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남는 것] 옛날 느낌 물씬 나는, 페리카나 양념치킨
어릴 적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 중 하나는 부모님이 치킨을 사 주시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손에 치킨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비닐봉지가 들려 있을 때마다 나는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무지하게 기분이 좋았다. 치킨은 으레 그날 저녁밥과 함께 먹곤 했는데 맛으로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익숙한 맛있음, 그것이 너무 좋았다. 밥과 치킨이 참 잘 어울린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부모님은 그냥 치킨을 사 주시기도 했지만(주로 아버지가 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싶으실 때 본인이 시키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내가 뭔가를 잘했을 때 치킨을 사 주는 경우도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계속 맞았고(그때 받아쓰기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다) 쪽지시험에서도 거의 틀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치킨을 종종 먹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부터는 중간·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교내 경진대회 같은 곳에서 상을 타 왔을 때 등 확실한 성과를 거뒀을 때 치킨이 따라왔다. 그때는 시험을 잘 보면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꽤 큰 동기부여였다. 당시 치킨 한 마리 가격이 한 1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이야 아니지만 당시 어린이에게는 굉장히 큰돈이었으므로.
그렇게 저녁식사 시간에 가족끼리 둘러앉아 같이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시 우리 가족의 일상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치킨을 사면 으레 냉장고에 있는 소주를 하나 꺼내 홀짝홀짝 마셨다. 술을 못 하는 어머니는 옆에서 아버지에게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타박하면서도 컵에 냉수를 따랐고, 나와 동생은 치킨을 시키면 같이 나눠주는 콜라나 사이다(당시만 해도 콜라나 사이다를 유리병에 꽤 넉넉하게 줬다!)를 따랐다. 그렇게 다 같이 기분 좋게 건배를 한 순간이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언제 한 번 내가 물인 줄 알고 컵에 있는 무언가를 벌컥벌컥 마셨더니, 알고 보니 아버지가 따라 둔 소주여서 황급히 뱉었던 것도 기억난다.
이때 가장 많이 먹었던 치킨이 바로 페리카나의 양념치킨이었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있지만 당시에는 '전국구' 치킨 프랜차이즈가 그렇게 많지 않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페리카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치킨집이라 주문을 하면 가장 빨리 도착했고 자연스럽게 이곳을 많이 찾게 됐다. 당시에도 페리카나 하면 양념치킨(그때는 '양념통닭'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이었고 그래서 주로 양념치킨을 시켜 먹곤 했다.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달콤매콤'이었다. 요즘 나오는 매운 양념치킨처럼 자극적으로 맵지는 않고, 탄탄하게 깔린 마늘향을 바탕으로 달착지근함과 마늘 바탕의 매콤한 맛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졌다. 매콤함보다는 달착지근함이 좀 더 부각되는 것 같아 '매콤달콤'이 아니라 '달콤매콤'이라고 표현해 봤다.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옛날' 양념통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린아이 입맛에도 맵지 않아 밥이랑 먹기 딱 좋은 맛이었다. 그렇게 치킨으로 밥을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는 했다. 그러면 부모님은 한창 클 때라 그런가, 얘는 참 잘도 먹는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음성으로 재생되는 것 같다.
물론 페리카나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집 근처에 있던 페리카나가 문을 닫고 조금 지나 BBQ가 들어섰다. 이곳에서 먹은 후라이드치킨이 정말 맛있어서 어머니한테 종종 시켜달라고 졸랐다. 이곳의 후라이드치킨은 전형적인 크리스피 치킨이었는데, 당시 후라이드치킨이 튀김옷이 얇고 구수한 옛날 스타일인 경우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내 취향에 더 잘 맞았다. 비록 몇 년 후 BBQ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전면 도입하고 가격이 비싸지면서 아무래도 자주 먹기는 부담스러워졌지만... 비슷한 시기 들어선 BHC의 '콜팝치킨'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치킨과 탄산음료를 동시에 먹을 수 있어서 친구들과 가끔 사 먹곤 했다.
다만 아무래도 내게는 페리카나, 그중에서도 양념치킨이 추억 속에 가장 깊게 남아 있다. 치킨을 통해 가족들과 함께 했던 단란한 시간을 조금씩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어린 시절 내게는, 치킨을 먹는다는 것이 내 성취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기에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오랜만에 페리카나가 생각나서 양념치킨을 시켜 먹어 봤는데, 예전의 그 맛에서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아 모처럼만의 추억에 잠겼다. 내가 예전에 이 맛을 참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요즘은 전만큼 양념치킨을 많이 먹지는 않는다. 치킨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후라이드치킨이 제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다른 맛을 느끼고 싶다면 양념치킨 말고도 간장치킨, 고추치킨, 깐풍치킨 등 많은 대체제가 있기 때문에 굳이 양념치킨을 먹을 이유가 줄었다. 게다가 요즘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양념치킨은 너무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강하거나, 아니면 매운맛을 거의 불닭 수준으로 올리거나 하는 식으로 양념이 너무 강해져서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다.
이렇듯 생각보다 옛날 통닭 스타일의 양념치킨을 찾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페리카나에서 예전의 그 맛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페리카나라는 브랜드가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양념이 한껏 버무려진 닭다리를 뜯는다.
조만간 부모님이 사시는 본가에 페리카나 양념치킨을 한 번 사 들고 가 봐야겠다.