹은 정도였는데(먹는 양이 적다면 적당히 배부르고, 먹는 양이 많다면 살짝 아쉬운 정도) 가격이 15만 5000원으로 만만찮다. 가성비를 따질 음식은 아니지만 확실히 양을 생각하면 꿩보다는 닭이 우위다. 아무래도 자주 먹기에는 많이 부담되는 게 사실.


특유의 쫄깃한 식감도 호불호가 좀 갈릴 수 있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꿩보다는 닭 쪽이 더 잘 맞다. 같은 새고기지만 꿩은 닭과는 맛도 다르고 식감도 달라, 처음 먹으면 좀 낯설기도 하다. 그렇지만 익숙해지면 계속 먹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은근히 손이 간다.


아무튼 꿩고기를 먹어보고 나서도 나는 1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닭을 먹는다. 여전히 치킨, 닭도리탕, 백숙, 닭한마리, 가라아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긴다. 이들이 꿩을 대체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꿩고기가 닭고기를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결론. 꿩은 꿩이고 닭은 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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